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용 워드프로세서의 등장-명필
서울 정도 5백주년 기념으로 제작해서 남산에 묻힌 타입캡슐의 수장품목에한글과컴퓨터의 「한글」워드프로세서가 포함됐다해서 화제가 된적이 있다.
그 이유는 아마도 컴퓨터가 벌써 한 시대를 대표할 수 있는 상징물로 자리잡게 된 까닭이었으니라.
그런데 충청남도 천안의 독립기념관의 유물 진열대 한켠을 주의깊게 살펴본 사람이라면 「한글」 소식보다 훨씬 놀라운 광경을 목격할 수 있게 된다.
이곳에는 지난 80년대를 풍미했던돼 우리나라 상용 워드프로세서의 원조 「명필」(名筆)이 전시돼 있다.
명필은 정확히 말하면 8비트 마이크로컴퓨터와 CRT터미널 등 하드웨어와문서편집용 소프트웨어가 일체화된 워드프로세서 전용기이다. 벌써 옛날 얘기가 돼버렸지만 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삼보컴퓨터나 대우통신 등 유명 PC회사들도 방식은 달랐지만 「젬워드」나 「르모」와 같은 워드프로세서전용기를 만들어 짧짧한 수익을 올렸다.
사실 오늘날과 같은 하드웨어 독립적인 워드프로세서 소프트웨어가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금성소프트웨어(현 LG소프트웨어)가 행정전산망PC용으로 내놓은 「하나」가 개발되던 87년을 전후해서 이다. 그러니까 「하나」가 등장하기 이전까지 명필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던 워드프로세서 였던것이다.
명필은 지금은 도산한 한화그룹 계열 고려시스템산업에 의해 83년에 선보여졌다. 같은 해 8월 29일자 일간 신문의 경제란에는 김승연 한화그룹회장,당시 인천시장,성기수 한국과학기술원(KAIST)전산개발센터 소장 등이 참석한공장 가동 테입 커팅 행사 사진기사가 일제히 게재돼 있음을 볼수 있는데 이행사는 하루전날인 8월 28일 명필의 생산라인이 준공됐음을 기념하는 것이었다. 이날부터 가동에 들어간 이 라인은 인천시 작전동에 소재한 한화그룹 부평 제2공장으로서 고려시스템산업은 이곳에서 연 3천대 규모의 명필을 생산할 요량이었다. 82년까지 우리나라의 총 마이크로컴퓨터(PC) 누적 보급대수가 1천여대 정도였으니 그 규모는 짐작하고도 남을만한 것이었다.
명필의 원 개발자는 KAIST 전산개발센터 제1그룹(당시 명칭)이었다.
제1그룹은 83년 과학기술처가 특정연구과제로 추진한 「보급형 워드프로세서개발」프로젝트를 산업체 위탁과제로 수행,명필을 탄생시켰다. 공동 개발자로 기록돼 있긴 하지만 고려시스템의 역할은 명필을 상품화하고 이를 대량생산해서 시장에 내다파는 공급자였다.
명필 개발에 참여한 이들은 당시 전산개발센터 1그룹장이던 이기식(현 대우증권 부사장)을 비롯 정왕호(인터테크 이사), 박동인(시스템공학연구소 부장) 등이었다. 과학기술처는 원래 이 「보급형 워드프로세서 개발」프로젝트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었을 뿐아니라 83년 특정연구과제에도 포함시키지 않았었다. 그러던 것을 성기수 소장(현 동명정보대 총장)과 공동개발자였던 고려시스템산업의 『노력』에 의해 특정연구과제로 추가되면서 그 비용의 50%가 정부 예산에 반영됐던 것이다.
명필의 탄생 과정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우선 79년 KIST(KAIST의 전신)가수행한 「정보산업토착화를 위한 소프트웨어 이전체제 개발연구」라는 출연연구과제를 수행하던 시기로 거슬러 올라갈 필요가 있다. 박동인 등이 참여한 이 프로젝트는 8비트 Z-80 마이크로프로세서 기반의 마이크로컴퓨터에 한글이 지원되는 CRT터미널과 라인프린터를 연결해서 한글워드프로세싱을 구현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개발하는 것이었다. 이 프로젝트의 결과로 세상에 빛을보게된 것이 바로 국내 최초의 워드프로세서로 기록되고 있는 「워드80」이다.
미니컴퓨터와 워드프로세서전용기의 세계적인 공급회사였던 미국의 왕래버러토리즈의 지원을 업고 80년 10월 서울 을지로 미국문화원 강당에서 발표된워드80은 당시 사람들에게 큰 관심을 보이긴 했지만 시스템 구성방식이 까다롭고 가격이 너무 비싸 상용화에는 회의적인 반응이었다. 박동인의 회고.
『70년말 80년초의 워드프로세서 개발 목표는 줄 단위의 편집기(라인 에디터) 수준을 넘어 화면 단위 편집기(스크린 에디터)로 이동해가는 단계였죠.
