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96 전자산업 부문별 결산 (17.끝);유통

전자유통업계의 96년은 그 어느때보다 변화가 심했던 한 해였다. 유통시장 전면 개방으로 외국 가격파괴형 신업태의 진출이 활발했던 한 해였으며 경기불황의 장기화가 계속되면서 판매부진으로 어려움을 겪었던 한 해였다. 창고형 할인매장에 이어 백화점, 일선 대리점까지 가격파괴 경쟁을 벌이면서 「마진없는 장사(?)」에 매달려야 했던 한 해로 기록되고 있다.

일선 대리점들은 외국 전자양판점과 경쟁에 대비, 사세확장을 위한 매장대형화에 나서 경쟁력 있는 매장으로 변신을 시작했다. 또 그동안 찾아 오는 손님들을 대상으로 제품을 판매하던 것과 달리 고객을 유인하기 위해 이벤트를 준비하는 등 공격적인 마케팅 전략을 구사하면서 영업방식의 혁신을 꾀하기도 했다. 세진, 나진컴퓨터랜드 등 컴퓨터 유통업체와 전자랜드, 하이마트 등 전자종합양판점들도 전국 각지에 매장증설에 나서 근대적 개념의 다점포 양판점으로 성장세를 구가했다.

연초 경기회복 등으로 지난해보다 10% 정도 매출신장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했던 가전업계는 경기불황에 따른 판매부진으로 가전제품 시장이 전반적으로 마이너스 성장, 90년 들어 최악의 상황을 기록했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대부분 업체들은 매출목표 달성에 실패했으며 경쟁력을 잃은 수많은 가전대리점들이 소리없이 문을 닫았다.

이는 내수경기 부진이라는 외적여건의 영향도 크지만 신유통업태인 킴스클럽, E마트, 프라이스클럽 등의 영업강화와 자본력을 갖춘 외국 유통업체 마크로, 까르푸 등의 대형매장 개장 등에 대한 대비책을 제대로 세우지 못한데 기인하고 있다.

올해 1월 1일부터 유통시장의 전면 개방에 따라 외국업체들의 적극 공세가 예상돼 왔었다. 고객유치를 위한 업체간의 가격인하 경쟁이 치열할 것이라는 것도 예견됐다. 이에 따라 가전업체들은 연초부터 외산제품과 경쟁에서 우위에 서기 위해 지방 주요 도시에 대리점 유치활동을 강화했으며 대리점 매장규모 확대, 서비스력 증대 작업에 주력했다. 또 일선 대리점 친절도 향상에도 전력을 다했다.

가전업체들의 이같은 노력에 의해 대리점들의 매장분위기는 많이 개선됐으나 이것이 대리점의 실판매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대리점 규모에 따라 매출규모는 다르지만 대부분의 대리점 매출실적이 지난해보다 10% 이상씩 하락하고 가격인하 경쟁에 따른 마진확보가 어려워 매장운영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게 대리점 관계자의 설명이다.

올해 가전유통 분야에서 또 하나 두드러진 것은 가전대리점들이 소비자들의 다양한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가전제품 이외 컴퓨터 및 정보통신기기(C&C)를 취급, 품목다양화를 꾀하고 있다는 것이다. 업체별로 C&C제품을 취급하는 대리점수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는 없지만 현재 전체 대리점의 30% 정도가 C&C제품을 취급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국내 가전업체들의 전반적인 불황속에서도 외산 가전업계는 그나마 소폭 신장세를 기록했다. 국내 대표적 외산 가전업체인 백색가전, 두산상사 등의 올해 매출액은 각각 4백억원, 3백50억원으로 지난해에 비해 약 50억원 정도씩 늘어났다. 올해 초 각사가 예상한 매출액이 5백억원, 4백억원이었던 것을 고려하면 매우 저조한 실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입가전 업체들의 매출이 소폭이나마 신장할 수 있었던 것은 외산업체들의 자구 노력보다는 백화점업계의 지방출점 가속화와 대규모 할인점들의 등장으로 봐야 한다.

그러나 해마다 1백% 이상의 매출신장을 기록해 온 외산가전 업체들은 달러화 인상에 따른 마진 감소와 백화점업계의 일방적인 가격인하 등으로 이중고를 겪었다.

