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전업체들이 독립국가연합(CIS)지역에서의 현지 생산 여부를 놓고 고민에 빠졌다.
이제 현지 생산을 다시 추진할 때가 됐다는 시각과 여건이 무르익기 전까지 곤란하다는 시기상조론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고 있는 것이다.
한동안 잠잠했던 CIS 현지 생산이 물위로 떠오르게 된 것은 최근 이 지역에서 외산 가전제품에 대한 수입을 강력히 규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CIS 각국은 올들어 외산 가전제품에 대한 통관절차를 강화하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통관 이전에 관세를 납부하는 새로운 제도를 도입했으며 우즈베키스탄은 환전을 공인받지 않은 현지 업체를 거치지 않은 외산 가전제품의 유입을 금지하고 있다.
벨로루시, 카자흐스탄 등과 같은 다른 CIS 국가들도 최근 비슷한 통관 규제장치를 마련하고 있으며 러시아의 경우 현지 업체에 대한 세무조사를 강화하고 있다.
이처럼 규제가 강화되면서 현지 거래선에 의존해 CIS에 수출하는 국내 가전업체들은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 가전업체는 CIS지역의 2개 거래선이 최근 강화된 통관규제로 인해 사업을 중단하면서 TV수출이 전면 중단된 것으로 전해졌다.
엄격해진 것은 통관 절차 뿐만 아니다.
러시아를 비롯해 벨로루시, 카자흐스탄과 같은 나라들은 최근 외산 가전제품에 대한 품질규격과 인증제를 도입하는 등 각종 규제장치를 가동하고 있다.
CIS지역 밖에서 생산된 제품의 유입이 앞으로 더욱 힘들어지게 됐다.
이는 곧 현지 생산의 필요성을 증대시키고 있다. 그런데 현실은 그리 만만하지 않다. 투자의 가장 큰 걸림돌이었던 政情 불안은 점차 사라지고 있지만 현지정부의 까다로운 규제와 고질적인 생산성 저하와 같은 문제점은 여전히 남아 있다.
CIS각국 정부는 자국 전자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외국 업체의 단독 투자보다는 합작투자를 유도하고 있다.
또 합작 대상이 될 만한 현지 업체들은 대부분 생산시설이 낡고 생산성도 낮은 편이다.
현지 부품산업의 수준이 경쟁력 있는 제품을 만들 만큼 성숙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부품 조달체계도 갖춰져 있지 않다.
특히 CIS국가간의 통관절차가 엄격해져 전체 CIS시장을 겨냥해 한 곳에 대규모 생산기지를 두기 어렵게 돼 있다.
현지 투자가 실패로 끝났을 때 자칫 투자자금도 건지기 힘들 것이라는 걱정도 여전히 가시지 않고 있다.
얼마전까지만해도 가전3사는 CIS에 가전제품을 생산하는 계획을 추진했었다.
대우전자와 삼성전자는 현지 업체와 합작한 가전공장을 추진해왔으며 LG전자는 4개 지역에 걸쳐 생산기지를 세우는 플랜을 발표했었다.
그런데 세 회사는 현재 이같은 계획을 보류해놓고 추이만 지켜보고 있다.
CIS에서 대해서는 섣불리 현지 생산하지 않겠다는 게 가전3사 경영자들의 한결같은 생각인 것이다.
그렇지만 CIS지역의 가전제품 수요는 해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특히 규제가 강화되면서 한국 제품을 비롯한 외산 가전제품에 대한 수요는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고 업계 관계자들은 전하고 있다.
외국 가전사와의 경쟁에서 이기려면 먼저 현지 생산에 들어가 시장을 선점해야 한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선뜻 판단을 내리기 어려운 상황에서 LG전자는 최근 현지 업체를 통해 TV를 임가공 생산하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일시적인 대안으로 떠오른 임가공 생산에 대한 가전업계의 관심이 새삼 집중되고 있다.
<신화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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