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들은 얼마 전 국회 본회의장에서 있었던 한 초선 의원의 「실험」을 기억한다. 그는 대한민국 국회에선 「처음으로」 대정부 질의를 위해 단상에 노트북을 들고 올라갔고 각종 그래픽 자료는 빔 프로젝트에 연결했다. 물론 국회 규정을 앞세운 국회의장에 의해 무산되었지만 그의 「실험」은 장안의 화제가 됐다.
그 주인공은 정호선 의원(국민회의, 전남 나주). 15대 국회에 첫 발을 디딘 정 의원은 매우 독특한 경력의 소유자이다. 전남 나주가 고향이면서 대구에서 20여년간 교수로 재직했고 프랑스 툴루즈공대 박사에 국내 44건, 국제 59건의 특허를 출원한 대표적인 전자공학분야 석학이다.
이런 화려한 경력 탓인지 정 의원이 비록 초선이지만 지난 국감은 물론 최근 계속되고 있는 예산안 심의에서도 정보통신 관련 부처나 기관들은 「초긴장」 상태였다.
해당 부처 관료들보다 소관 업무를 훨씬 전문적으로 꿰뚫고 있고 현장 감각까지 겸비한 정 의원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괜스레 어려운 첨단용어를 동원, 어물쩍 넘어가는 과거의 관행이 통하지 않게 된 것이다. 그래서 그가 속한 통신과학위원회 산하 기관에는 『시어머니를 단단히 만났다』는 말이 퍼졌다고 한다.
정 의원은 우리 국회에도 정보화 시대에 걸맞은 전문 의원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기존에는 정치가 잘 돼야 경제가 풀리고 다시 과학기술이 진흥된다는 일종의 톱 다운 개념이 통용되어 왔다』고 지적하고 『그러나 정보화 사회에서는 과학기술이 발전해야 경제가 일어나고 정치가 바로 선다는 바텀업 개념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전자공학 교수 출신의 「전문가 의원(그의 명함에는 21세기 하이테크 정치인이라고 적혀 있다)」으로서 자신이 하기에 따라 국회의 정보 마인드가 변할 것이라는 사명감을 갖고 있다. 정 의원이 본회의장에 노트북을 들고 올라간 것도 정보화에 관한한 「닫힌 국회」를 「열린 국회」로 바꾸어 놓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정보화가 가장 뒤진 국회(의원회관에 지급되는 PC의 주종이 286이고 프린터는 아예 제외된다)에 그가 몰고 온 새 바람은 화제가 됐다.
지난 여름엔 동료 의원 및 보좌관들을 대상으로 인터넷 교육을 처음 실시했다. 이론 교육이었지만 1백50석의 국회소회의실에 2백명이 넘는 「인파」가 몰렸다.
특히 이 교육에는 김대중 국민회의 총재까지 참석, 정보화의 현장을 직접 체험했다. 이에 자극 받았는지 한달 후에는 여당인 신한국당에서도 비슷한 프로그램을 실시했다고 한다.
그는 또 동료 의원들의 정보화 마인드 제고를 겨냥, 인터넷 홈페이지를 개설해 주는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당에서는 전산실을 담당, 국민회의 홈 페이지의 지속적인 업그레이드 작업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내년 대선을 앞둔 국민회의 소속 의원으로서 이번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나타난 「전자 민주주의 현상」에도 신경을 써야하기 때문이다.
정 의원은 『「엔지니어 기질」이 몸에 배서인지 현장을 직접 확인하지 않고는 대정부 질의에 나설 수 없었다』며 『15분간의 질의를 위해 8월 한달간 통과위 산하 기관을 모조리 돌아봤다』고 했다.
그의 사무실에는 전국의 초고속망 구축 지도를 비롯, 국가 정보화 프로젝트 관련 도표들이 걸려 있고 한국통신이 서비스하는 각종 시스템이 설치되어 있다. 그는 의원회관에서 지역구인 나주 시장과 직접 연결되는 초고속 화상전화를 운용하고 있다. 이를 통해 수시로 나주 시장과 지역 현안에 대해 협의한다. 물론 목적은 의원으로서 해당 국가 프로젝트가 제대로 운용되는지 실제 체험하는 기회로 이용하는 것이다.
정 의원이 체험한 국회, 그 중에서도 정보산업 관련법안은 가장 큰 문제점이다. 그는 『통과위에서 걸러진 법률 중 의원입법은 거의 없었다. 전문적인 내용이다 보니 대부분 정부가 제안한 것이었고 이 때문에 현장의 사업자를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거의 관료 중심의 규제법 성격을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런 문제점을 심각하게 인식, 47개에 이르는 관련 법안의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며 『이를 위해 현재 전문 교수들이 법안 내용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통과위 법률 소위원회 일도 맡고 있다.
정호선 의원이 최근 역점을 두는 것은 「농어촌 컴퓨터 보내기 운동」이다. 지방 출신인 그로서는 아직도 XT급으로 컴퓨터를 공부하는 농어촌 학생들이 안타깝다. 펜티엄급으로 사무설비를 대체하는 기업들이 수십만대의 286, 386 제품을 재활용할 줄 몰라 돈을 주고 폐기처분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것을 농어촌에 보내자는 운동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운동본부를 이미 사단법인화, 정통부에 등록을 마쳤고 컴퓨터의 농어촌 전달은 전국 유통망을 보유하고 있는 농협이 담당토록 했다.
또 현안인 AS문제는 대학생을 활용한다는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대학생들이 방학철에 참가하는 「농활」 개념으로 이제는 「컴활」을 하자는 것이다. 고향에 내려가 자신이 졸업한 초등학교 등에서 컴퓨터 AS를 하자는 설명이다.
정 의원은 『그간 엔지니어들은 정치는 정치인만이 하는 것으로 치부했으나 21세기 정보화 사회에서는 자신들을 대변할 전문 의원이 필요하다 점을 인식해야 한다』고 말하고 『과학기술계에서도 정치적 영향력 확보를 위해 인물을 길러야 한다』고 말했다.
<이택기자>
정호선 의원 약력
1943.전남 나주출생
1969.인하대 공대 졸업
1975.서울대대학원 전자공학과 졸업(석사)
1980.프랑스 툴루즈공대 전자공학과 졸업(박사)
1982∼1995 경북대 전자공학과 교수
현재 15대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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