<시리즈> 벤처기업이 뛰고 있다 (6);건인

도전과 응전 그 현장을 가다 (4)

「차세대 디지털 가전시장의 주도권을 확보하라.」

서울 송파구 가락동에 있는 (주)건인의 연구소에서는 21세기를 주도할 디지털 가전제품의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그동안 쌓은 멀티미디어 기술을 기반으로 이미 아시아에서는 처음으로 디지털 방식의 위성방송수신기(DBS)를 개발, 유럽으로 수출하고 있으며 디지털 다기능 디스크(DVD) 등 또다른 디지털 가전제품 개발에도 힘을 모으고 있다.

한국의 대표적 벤처기업으로 손꼽히는 건인은 89년 서울대 제어계측공학과 출신 6명이 두뇌 하나만을 믿고 설립한 회사다. 설립 초기엔 소비자들의 구매패턴이나 시장분석 등에 실패해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이제는 무선호출기를 생산하는 자회사 건인텔레콤까지 거느릴 정도로 성장해 벤처기업의 대표적 성공사례로 인정받고 있다.

건인과 건인텔레콤의 매출 역시 해마다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는데 95년 1백20억원에서 지난해 2백7억원으로, 올해 4백82억원으로 늘어날 전망이며 내년 매출목표로는 9백80억원을 잡고 있다. 해마다 두 배 이상씩 매출이 늘고 있는 셈이다.

이같은 성장비결은 건인이 멀티미디어에 대해 상당한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 이른바 엔지니어라 할 수 있는 서울대 제어계측공학과 출신의 석, 박사들이 회사를 설립한데다 전직원 가운데 45%가 연구개발(R&D)에 종사하는 연구원들이다. 건인의 R&D 투자비도 전체 매출액의 15%가량이며 올해 상반기에는 유럽에 R&D와 마케팅활동을 전담하는 현지법인을 세울 계획이다. 오직 기술력 하나에만 社力을 집중하고 있는 전형적인 벤처기업이다.

건인은 특히 벤처기업의 생명이 R&D 활동과 시장정보력, 파일럿 생산능력 등에 있다고 보고 기술개발 분야에서 「6MTM(Month to Market)」이란 원칙을 세웠다. 제품개발에서부터 시장진입까지를 6개월 안에 끝내야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건인은 대다수 벤처기업들이 그렇듯이 제품 양산보다는 개발에 가장 큰 무게를 싣는다. 건인은 일단 제품을 개발한 뒤 수원공장의 파일럿 라인에서 시험생산을 거쳐 상품화 가능성을 점친다. 그리고 제품 양산에 필요한 설비와 생산기술을 개발해 국내외 외주공장에 본격적인 생산을 맡기는 것이다. 제품 양산을 외주로 처리하면 생산라인 확충이나 축소 등 경영부담이 줄어드는데다 신제품을 계속 개발하더라도 무리한 설비투자 없이 제품을 양산할 수 있는 이점이 있기 때문이다.

현재 건인은 디지털 위성방송수신기(DBS)와 비디오CDP 내장형 노래반주기 등을 개발하고 있으며 내년에는 DVD플레이어와 DVD플레이어 내장형 노래반주기를 시장에 선보일 계획이다. 또 디지털 방식의 방송시장 수요를 겨냥해 2세대, 3세대형 DBS를 연달아 출시할 계획이다.

이 가운데 건인이 사업의 주력으로 삼고 있는 DBS는 차세대 디지털방식의 방송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제품으로, 유럽 디지털방송시장의 경우 지난해부터 시장이 형성되기 시작해 오는 2017년까지 약 1억대의 제품수요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디지털 방송에 필요한 제품군 역시 케이블TV용, 위성방송용, 지상파방송용 등으로 다양해 시장가능성이 큰 분야로 예측되고 있다.

건인은 서울대 제어계측학과 박사 출신의 변대규 사장과 동기, 후배들이 모여 89년 2월 설립했다. 당시 자본금 5천만원으로 서울 봉천동에 30평 남짓한 임차사무실을 열고 건인시스템이란 회사를 차린 것이다.

