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민.
오늘 시골에서 올라오는 부모님을 혜경에게 소개시켜 주기로 한 승민이었다.
혜경은 승민을 위해 어젯밤에 불을 붙였던 초까지 다 치우고 출근했었다. 마지막, 이젠 마지막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촛농이 임의롭게 흘러내린 초들을 하나하나 정리했다. 비록 자신의 오피스텔을 방문하지는 않을 것이지만 정리하고 싶었다. 이제 다시 촛불을 켜지 않았으면 싶은 마음으로 정리했다. 이젠 끝내야 할 때가 되었다. 승민의 가족을 만나 이제 결혼을 구체화시켜야 하는 지금, 이젠 끝내야 될 때가 되었다.
프로메테우스의 간장을 후비는 독수리와는 달리 혜경은 환철에게서 언제든 벗어날 수 있다고 여겼다. 그것이 오늘까지 벗어나지 않고 있었던 가장 큰 이유가 되었다. 혜경이 그렇게 여길 만큼 환철은 객관적이었다. 결코 혜경이 원하지 않는 경우에 찾아들지 않았다. 혜경이 무엇을 선택해도 상관없는, 혜경의 선택을 다만 받아들일 뿐이었다.
비록 환철의 불씨를 키워 잠재울 수 없을 만큼 커다란 불꽃이 되었지만, 그 불꽃을 사를 수 있는 상대를 갖는 것 자체가 승민과의 관계를 유지하는 길이 된다는 믿음이 있기도 했다.
환철은 순교자였다. 섹스를 위한 순교자. 섹스는 환철에게 신앙이며, 종교였다. 믿음처럼 보여졌다. 그러면서도 일면 영웅적이기도 했다.
혜경이 원하는 모든 행위를 거침없이 행하는 환철이 혜경에게는 영웅적으로 비쳐졌다. 섹스.
얼마나 임의로운가. 환철은 혜경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행위를 파격적으로 행해 주었다. 섹스 뿐만이 아니었다. 경제적인 것에서도 그랬다.
승민의 작디작은 자취방과 환철의 오피스텔과 자신에게 제공된 오피스텔의 넓이도 늘 환철을 영웅적이게 했다. 영웅과 순교자라는 개념은 동일한 개념일 수도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승민에게도 영웅적인 요소는 있었다. 분명 승민의 지적인 면과 예술적인 감각은 환철의 돈과 섹스에 뒤지지 않는 면모를 지니고 있었다.
환철과 승민.
그 각각은 즐거움이었다. 아픔이었다. 선이며 동시에 악이었다. 혜경에게 있어서는 둘 다 고통이며 쾌락이었다. 둘 다 충분한 유희적 요소를 가지고 있었다. 둘 다 충분한 고통의 대상이었다.
오피니언 많이 본 뉴스
-
1
[ET시론]대한민국 AI의 심장, AI 데이터센터
-
2
[데스크라인] 폐쇄적 정책의 후과
-
3
[사설] 금융사 보안공시에 파격 인센티브 주라
-
4
[김장현의 테크와 사람] 〈104〉인공지능 시대의 문해력
-
5
[사설] 구글 제재, 앱 생태계 회복 출발점돼야
-
6
[GEF 스타트업 이야기] 〈89〉기부 시장의 '매슈 이펙트'와 컴포저블 거버넌스의 시대
-
7
[기고] 과징금의 목적은 처벌이 아니라 예방이다
-
8
[인사] NH투자증권
-
9
편집기자협회·대교뉴이프, 韓 장례문화 3부작 진단
-
10
“AI로 안전관리 고도화” 한국승강기안전공단 창립 10주년
브랜드 뉴스룸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