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통합 전자주민카드

최근 전자주민카드와 관련한 언론보도가 많다. 전자주민카드에 대한 인식이 높지 못했던 몇개월 전과 비교하면 큰 발전이기는 하다.

정부는 전자주민카드가 정보사회에 적합한 새로운 형태의 주민등록증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 제도는 행정기관이 보유하고 있는 대부분의 개인정보를 통합 데이터베이스화하는 것이기 때문에 주민증이나 운전면허증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신분확인증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통합전자주민카드를 발급하기 위해서는 주민등록법이나 개별법의 개정만으로는 부족하고 헌법원칙에 따른 문제점을 사전에 검토하여 그에 맞는 별도의 법률을 제정하여야 한다.

그런데 정부는 아무런 법률적 근거없이 전자주민카드의 시범서비스까지 마쳤고 이미 4백억원 정도의 예산을 사용하였다고 하니 이는 위헌, 위법행위임이 분명하다. 모든 국가행정과 예산집행은 헌법원칙에 부합하여야 하고 법률적 근거를 가져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전자주민카드와 관련한 문제점은 행정기관의 위법행위를 「지적」하고 그 시정을 「요구」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아직까지 전자주민카드의 위법성과 문제점이 분명히 지적되지 않고 있으며, 여전히 그 필요성을 논하거나 왜 문제인지 잘 모르겠다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이는 우리가 「주민등록증」을 가지고 다닌 지 벌써 28년이 되었는데 그 이유가 있는 듯하다.

우리는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지난 28년 동안 열 손가락의 지문을 찍어 등록하고 나이와 출신지를 적은 주민증을 가지고 다녔다. 이제와서 운전면허증 등을 주민증과 함께 묶는다고 하여 큰 차이가 있겠는가 하는 것이다. 그러나 오로지 신분확인만을 위한 「전국민 고유번호제도」와 주민등록제를 시행하고 있는 나라는 우리가 거의 유일하다.

전국민 고유번호제도는 국민의 사생활권을 침해할 우려가 있어 일부 국가에서는 헌법으로 이를 금지하고 있는데, 정부는 전쟁과 남북대치상황을 틈타 「간첩이나 불순분자를 용이하게 식별색출하여 반공태세를 강화하기」 위한다는 명분 아래 쉽게 도입하였고 우리는 오랫동안 이 제도에 순치되어 왔기에 사생활권 침해 가능성의 측면에서 주민증과 비교할 수도 없는 전자주민카드에 대하여도 무덤덤한 것이다. 하지만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모든 사람에게는 자신의 신상정보를 강제로 공개당하지 않을 헌법적 권리가 있다는 사실이다.

최근 일본정부가 계획하고 있는 「주민기본대장코드제도」의 경우 주민코드에 의하여 출신지, 나이 등을 판별할 수 없도록 하였는데도 국민의 반대에 부딪혀 시행에 난항을 겪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매일같이 남에게 보여주고 불러주는 주민등록번호만으로 그 사람의 성별, 나이, 출신지 등을 알 수 있게 되어 있다. 더구나 주민증에는 그 사람이 현역 출신인지, 단기사병 출신인지, 군면제자인지 기재되어 있고 본적지와 호주가 명시되어 있다. 연공서열과 출신지역이 중요시되고 군복무를 어떻게 하였는지가 그 사람을 평가하는 중요한 기준이 되는 우리 사회에서 관련 신상정보를 강제로 공개하도록 하는 제도는 개인의 인격권과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제도임이 분명하다.

또 그 정보의 악용 여부를 떠나 자신을 드러내지 않을 권리인 프라이버시권을 정면으로 침해하는 것이다.

이제 전자주민카드와 관련한 「공방」은 주민등록증 「공방」으로 바뀌어야 한다. 국가적인 신분확인제도가 필요하다는 점에 이의를 제기할 생각은 없다. 다만 신분을 확인하는 데는 그 사람의 사진과 국가의 인증도장만으로 충분하다는 것이다.

미국과 일본 등 일부 국가에서는 기초적인 신분확인제도마저 없는데 그러한 제도가 없다고 하여 국가행정이 원활하지 않다거나 경제질서에 혼란이 있다는 말은 듣지 못하였다.

따라서 주민증은 생년월일, 출생지, 병적관계 등이 삭제된 새로운 신분확인제도로 변경되어야 하고 주민등록번호 부여방법도 개편되어야 한다. 이러한 새로운 신분확인제도의 도입없이 시행되는 통합전자주민카드는 헌법의 일부 조항을 폐기하자는 것과 같다.

<金基中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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