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용PC보급 계획-두마리 토끼를 다 놓치다
83년 「정보산업의 해」 선포를 전후해서 정부가 정보화시책 구현을 위해가장 심혈을 기울였던 부분은 국민에 대한 컴퓨터교육과 홍보였다. 83년 1월28일 이정오 과기처 장관의 기술진흥확대회의 동향 브리핑이나 83년 3월 대통령에 보고된 「정보산업산업 육성방안」에도 나와 있듯 교육과 홍보는 정부화 시책이나 정보산업 육성을 위해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과제였다.
컴퓨터교육은 전문인력 양성이라는 차원에서 각급 교육기관이 그 대상이었고 홍보는 정보화마인드 확산이라는 목표 아래 학생을 포함한 일반인 전체를대상으로 했다.
정보화시책을 입안한 주무부처인 과기처는 각급학교 교육과 일반인 정보화마인드 확산을 위해 두 가지 획기적인 행사를 고안해냈다. 예산지원을 통해각 교육기관에 교육용컴퓨터를 보급하는 것이 그 하나고 각종 정부시택을 알릴 수 있는 범국민적 행사를 마련하는 일이 그 두번째였다.
이 아이디어가 구체화돼 나타난 것이 10억원의 예산을 투입하기로 한 교육용컴퓨터 5천대 보급계획과 제1회 전국퍼스널컴퓨터경진대회 개최 계획이었다. 그런데 이 두 계획은 지금까지도 5공화국 시대의 전형적인 행정만능주의산물이라는 오명을 벗지 못하고 있다.
당초 의도가 변질돼 졸속 보급된 5천대나 되는 교육용컴퓨터는 초기부터거의 활용되지 못한 채 고색창연한 고철덩어리로 변하고 말았다. 하드웨어규격이 미흡했던 데다 실행할 소프트웨어는 태부족이었고 정부 후속지원도더이상 이어지지 못한 것이 그 이유였다.
전국퍼스널컴퓨터경진대회 역시 요란하게 치러진 한두해를 제외하고는 갈수록 축소돼 나중에는 스폰서가 바뀌면서 본래 명칭조차 사라지고 말았다.
행사비용이나 규모가 엄청난 장비를 모두 기업체 부담으로 돌리는 데 따른페단이 발생했고 참가 의의를 느끼지 못하는 참가자의 숫자는 해마다 줄어들었다.
교육용컴퓨터 5천대 보급계획은 사실 정보산업의 해를 계기로 입안된 것은아니었다. 이 계획이 처음 알려진 것은 82년 초 과기처의 새해 업무보고에서였다(7월 28일자 본란 「PC산업의 태동」 참조). 이정오 과기처 장관은 이보고에서 10억원의 예산을 투입, 각급 학교에 5천대의 컴퓨터를 보급하겠다는 원대한 새해 업무계획을 대통령에 보고했다.
이에 따라 82년 5월부터 보급 기종을 생산할 업체 선정과 기종 규격작업을벌였으나 여러 이해관계 때문에 이 계획은 지지부진한 상황이었다. 그러다가정보산업의 해 선포를 계기로 일정에 박차를 가해 83년 8월 해당 교육기관에컴퓨터보급이 끝나 일단 마무리됐다.
과기처의 교육용컴퓨터 보급계획은 그러나 졸속행정 탓으로 예산낭비만 초래했다는 비난을 면치 못했다. 사실 이 비난은 보급계획이 입안되던 82년부터 이미 예고돼 있었다. 과기처가 처음 이 계획을 세운 동기는 정보산업과컴퓨터 교육에 대한 정책 주도권를 동시에 확보하기 위한 것, 즉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으려는 계획에서였다.
당시 과장 직책으로 이 계획에 관여했던 과기처 C씨의 회고.