게다가 경기 침체에 따른 소비심리 위축과 정부와 민간단체의 과소비 억제 캠페인 등의 악재가 겹쳐 대부분의 외산가전 수입업체들의 매출실적이 연초 목표액의 75~80% 수준에 머무를 것으로 보인다.

올해 컴퓨터 유통시장은 지난 94년 이후로 지속된 장기적인 침체의 늪을 벗어나지 못함에 따라 각 유통업체들의 적자액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등 유통시장 개장 이래 최악의 상황을 기록했다.

컴퓨터 유통시장을 주도해 온 토피아, 소프트타운 등 중견 업체들이 잇따라 대기업에 인수되거나 합병되는가 하면 상당수 중소 유통업체들이 부도를 내고 도산했으며 일부 업체는 전업하는 사례가 속출했다.

유통업체들이 시장상황 타개의 일환으로 전개한 양판점 사업이 전체 유통업계에 몰아쳐 기존 세진컴퓨터랜드를 비롯해 아프로만, 나진컴퓨터랜드, 서울전자유통 등 신규 업체들이 대대적인 전국 양판점망을 구축하기에 이르렀다. 여기에 용산 등 전자상가의 PC조립업체들의 몰락이 가속화했다. 이와 함께 자체 브랜드 PC를 출시하는 생산업체도 대거 늘어났다.

컴퓨터 유통과 달리 정보통신기기 시장은 그런대로 호경기를 기록했다. 무선호출기와 휴대전화 등 이동통신기기 유통시장은 이동전화 서비스 가입자와 무선호출 가입자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규모가 거대화했다. 하지만 이동통신 대리점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각 대리점당 경영여건은 기대만큼 호전되지는 못했다.

특히 지난 4월 세계 최초로 코드분할다중접속(CDMA)방식의 이동전화 서비스가 개시된 이후 디지털 단말기가 40만대 이상 보급되면서 유통시장은 큰 변화를 보였다.

휴대전화와 무선호출기 단말기 시장에서 10년간 아성을 지켜온 모토로라가 삼성전자 등 국내 제조업체에 이동통신기기 시장점유율 1위자리를 내주는 수모를 겪었으며 이동통신 단말기 가격기준이 사라지는 기이한 현상이 발생했다.

무선호출기 가격은 동일모델이라도 대리점에 따라 최저 1만원대에서 8만원대로 판매되고 있고 휴대전화도 연말을 앞두고 이동통신 서비스 사업자들의 가입자 확보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제조원가를 훨씬 밑도는 10만∼30만원에 거래되고 있다.

부품 유통업계는 한마디로 어려운 해를 보냈다. 아직까지 공식적인 집계가 이뤄지지 않았으나 95년도의 부도율을 훌쩍 넘어서리라는 것이 지배적인 전망이다. 부품 유통업계는 컴퓨터 유통의 호, 불황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사상 최악이라는 불황속에 컴퓨터 유통업체들의 연이은 도산이 부품 유통업계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이같은 상황 아래서 부품 유통업계의 96년 한 해는 소프트라인의 부도 이후 제일나노텍, 서로컴퓨터로 이어지는 도산으로 피해가 컸다.

이러한 변화의 움직임은 비메모리라는 새로운 시장을 형성하는 밑거름이 됐다. 메모리로 대변되던 부품 유통시장은 가격 하락으로 점차 색깔이 퇴색해 가고 각 업체마다 비메모리에 주력하는 영업정책을 전개했다. 석영전자, 삼테크, 승전 등 대규모 부품 유통업체들은 기술연구소를 설립하고 전문인력을 확보하는 등 비메모리로의 영업방향 전환을 위해 몸부림을 쳤다. 그 결과 올해 부품 유통업체들은 불황의 늪에서 비메모리로 사활을 거는 새로운 모습을 보이게 됐다. 메모리시장은 더이상 갈 수 없는 길이란 사실이 좀더 고부가가치의 사업을 이끌어낸 것이 올해의 새로운 변화다.

케이블TV 홈쇼핑시장은 지난해 출발기를 넘어 약진세를 보였다. 현재까지 홈쇼핑의 유통시장 점유율은 0.5%도 안되지만 케이블TV 시청자 가입이 계속 늘고 있는 추세여서 홈쇼핑 사업은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가진 사업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특히 대기업과 공중파방송, 해외 위성방송과의 합작제휴로 판매영역 확대를 꾀한 것도 TV홈쇼핑이 올해 이루어낸 큰 성과로 꼽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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