그 전까지만 하더라도 변대규 사장은 서울대 공대 제어계측시스템 연구실에서 정부와 기업들의 각종 연구프로젝트를 수행했는데 이것이 회사 창업에 커다란 도움을 주었다. 박사학위를 받으면서 쌓은 풍부한 이론에다 이를 현실에 적용할 수 있는 능력까지 겸비한 것이다.

넘치는 의욕과 풍부한 이론, 우수한 인재들이 모여 설립된 건인은 첫 사업 아이템으로 계측기기 개발을 선정했다.

당시 건인이 개발한 기기는 물체의 폭이나 단면을 측정하는 특수 카메라로, 건인의 젊은이들은 이 제품을 개발하기 위해 대만 전자상가까지 뒤지며 필요한 부품을 사올 정도로 정성을 쏟았다.

그러나 결과는 참패로 끝났다. 어렵게 국산화하는데 성공했지만 시장이 너무 작아 제품이 팔리지 않았던 것이다.

변 사장은 새로운 사업 아이템으로 비디오믹스를 개발하기로 했다. TV화면에 자막처리를 해주는 비디오믹스는 당시 케이블TV나 지역민방 등 설립으로 수요가 많을 것으로 예상됐기 때문이다. 변 사장의 예측은 어느정도 들어맞았다. 그러나 이 제품 역시 수요가 많지 않아 자금난을 극복하는데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

두번의 실패를 경험하면서 변 사장은 커다란 교훈을 얻게 됐다. 아무리 제품이 우수하고 기술력이 뛰어나다 하더라도 소비자들이 필요로 하지 않는 제품이라면 가치가 반감된다는 사실이다. 우선 소비자들이 어떤 제품을 필요로 하는지, 그와 비슷한 제품은 혹시 없는지, 그 제품을 개발했을 때 성공할 확률은 어느 정도 되는지를 파악한 뒤 제품개발에 착수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이같은 교훈을 바탕으로 개발된 것이 94년 출시된 「휴맥스 CD가요반주기」. 노래반주기 시장은 90년대 초반까지 업소용을 중심으로 폭발적인 수요가 발생해 선발업체들이 시장의 대부분을 장악한 상태였다. 이에 건인은 업소용 제품으로는 승산이 없다고 보고 가정용 수요를 겨냥해 제품을 만들었다. 업소용 제품이 수백만원인데 비해 건인이 개발한 제품은 50만원대여서 당연히 가정용 시장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건인이 개발한 제품은 특히 메모리칩에 노래반주를 저장하는 기존 제품과 달리 CD에 노래반주를 저장함으로써 한번에 몇천 곡의 데이터를 저장할 수 있고 사용이 편리하다는 장점 때문에 히트를 치게 됐다. 제품을 개발했을때 소비자들이 그 제품을 원할 것인가를 검토한 효과가 발휘된 것이다.

여기에 자신감을 얻은 건인은 곧바로 디지털 위성방송수신기 개발에 뛰어들었다. 이 제품은 세계적으로 소니, 필립스 등 업체들만이 시장참여를 선언한 미개척분야로 발빠른 대응을 하면 성공 가능성이 높을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95년 3월부터 제품개발에 매달린 건인은 당시 매출액의 25%가 넘는 25억원이란 자금을 투자해 개발에 성공했다. 이 제품은 지난해 유럽으로 1백억원어치가 수출됐으며 올해 3백억원어치가 수출될 예정이다. 벤처기업으로서의 건인이 확실한 자리매김을 하게 된 것이다.

<윤휘종 기자>

[인터뷰] 건인 변대규 사장

『교수가 되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그보다 사회로 진출해 국내산업에 기여하는 것이 더 보람있을 것 같아 창업하게 됐습니다.』

건인의 변대규 사장(37)이 밝힌 창업 취지다.

서울대 제어계측학과에서 학, 석, 박사학위를 딴 변 사장은 지도교수가 미국에서 교환교수로 근무하고 귀국한 뒤 제자들에게 『실리콘밸리의 휴렛패커드 같은 벤처기업을 만들라』고 독려한 것이 창업 결심에 커다란 동기가 됐다고 말한다. 게다가 석, 박사과정을 밟는 동안 서울대 공대 제어계측시스템 연구실에서 기업체나 정부의 연구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실제 산업에 필요한 이론과 기술을 익힌 것도 큰 도움이 됐다.