『81년 새 정부가 들어선 직후 뭔가 참신하면서 파급효과가 큰 것을 찾고있던 때였습니다. 마침 컴퓨터 국산화에 대한 열기가 한창이었는데, 하지만컴퓨터만 국산화하면 뭐합니까. 규모의 경제를 이룰 만한 수요가 생기질 않았는데.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교육용 컴퓨터 5천대 보급이었습니다. 컴퓨터국산화 업체들에 큰힘이 될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컴퓨터 교육 확산이라는두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것 같았습니다. 사전에 청와대측에 조율해보니매우 좋은 아이디어라는 것이었습니다. 예산 당국에 대한 조정은 두말할 필요가 없었지요.』
그러나 두마리 토끼는 쉽게 잡히지 않았다. 한국전자기술연구소(KIET)가대행한 이 프로젝트는 기종 생산업체 선정작업부터 쉽게 진행되지 못했다.
과기처로부터 용역을 의뢰받은 KIET가 규격작업만 하기로 하고 생산업체 선정은 상공부에 맡겨버리는 등의 우여절이 시작됐던 것이다(KIET는 상공부 출연기관이었다). 교육용컴퓨터를 생산 보급하겠다고 신청한 곳은 때마침 컴퓨터국산화 기치를 내걸었던 삼성전자, 동양나이론(효성컴퓨터), 삼보컴퓨터,고려시스템산업, 대한전선, 금성사, 한국상역(현 한국컴퓨터), 동양시스템산업, 삼성전관 등 13개사나 됐다. 이들은 하드웨어의 구성, 소프트웨어의 내용, 응용프로그램 계획, 주변기기 등 4개 분야에 걸쳐 작성한 「교육용컴퓨터 개발계획서」를 상공부에 제출하고 낙점을 기다렸다. 그러나 제출된 계획서 대부분은 프로젝트 수행계획을 소개한 내용이라기보다는 그때까지 각사가개발중이던 상업용 시제품 규격만을 나열해놓은 것에 불과했다.
상공부는 이들 계획서를 토대로 적격심사를 벌여 이 가운데 삼성전자, 동양나이론, 삼보컴퓨터, 금성사, 한국상역 등 5사를 교육용컴퓨터 생산업체로선정, KIET측에 통보했다. 생산업체를 5사로 제한한 것은 업체당 공평하게 1천대씩 생산하게 한다는 뜻에서였다.
상공부가 심사과정에서 어떤 기준을 두고 업체선정 작업을 벌였는지는 전해지지 않지만 나중에 탈락된 업체들의 불만은 컸다. 어차피 KIET가 새로운규격을 제정할 터인데 계획서에 적힌 시제품 규격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는얘기였다. 한마디로 심사결과에 승복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KIET는 5사가 교육용컴퓨터 개발 생산업체로 선정된 82년7월에서야 기종의 기본규격을 제시하고 연내에 설계도면과 운영지침서를 제출하라는 일정을 통보하게 된다.
당시 KIET가 제시한 기본규격은 매우 간단한 것이었다. 데이터처리 성능은8비트로 중앙처리장치(CPU) 속도와 기본메모리는 각각 1 및 16 이상일 것,소프트웨어로는 모니터 프로그램(롬바이오스를 그렇게 불렀다)과 베이식 언어 번역기가 기본이었는데 각각 8 롬에 내장해야 된다는 것 등이었다.
KIET는 이때까지만 83년 신학기 이전에 5천대분의 컴퓨터를 5사에서 각급학교에 보급할 방침이었다. 그러나 이 일정은 각 업체들의 이해관계가 얽혀5개월이 넘는 동안 답보상태가 계속됐다. 5사는 기존에 독자 개발해오던 것을 어떻게 하면 추가비용 부담없이 KIET 규격에 뜯어맞출까 하는 궁리만 하다가 허송세월한 셈이었다. 그나마도 83년 8월에나 끝마칠 수 있었던 것은정보산업의 해 선포를 계기로 관련부처들이 참여업체들에 약속된 일정의 준수를 독려한 결과였다.
