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가전업체들이 세계 가전산업을 장악하고 있는 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응용기술이 뛰어난 점을 꼽는 전문가들이 적지 않다.
다른 나라가 개발한 원천기술은 대체로 일본 가전업체를 거치면서 싱용화됐다. 첫 상용화는 초기시장을 선점할 수 있어 아무래도 유리한데 일본 가전업체들은 80년대 이후 가전제품의 상용화를 주도하고 있다.
그동안 일본업체가 상용화한 기술을 흡수하는 데 급급했던 우리나라 가전업체들이 최근 첫 상용화에 관심을 돌리고 있는 것은 바로 이같은 이유에서다.
이 점에서 LG전자의 이성화 책임연구원(39)은 우리 가전업체가 일본업체보다 앞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몇 안되는 사람 가운데 하나다.
이 책임연구원은 그가 이끄는 9명의 팀원과 아울러 「플라즈마 공기정화기술」을 세계 처음으로 가정용 에어컨에 적용, 상용화하는 데 성공했다.
플라즈마 공기정화기술은 옛 소련이 지하벙커의 오염물질을 제거하는 데 쓴 기술. 순간적인 고전압을 발생시켜 먼지와 냄새성분을 플라즈마라는 에너지 상태로 산화 분해시키는 기술이다.
건강에 대한 소비자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세계 가전업체들은 이 기술을 가전제품에 응용하기 위해 안간힘을 써왔는데 이번에 LG전자가 맨처음 상용화에 성공한 것이다.
부산대 기계공학과 출신인 이 연구원은 대학원 과정을 마친 지난 85년 2월 LG전자에 입사, 현재 LG전자 리빙시스템연구소 정화기술팀에서 공기청정프로젝트를 이끌고 있다.
줄곧 공기정화부문을 연구한 그는 91년 일본의 공기정화관련 학회지를 통해 플라즈마 공기정화기술을 접한 뒤부터 여기에 매달려왔다.
일본과 러시아를 넘나들며 플라즈마 공기정화기술에 대한 정보를 수집한 그는 93년부터 본격적인 연구개발에 들어갔다.
먼저 울산대 화학과와 함께 우리나라 가정의 냄새성분에 대한 조사작업에 들어갔고 이후 경북대와 부산대의 전기공학과와 공동으로 가정용에 맞는 저온플라즈마를 응용한 유해가스 제거기술과 최적 설계기법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95년부터 1년 6개월 동안 저온 플라즈마의 냄새제거 메커니즘을 알아내는 데 성공했고 이를 바탕으로 한국기계연구원, 한국식품개발연구원 등 연구기관과 협력업체와 함께 본격적인 제품 상용화에 들어가 지난달 첫 상품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그동안 개발을 포기하려는 생각이 든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고 이 연구원은 털어놓았다. 경쟁상대인 일본업체들이 정보유출을 원천봉쇄해 처음부터 끝까지 스스로 개발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곱지만은 않은 주위의 시선도 어려움이었다.
제품개발에는 각종 냄새에 대한 분석과 실험이 불가피한데 이 팀이 한달에 두번꼴로 실시하는 실험 때만 되면 연구소 전체가 악취로 뒤덮여 다른 연구팀으로부터 항의가 잇따랐다. 차가 없는 연구원들은 통근버스도 타지 못할 정도였다고 한다.
무엇보다 『당장 시장성이 없는데 개발비와 인력만 낭비한다』는 일부의 눈총은 참기 어려웠다고 그는 전했다.
그러나 이같은 어려움을 딛고서 이 연구원과 9명의 팀원은 플라즈마 공기정화기술을 처음으로 상용화하는 데 성공했다.
이 연구원은 이 기술을 내년초에 일본에서 발표할 계획이다. 우리 가전업체가 일본업체보다 앞선 분야가 있다는 점을 과시하고 싶어하는 눈치다.
그는 『이번에 개발한 기술은 플라즈마기술에서 극히 일부만 응용된 것으로 앞으로 다른 가전제품에 응용할 여지가 많다』면서 LG전자가 이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자리에 올라서는 데 디딤돌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신화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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