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 캔을 비운 사내는 천천히 오피스텔을 나섰다. 이제 확인과정이 필요했다. 자신이 시도한 행위에 대한 결과를 가까이에서 확인하고 싶은 것이었다.
올라올 때처럼 아무도 없었다. 20층. 엘리베이터가 18이란 숫자를 빠르게 지나칠 때 사내는 그녀를 잠깐동안이지만 떠올렸다. 오겠지, 오늘도 오겠지. 비록 은행의 온라인이 끊겼을지라도 그녀는 오게 될 것이다.
사내는 천천히, 사람들이 길 양편으로 몰려 있는 광화문 네거리 쪽으로 다가갔다.
많은 구경거리 가운데 불 구경은 유독 흥미롭다.
구경꾼들의 공통점은 방관자이다. 자기 일이 아니라는 사악한 여유가 구경한다는 행위 자체를 즐겁게 만든다. 구경꾼에게 도덕이니 양심이니를 따질 필요는 없다.
사내는 몰려든 무리들의 눈빛에서 안타까움과 함께 흥미로움을 읽을 수 있었다. 사내는 여유롭게 그들을 바라보았다. 자기의 시도에 따른 군중의 표정을 느끼기 위해서였다. 불꽃이 솟아오르는 곳으로 좀더 다가들었다. 사이렌소리와 사람들의 웅성거림 속에서 사내는 내면적 지배감을 즐겼다.
자신의 작품을 가까이에서 바라보는 기분, 그것은 신을 가장 잘 흉내낼 수 있는 순간이기도 했다. 사내는 자신의 작품을 좀더 가까운 곳에서 불꽃을 바라보기 위해 사람들의 틈을 비집고 불꽃이 솟아오르고 있는 쪽으로 다가섰다. 불꽃과 함께 연기도 계속 솟아오르고 있었다.
사내는 세차게 피어오르는 불길을 보며 자신의 시도가 배화교의 사제가 행하는 희생제의의 한 과정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순수하지 못한 모든 것들이 자신이 피워 올린 불을 통해 정화되어야만 하며, 이러한 희생제의를 통하여 순수함에로 나아갈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배화교.
불이 행하는 특별한 역할로 인해 붙여진 이름.
전설적 예언자 조로아스터를 따서 조로아스터교라고 부르기도 하는 고대 이란의 종교.
하늘 높이 치솟는 불꽃을 바라보며 한동안을 그렇게 서 있던 사내는 배화교, 그 성스러운 불의 제의를 주재하는 아트라바노스를 떠올렸다.
아트라바노스.
배화교의 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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