제품개발이 끝날 즈음인 83년 초 5사 입장은 또다시 바뀌어있었다. KIET가당초 제시한 규격은 베이식 언어 정도만를 사용할 수 있는 가장 단순한 형태의 성능만을 구현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그런데 실제 KIET가 대량 생산에앞서 83년 3월 각사의 개발품에 대해 최종 테스트를 실시했는데 5사 제품 모두가 기본 규격을 훨씬 초과하는 고급 기종으로 업그레이드 돼 있었다.
5사는 저마다 이 기종을 과기처 납품 외에 추가로 대량 생산해서 독자 시판할 계획을 새워 놓고 있던 터였다. KIET 규격은 애당초 컴퓨터 기능을 흉내만 낼 수 있는 일종의 최소 규격이어서 일반 사용자들이 요구하는 그것과는 큰 차이가 있었다.
KIET가 처음부터 최소규격을 제시한 것은 빠듯한 예산 때문이었다. 결국 KIET는 5사로부터의 대당 납품가격을 24만원으로 미리 정해놓고 거기에 맞는규격작업을 벌였던 것이다. 24만원은 과기처 예산 10억원에다 나중에 특별추가된 2억원 등을 합친 12억원을 5천대로 나눈 수치였다.
24만원의 납품가격에 맞출 수 있는 컴퓨터는 당시로서도 존재하지 않았다.
여기서 5사는 KIET 규격 준수가 무의미하다고 판단, 이 규격을 크게 상회라는 기종 개발 방침을 굳혔던 것이다. 삼성전자 컴퓨사업부 과장이었던 K씨의증언.
『삼성은 과기처의 계획이 교육용컴퓨터 보급 차원 그 자체보다는 민간업계 수요창출에 더 많은 기대를 걸고 있다는 것을 읽고 있었습니다. 나중에들은 얘기지만 다른 4사들도 과기처 납품가격은 대당 24만원에 맡추되 실제개발은 50만~60만원대의 시판기종 규격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는 겁니다. 그러고 보면 5사는 앞뒤를 재고 있었는데 정부 관계자들만 몰랐다는 얘기죠.』
금성사 OA개발부문 책임자였던 또다른 K씨의 회고.
『최종 테스트 후 시판가격을 계산해 보니 본체 50만원, 모니터 6만원, 카세트 테입 드라이브(보조기억장치) 4만원 등을 합쳐 60만원 정도였습니다.
사정이 이랬으니 5사 모두 과기처 납품분만 생산할 리가 없었지요. 나름대로관납에 따른 적자 매출 보전 계획을 세웠던 겁니다.』 아무튼 이렇게 해서 5사가 생산한 기종이 「SPC-1000」(삼성전자), 「트라이젬-30」(삼보컴퓨터),「스폿라이트 1」(한국상역), 「하이콤-8」(동양나이론), 「금성패미콤」(금성사) 등이었다.
이들 5개 기종은 83년 8월까지 전국 90개 상업고등학교, 10개 직업훈련원,17개 각급 공무원교육에 골고루 배분됐다.
하지만 속칭 「차 떼고 포를 떼서」 24만원에 맞춰 납품된 컴퓨터가 제대로 쓰여질 리 만무했다. 당시 한 컴퓨터전문지 기자였던 P씨의 회고.
『누가봐도 사용이 불가능한 장난감 컴퓨터였지요. 더욱이 당시 컴퓨터 환경에서는 프린터나 플로피디스크드라이브 등 다른 보조기억장치 등을 추가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는데 그 비용이 1백20만원~1백50만원이나 됐습니다. 재정이 빈약한 상업학교나 직업훈련원에서 엄두를 냈겠느냐는 것이죠.』
그러나 과기처는 교육용컴퓨터 보급계획이 마무리된 83년 8월 이후 단 한차례도 이에 대한 보완책이나 추가지원책을 발표한 적이 없다. 물론 과기처입장에서도 이미 마무리된 것을 보고된 사업을 재검토하거나 보완할 만한 여력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83년 9월부터 과기처는 새로운 계획 시행에 나서는데 그것이 바로 10월부터 시작된 제1회전국 퍼스널컴퓨터경진대회 예선이었다.
<서현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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