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한국IPC부도 휘청거리는 유통업계 (1);왜 쓰러졌나

한국IPC가 부도를 냈다. 거래업체들의 피해규모가 1천억이 넘을 것으로 관계자들은 예상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IPC 부도에 따른 컴퓨터, 부품유통업체들의 파장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연쇄부도가 우려되고 있다. 용산전자상가의 영세업체는 물론이고 제법 규모를 갖춘업체도 이번 부도로 휘청 거릴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태의 돌파구는 없는가. 피해를 입은 관계자들의 앞날은 막막할 뿐이다. 연일 머리를 맞대고 대책을 강구하고 있지만 뚜렷한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한국IPC의 부도 원인과 현황, 향후 여파를 시리즈로 엮어 본다.<편집자>

한국IPC의 부도는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대부분의 부도가 그렇듯 한국IPC의 부도도 원인은 비슷하다. 제품의 부실, 방만한 경영, 지나친 투자, 난무한 덤핑, 이로 인한 자금사정의 악화 등이다. 여기에 덧붙여 대기업이 계열사인 두원전자와 연결고리이다.

한국IPC는 95년 11월이후 최근까지 「마이지니」 PC제품을 주력으로 판매해 왔다. 대개의 외산PC가 그렇듯 국내 PC시장의 5%도 차지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마이지니」는 대대적인 광고공세를 펼쳐왔다. 그러나 「마이지니」에 대한 소비자의 평가는 냉정했다. 「마이지니」PC의 시스템 안정성 및 호환성에서 계속 문제가 되어왔다. PC통신 「IPC방」에는 언제나 마이지니의 품질에 대한 불만이 쏟아졌다. 어느 메이커보다 많은 건수이다. 이뿐만 아니다. 일선 양판점이나 컴퓨터전문 판매점에서조차 IPC 제품판매를 꺼렸다. 나진컴퓨터랜드 구매과의 한 관계자는 『단위매장으로서는 나진컴퓨터랜드가 가장 많은 IPC제품을 판매하고 있는데 AS손실비용이 이만저만이 아니다』라고 밝히고 있다. 지난해 나진컴퓨터랜드가 판매한 IPC제품은 약 3천대 가량으로 하루평균 6건의 AS가 접수되고 있다. 결코 적지 않은 건수다.

여기에 그동안 싱가포르에서 수입에 의존하던 제품을 한국IPC가 성원정보기술에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납품받으면서 1백억의 투자를 한 것도 부도를 부추기는 요인이 되었다. 그러나 성원정보기술은 IPC 싱가포르 본사의 지급보증을 받았기 때문에 이번 부도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 시장 캐퍼에 비해 지나친 투자가 불러일으킨 사업확장이란 것이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이에 따라 자금사정이 악화된 한국IPC는 자금회전을 위해 대량 덤핑이 불가피하게 됐다. S기업 등에 15인치 모니터를 포함한 1백33 제품을 대당 50만∼60만원에 두달후 15%의 이자로 견질잡혀 자금을 운용하는 상황까지 치닫게 된 것은 한국IPC의 자금사정을 대변해주는 대목이다. 제품판매가 부실하고 견질로 잡힌 제품의 회수가 어렵게 되자 IPC제품은 덤핑판매되고 이미지는 계속 실추되는 등 악순환을 거듭하게 됐다.

주목할 만한 사실은 이러한 상황에 한국IPC가 「멀티그램」과 전략적 제휴를 맺는 과정이다. 한국IPC의 발행어음이 부실어음으로 낙인찍혀 더이상 통용되기 어렵자 「멀티그램」의 배서를 받은 융통어음을 시중에 유통시킨 점이다. 「멀티그램」신용도를 등에 업자는 전략이다.

특히 「멀티그램」은 두원그룹의 계열사인 두원전자가 출자한 회사로 알려져 이번 부도 피해자들은 믿고 받아줄 수 있었다는 것. 현재 「멀티그램」이 배서해 유통중인 한국IPC의 발행어음은 약 3백억원에서 6백억원 사이의 금액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러나 두원그룹측은 부인하고 있다. 두원전자에서 단독 출자한 것뿐이라는 것. 오히려 멀티그램의 남기병 사장이 개인적으로 취한 행동으로 동부지청에 배임혐의로 고소한 상황이다.

그러나 상가의 입장은 다르다. 이번 부도의 파장이 확산되고 있는 것은 한국IPC의 신용이 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멀티그램」이 중간다리 역할을 해 피해규모가 더 커졌다는 주장이다. 또 「멀티그램」은 두원전자가 출자한 회사이고 두원전자는 1조5천억이란 매출을 올린 두원그룹의 자회사란 점에서 믿고 거래를 했다는 것. 이제와서 남 사장을 고소하고 두원전자 독자의 행동으로 규정하는 것은 개인을 희생양으로 채무를 최소화하자는 뜻으로밖에 해석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상가 관계자들은 일례로 두원그룹이 「멀티그램」이 발행한 어음에 대해선 결제를 해준다는 입장과 지급보증(배서)을 서준 어음에 대해선 책임이 없다는 입장을 비추고 있는 것은 막상 부도에 닥쳐 발을 빼는 대기업의 관행이 아니냐고 비난하고 나섰다. <이경우 기자>

제품의 부실, 지나친 투자, 자금악화에 따른 어음의 편법운용, 대기업의 중간다리 역할로 이번 한국IPC의 부도는 얼룩져 있다.

<이경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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