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 관람석] 초록물고기

갑갑하던 인생이 왜 갑자기 환해졌을까를 까맣게 잊고 있을 때쯤 <초록물고기>같은 영화를 보는 일은 즐거운 일이다.그러나 이 영화로 인해 문득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면 그것은또한 괴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회색빛 도시에서 흐뭇해 하는 당신의 행복이 도대체 어디서비롯했는가를 어눌하게 가르쳐 주는 슬픈 기억과 만나야 하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는 세 명의 초록물고기가 있다.배태곤(문성근 분), 미애(심혜진 분), 막동(한석규 분)이다.배태곤은 초록물고기였던 시절의 기억을 저주하며 그것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안간힘을 쓰는 자이다. 깡패 두목이면서도 깡패 두목이라는 사실을 스스로 부인하는 자이며,깡패두목같지 않은 특이한 면모가 실제로 있기도 한 자이다. 미애는 자신을 초록 물고기라고생각하는 자이다. 그러나 그러한 소망과는 달리 타락한 삶을 살아야 하는 데에 그녀의 비극이 있다. 그녀는 그러한 비극으로부터 일시적으로나마 탈주하는 두 가지 방법을 알고 있다.그 하나는 술 취해 사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도시를 빠져나가는 기차를 타는 일이다.

배태곤의 호출을 받고 번번히 되돌아가야 하지만 그 순간은 맨정신으로 숨쉬는 유일한 시간이다.따라서 기차에 매달린 채 숨을 몰아쉬는 두 사람을 보여주는 이 영화의 첫 장면은 의미심장하다.미애의 힘겨운 숨쉬기가 어떻게해서 힘차게 호흡하던 막동의 숨통을 막아버리는가를충분히 암시하기 때문이다.

막동은 자신이 바로 초록 물고기임을 모르고 있는 자이다. 그는 초록 물고기가 타인 속에있다고 생각한다.그리하여 그는 자신의 큰 형을 아끼고 미애에게 이끌린다. 그리하여 그는큰형의 상처인 기형과 저능을 감싸주고 미애의 상처인 더러운 육체를 자신의 순결한 몸으로 정화시켜 준다. 그의 비극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는 이미 기형이 된 초록물고기들을 구하기위해 온전한 초록 물고기인 자신을 내던져버리는 무모한 자이다.

이창동이 연출한 <초록 물고기>는 깡패들이 나오는 영화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폭력물 특유의 액션이나 긴장감을 전달하지 않는다. 이 영화가전달하고 있는 것은 폭력이 아니다. 굳이 폭력이라는 용어를 쓴다면 그것은 자해라는 방식으로 행사되는 폭력이며, 폭력을 행사할만한 성품이 못되는 자가 막다른 곳에 몰려서야 비로소 선택한 자포자기적인 몸짓 같은 것이다.

막동을 죽인 자는 물론 배태곤이다. 미애 또한 책임을 느껴야 할 것이다.그뿐일까.아니다.돈의 힘에 의해서만 비로소 행복해질 수 있는 그의 가족이, 그 모든 천박한 행복을 양산해내는 자본주의가 책임져야 한다고 감독은 힘주어 말한다. <겨울나그네>의 민우의 의미가 그러하듯이,막동은 우리가 행복해지기 위해 「제거해버린 초록 물고기」, 「지불해버린 마지막 순수」였기 때문이다. 묻자.이 초록 물고기에 대해 관객인 당신은 얼마나 비감을 느끼는가.미애만큼인가 배태곤만큼인가. 역량있는 신인 감독의 탄생에 박수를 보낸다.

<채명식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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