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차 세계대전 이후 전세계 문학계에 일대 센세이션을 일으킨 소설 가운데 하나가 「데미안」이다. 헤르만 헤세의 자전적 소설이기도 한 이 작품은 정신적으로 혼돈상태에 빠진 에밀 싱클레어가 친구 데미안의 도움을 받아 정체감을 갖기까지의 내면세계를 탁월하게 묘사했다는 평을 얻었다. 이 소설에서는 그러한 과정을 「알에서 깨어나 새로운 세계로 향하는 것」이라고 표현함으로써 「알을 깬다」는 말을 유행시키기도 했다.
그런데 자연의 세계에서 실제로 조류들은 알을 깨고 나오는 데 어떤 도움도 받을 수 없다. 어미새들은 비교적 오랫동안 자리를 뜨지 않고 알을 품지만 부화하는 과정에서는 그것으로 끝이다. 어둡고 좁은 공간에서 벗어나 큰 세상으로 나오기 위해 연약한 부리로 알 껍떼기를 힘들여 깨야 하는 것은 오로지 새끼 새의 몫이다. 어미 새가 알을 깨는 작업을 도와줄 수도 있으련만 절대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신비스러운 일이지만 인간이 인위적으로 새끼 새들의 「알깨기」를 도와주면 새끼 새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죽어버리거나 몸이 아주 약해진다고 한다. 새들이 알을 깨는 과정에서 신체리듬이 활성화하고 면역체계도 강화된다는 것이다. 대부분 동물의 세계에서 맹금의 위협이 항상 도사리고 있을 때 맹금의 먹이사슬에 매여 있는 동물들은 맹금의 위협이 없을 때보다 오히려 건강하다고 한다.
자연상태에 있는 야생동물들의 생태를 보면 자본주의의 완전경쟁시장의 그것과 비슷하다. 경쟁을 통해 강자는 한층 강해지고 약자는 때론 강자의 「먹이」가 되기도 하지만 강자의 위협에서 벗어나기 위해 강해진다.
최근 정부가 컬러TV와 카오디오 등 가전제품을 수입선 다변화품목에서 해제할 것이라는 설이 파다하다. 수입선 다변화 조치가 필요했던 것은 우리나라와 일본의 기술격차가 크고 무역역조 또한 심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오랫동안 실시돼 온 수입선 다변화 조치는 기업체들이 「스스로 알을 깨는 수고」를 없애줌으로써 자생력을 약화시켰던 것도 사실이다. 그에 앞서 해결해야 할 점은 국산품 가격이 외산보다 30% 가량 높아져 국제경쟁력을 약화시키고 있는 가전제품에 대한 특별소비세 부과다. 그것이 폐지된다면 완전경쟁시장에서 우리도 「위험」과 그것이 가져다 주는 「기회」를 동시에 맛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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