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들어 중견 컴퓨터유통업체들이 잇따라 대규모 부도를 내고 도산함에 따라 이들 업체가 왜 연쇄부도에 휘말리게 됐는지 그 원인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금까지 알려진 이들 업체 연쇄부도의 직접적인 요인은 유통업체들이 「매출 키우기」 경쟁을 벌이면서 자금난이 가중됐기 때문이란게 일차적인 분석이다.
그러나 최근 유통업체들의 부도사태를 지켜본 업계 전문가들은 연쇄부도의 보다 근본적인 원인이 대기업의 정보통신부문 신규진출과 그룹사의 유통업체 인수합병(M&A)에서 비롯됐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최근까지 기업인수 및 자회사 설립을 통해 정보통신, 컴퓨터 분야에 신규 진출한 업체는 해태, 한솔, 극동, 성원, 농심, 대농 등 10여개 그룹사 20여개 업체에 달한다.
국내 컴퓨터, 정보통신 유통업계가 재계의 다크호스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지난 94년말부터 소프트라인, 소프트타운, 아프로만, 토피아 등 중견 컴퓨터 유통업체들이 매출을 크게 늘리고 대형화를 시도한 이후로 2~3년에 불과하다.
이들 유통업체들은 95년이후 사업규모가 급작스럽게 확대됨에 따라 운전자금 및 고정자금난에 시달리게 됐고, 이에 따라 탄탄한 자금원을 확보하기 위해 대기업의 자본유입과 기업매각 등 물밑 접촉을 활발히 시도하게 됐다.
중견유통업체들의 M&A에 대한 높은 관심은 「21세기 미래산업인 컴퓨터, 정보통신 분야에 발을 걸쳐놓지 않으면 낙후된 기업으로 뒤떨어지고 말 것」이란 그룹사의 위기의식과 정확히 맞아떨어져 대기업과 그룹사의 잇따른 신규진출로 이어졌다고 업계 관계자들은 분석하고 있다.
95년 하반기부터 소프트타운, 옥소리, 한화통신, 한국마벨, 모던인스투르먼트, 토피아 등 국내 컴퓨터 분야의 중견업체들이 대대적인 기업합병 열풍에 휘말리게 된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라는 것이다. 두원, 극동, 농심 등 컴퓨터유통업체 인수에 직접 나서지 못했던 일부 그룹사와 대기업들은 정보통신 및 컴퓨터 관련 자회사를 설립하거나 기업내에 신규사업팀을 발족하는 등 정보통신분야에 진출하기 위한 거점을 경쟁적으로 마련하고 나선 것도 이 무렵이다.
이 결과 일부 유통사들이 대기업과 M&A에 대비, 유리한 매각조건을 따내기 위해 비정상적인 매출늘리기와 덤핑, 무리한 가격경쟁 등을 되풀이했으며 실제 지난해 문을 닫은 소프트라인을 포함, 최근 부도처리된 아프로만, 한국소프트 등이 모두 이같은 기업합병에 실패한 대표적인 사례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최근 정보통신부문에 신규진출했거나 M&A를 통해 관련기업을 인수한 대기업, 그룹사들은 과연 성공적이란 평가를 받고 있는지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유통업계의 한 관계자는 『우여곡절끝에 기업합병에 성공한 중견업체들도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매출늘리기를 시도한 점은 별로 다를게 없다』고 전제하고 『일부 업체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대기업과 그룹사들이 당초 기대이하의 성과를 얻어낸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일례로 지난 95년 소프트타운을 전격 인수해 화제가 됐던 해태그룹은 매출이 당초 기대에 크게 못미침에 따라 올들어 해태전자내 유통망과 조직을 대폭 축소하고 나선 상태이며 모던인스트루먼트를 인수한 성원그룹도 인력을 대폭 물갈이하고 사업재정비에 나서는 등 후유증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사정은 자회사를 설립하거나 전담부서를 신설한 기업도 마찬가지다. 농심그룹과 대농, 벽산, 코오롱, 고합, 모나미 등 최근 2~3년동안 정보통신분야에 신규 진출했거나 유통사업을 강화한 대부분의 대기업 계열사들이 지난해말부터 매출부진과 악성채권, 부실담보 등으로 사업확대를 자제하고 내실 다지기에 나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김익수 삼성전자 마키팅 담당부장은 『정보통신분야가 황금알을 낳는 산업이라는 인식이 보편화돼 있기 때문에 이 분야와 상관없는 기업들로서는 당연히 정보통신산업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당연하다』고 전제하며 『그러나 신규정보통신업체를 책임지고 있는 경영자들로서는 자리를 지키고 모기업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라도 무리한 외형부풀리기 경쟁에 나설 수 밖에 없으며 이것이 이번 부도사태의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정보통신 분야에 진출한 일부 대기업과 그룹사들이 기대에 못미치는 경영성과를 거둔 것은 사실이지만 치밀한 사업기획과 경영분석, 투자 등을 병행할 경우 사업을 성공으로 반전시킬 가능성은 매우 높다.
업계에 따르면 최근 실시된 M&A중 비교적 성공한 사례로 한솔전자와 두고정보통신 등을 꼽고 있다. 한솔전자는 지난95년부터 한국마벨과 옥소리, 한화통신 등 중견컴퓨터주변기기 제조업체를 잇따라 인수해 화제가 된 기업. 한솔은 6개월이상 내부조직 정비와 사원교육을 단행하면서 대대적인 신규투자를 병행, 모니터 및 컴퓨터 주변기기 전문업체로 자리매김하는데 성공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한솔은 지난해말부터 삼성전자가 독주해 온 모니터 시장을 빠르게 잠식하고 있으며 팩스모뎀과 사운드카드 분야에서도 점차 시장 점유율을 높여가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두고그룹도 지난해 토피아를 인수한 직후 이미지통합(CI)작업과 사업재정비를 단행, 「컴마을」이란 브랜드의 중견 PC업체로 변신한 성공사례로 주목받고 있다.
관련업계에 따르면 올해에도 삼양, 야쿠르트그룹 등 4~5개 그룹사가 「황금알을 낳는 산업으로 주목받고 있는 정보통신, 컴퓨터 분야」에 진출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국내 컴퓨터, 유통분야가 경쟁력을 확보하려면 대기업과 그룹사들의 신규진출이 불가피하다』고 전제하고 『이들기업이 어떤 분야에 진출할 것인지, 어떤 기업을 인수할 것인지 철저하게 분석하고 옥석을 가리는 것만이 유통사들의 외형불리기에 따른 대규모 연쇄부도를 예방하는 첩경』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남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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