『이 정도 수준이면 충분한 승산이 있다』고 판단한 변 사장은 동기, 후배들과 의기투합해 「무작정」 일을 벌였다. 6명의 창업동기들 모두 각자의 전공분야에서 촉망받는 젊은이들로 기술수준으로는 여느 대기업에도 뒤지지 않는다는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

89년 2월 자본금 5천만원으로 서울 봉천동의 조그만 사무실을 임차해 사업을 시작한 변 사장은 이제 (주)건인과 건인텔레콤이란 자회사까지 거느리고 연간 5백억원에 가까운 매출을 올리는 어엿한 중견기업의 대표가 됐다. 변 사장은 『개인적으로는 직원들이 건인에서 일하는 것에 자부심을 느낄때마다 창업하길 잘했다는 생각을 한다』며 『회사 차원에서는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디지털방식의 위성방송수신기를 개발했다는데 긍지를 느낀다』고 말했다. 변 사장은 그러나 『이제부터가 시작』이라며 겸손한 자세를 보이고 있다.

현재 변 사장의 가장 큰 고민거리는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 최근 디지털 방송장비의 유럽 수출을 계기로 유럽시장의 높은 벽을 넘는 방법에 대해 고민중이다.

변 사장은 『기업을 운영하는 사람들은 대개 「무엇을 할 것인지」와 「어떻게 하면 잘할 것인지」 두가지를 고민한다』며 『이 가운데 어느 것에 무게중심을 두느냐가 앞서가는 기업과 따라오는 기업의 차이』라고 말한다. 『대다수 중소기업인들은 무엇을 해야 성공할지 사업 아이템을 찾기보다 현재 하고 있는 사업을 어떻게 하면 잘 유지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기 때문에 경쟁력이 떨어지는 것』이라고 지적하며 『이제 우리 중소기업들도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로 사고의 패러다임을 바꾸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를 들어 『섬유업이나 일반 전자, 기계 등에 종사하는 중소기업들은 산업 자체가 사양화하면 앞이 깜깜해지고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라 허둥지둥 댄다』며 『이는 「어떻게 하면 잘할 것인지」, 즉 현상유지에만 매달린 결과』라고 분석한다. 현대의 소비자들은 평범한 상품보다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제품에 대해 높은 가치를 매기기 때문에 소비자들의 욕구를 정확히 충족시켜주는 제품이 어떤 것인지 분석해 이를 만들어내는 기업만이 성공할 수 있다는 지론이다.

변 사장은 디지털 방송장비의 유럽시장 개척에 대해서도 『세계적으로 유명한 소니, 필립스, 노키아, 그룬디히 등이 경쟁업체』라며 『회사 규모에서는 뒤질지 모르지만 R&D 능력과 신속한 제품출시, 그리고 시장정보력 등이 확보되면 아무리 큰 기업과 경쟁해도 뒤지지 않을 자신이 있다』고 말한다. 변 사장은 『현재 R&D나 제품생산 능력에는 문제가 없지만 시장정보력이 다소 떨어져 현지 업체와 전략적 제휴를 맺을 계획도 갖고 있다』고 밝혔다.

최근 벤처기업에 대한 관심이 증가함에 따라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벤처기업 창업이 잇따르고 있는 것에 힘을 얻고 있다는 변 사장은 예비 사장들에게 『정열을 갖고 도전해야 한다』고 충고한다. 『벤처기업은 말 그대로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가는 모험기업이기 때문에 목표까지 가다보면 여러가지 좌절에 부딪힌다』며 『이를 극복하고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선 강한 정신력과 밤을 새도 지칠줄 모르는 정열이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변 사장이 강조하는 또하나의 요소는 바로 「경영능력」이다. 『처음엔 머리와 기술력만 있으면 될줄 알았는데 막상 창업하고 나서는 회사의 전반을 관리하는 경영능력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한가지에만 매몰돼 나무만 보고 숲은 간과하는 실수를 범하지 않으려면 실무 능력도 반드시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으로의 목표에 대해 변 사장은 『디지털 가전분야에서 독보적 위치를 차지하는 전문기업으로 성장하고 싶다』며 5~6년 후 건인이 어떻게 성장할 지 지켜봐 달라고 당부했다.

<윤휘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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