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지원 우리영화 잇단 흥행 참패

대기업이 제작, 지원한 우리 영화들이 겨울철 극장가에서 잇따라 흥행에 참패, 모처럼 「한국영화 르네상스」를 예감했던 충무로에 찬바람이 불고 있다.

제일제당 산하 제이콤이 사하라사막에 20억원을 쏟아 부은 「인샬라」, 대우가 이정재의 스타성을 앞세워 17억원을 투자한 「불새」 등 연중 최대 대목에 걸렸던 방화 두편이 관객동원 5만명에도 못미친 데 따라 조기에 막을 내렸다. 또한 현재 상영중인 대기업 제작 영화들도 흥행부진으로 롱런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진로그룹의 계열사 GTV가 15억원을 투입해서 제작한 「지상만가」는 개봉 2주일째 접어들면서 관객이 눈에 띄게 줄어 당초 예상한 10만명에 훨씬 못미칠 전망이며, 지난 1일부터 개봉에 들어간 SKC의 「용병이반」도 22억원을 투자했음에도 불구하고 평론가들로부터 악평을 받는 등 작품성이 뒤떨어져 관객동원에 많은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처럼 대기업에서 제작, 지원한 영화들이 외면당하는 이유는 「흥행을 목표로 찍어내는 기획상품식」 영화의 한계가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황금시장인 줄 알았던 영화산업에 뛰어들었다가 해외 메이저와의 판권계약으로 값비싼 수업료를 치른 대기업들 사이에 로열티로 손해를 볼 만큼 봤으니 방화만큼은 모험을 하지 말자는 안전제일주의가 팽배해 있는 것. 즉 장르는 비디오시장에 잘 먹혀들어가는 액션이나 로맨틱 코미디, 주연은 연기력은 좀 처져도 인기있는 배우, 거기에 연출은 흥행성이 입증된 감독, 이 3박자만 맞으면 최소한 제작비는 건진다는 안일한 발상으로 영화제작을 결정한다는 얘기다.

또한 대중의 입맛을 좇아 흥행에 염두를 두다보니 작품의 완성도가 떨어질 뿐 아니라 새로운 작품에 모험을 하지 않으려고 하는 점도 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실제로 대기업이 손댄 작품중 겨울 극장가 공략에 성공한 작품은 한화가 황기성사단과 공동제작한 「미스터 맘마」 정도. 그러나 이 영화 역시 「결혼이야기」 이후 대중의 입맛에 맞는 「로맨틱 코미디 조리법」을 터득한 대기업의 상차림으로 흥행에 걸맞는 완성도를 보여주지 못했다는 평을 듣고 있다.

요즘 극장가에서 우리 영화의 체면을 살려주고 있는 「초록물고기」(제작 이스트필름, 감독 이창동)는 대기업이 거절한 후 충무로 토착자본에 의해 구사일생으로 빛을 본 작품. 여균동, 이창동, 문성근, 명계남 등 4인의 제작팀은 흥행성이 없다는 이유로 대기업들의 퇴짜를 맞았다. 그러나 영화사 시네마서비스의 공동대표인 강우석 감독이 평소 교분이 두터운 지방흥행업자들의 선투자를 끌어내 제작비 15억원을 지원받음으로써 영화를 제작할 수 있었다.

충무로의 한 제작자는 『이제 대기업의 상업적 잣대를 통과하지 못하는 영화는 더 이상 만들어질 수 없는 암흑기가 온 것 같다』고 한탄한다.

영화제작자들은 시놉시스 또는 시나리오를 들고 조건이 좋기로 정평이 나 있는 「창투」부터 그룹사의 3대 돈줄인 삼성, 대우, SKC를 거친 후 그 밖에 영화제작지원 경험이 있는 창투사와 중견그룹들을 도는 것이 정해진 순번으로 알려지고 있다.

만일 이 과정에서 대기업의 눈에 들지 못하면 대부분 저예산으로 돌아서거나 영화 자체를 포기한다는 것. 판단착오로 흥행도 놓치고 작품성도 놓치는 사례가 거듭되면서 충무로를 자본의 논리로 재편한 이들 대기업이 안일한 제작지원 시스템으로 우리 영화 발전의 발목을 잡고 있다.

따라서 대기업들이 단기간내 흥행에 염두를 두고 영화를 제작하기보다는 영화에 대한 안목을 키우면서 우리영화의 작품성을 높이려는 데 투자해야만 이같은 실패를 극복할 수 있을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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