또 삽입, 삭제, 치환 등이 주된 기능이었고 한글, 한자, 영문을 함께 처리할수 있는 편집기는 없었습니다. 따라서 이런 기능을 처리하기 위해 마이크로컴퓨터와 CRT터미널을 연결시키는 방법을 사용해야 했는데 그 구성방법이 복잡하고 어려워서 당시로서는 첨단 기법으로 인식되던 것이었습니다. 더욱이워드80이 발표될 당시 마이크로컴퓨터 한대가 웬만한 소형 아파트 한채 값이었으니 사람들이 고개를 저었던 것은 당연했죠』
워드80의 상품화가 한계에 이르자 81년 KAIST는 민간 지원금을 끌어들어이를 개량한 워드프로세서 전용기 「워드88」를 내놓게 된다. 민간차원에서자금을 지원한 곳은 고려시스템산업이었다.
이 워드88 개발의 경험으로 계승해서 소프트웨어의 기능을 향상시키고 전용 하드웨어를 개발해서 일체화 시킨 것이 바로 명필이다. 명필의 상품화와생산에 고려시스템산업이 참여하게 된 것은 바로 이같은 배경에서 였다.
82년 고려시스템산업에서 상품화된 워드88은 당초 예상과는 달리 기존 워드80의 단점을 크게 벗어나지 못해 시장에서 주목받는 제품은 되지 못했다.
이때문에 고려시스템은 한글, 한자, 영문을 자유자재로 처리할수 있는 새로운 워드프로세서,즉 명필의 개발 계획을 세웠는데 이를 주도한 이가 워드88등의 개발에 직간접으로 참여했던 정왕호였다. 정왕호는 이에앞서 82년 7월고려시스템산업에 스카웃돼 자리를 옮긴 상황이었다.
고려시스템산업에서 그는 우선 자신의 계획을 이동훈 사장(현 제일화재해상보험 회장)에게 알려 회사차원에서 동참하도록 만들었고 나중에는 KAIST전산개발센터 성기수 소장까지를 끌어 들였다.
결국 정왕호는 82년 말 우여곡절 끝에 자신의 명필 개발 계획을 「보급형워드프로세서 개발」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과기처의 83년 특정연구과제로추가시키는데 성공하기에 이른다. 이 과정에서 청와대 등의 요로에 발이 넓었던 성기수 소장의 역할이 컷음은 물론이다. 특정연구과제에 포함됐다는 것은 작게는 전체 개발비의 50%를 정부출연금에 의해 충당할수 있다는 것이고크게는 제품 판로에 대한 보증수표를 얻어냈다는 것을 뜻했다.
이렇게 해서 명필 개발 계획 즉,「보급형 워드프로세서 개발 ]프로젝트는이기식이 이끌던 KAIST 전산개발센터 1그룹에 의해 산업체 위탁과제로 채택됐다.
이과제를 수행한 1그룹은 이미 워드80과 워드88의 개발 경험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새로운 워드프로세서 전용기의 개발 목표인 『보급형』이라는 조건을 어떻게 충족시키는 일이었다. 『보급형』이란 이를테면 값이 저렴한 제품을 의미하는 것이었는데 83년 당시 Z-80을 탑재한 국산 마이크로컴퓨터 가격은 포니2 자동차 값과 맞먹는 7백만원을 홋가하고 있었다. 새로운워드프로세서도 좋지만 탑재할 하드웨어 값만 7백만원이 되는 제품은 아무리해도 보급형이 될 수 없음은 물론이었다. 이기식의 회고.
『궁리 끝에 일본 후지쓰에서 개발한 일본의 보급형 워드로세서 「오아시스」를 모델로 삼기로 했죠. 가격을 2백만원대로 낮출수 있다는 계산이 나왔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모델로 삼은 오아시스 기종의 국내 반입이 여의치 못해 개발팀이 그 실물을 본것은 명필의 개발이 거의 끝나갈 무렵이었씁니다.』
아뭏튼 명필은 1그룹이 개발에 착수한지 10개월만인 83년 8월에 탄생됐다.
생산단가를 최소화 하기 위해 수출용 CRT가 사용됐고 본체는 생산 중단된 금전등록기의 금형(고려시스템은 당시 이분야도 참여하고 있었다)을 변형시켜둘러씌운,우스꽝스러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는 국내에서 처음으로화면(메뉴) 중심의 기능 선택과 편집이 가능한 워드프로세서의 등장을 의미하는 것 이었다. 83년 10월에 발간한 한 월간지에 게재됐던 명필의 첫 광고를 보면 권장소비자 가격은 프린터를 제외하고 2백61만원이었다.
명필의 첫 고객은 「보급형 워드프로세서 개발」프로젝트가 특정연구과제에 포함되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던 청와대 비서실이었던 것으로 전해직고 있다.
명필은 이후 1그룹에 의해 84년 한자 처리기능을 추가한 명필II로 업그레이드 됐고 86 년 까지 명필IV 모델까지 개발됐다. 1그룹은 또 87년 명필의하드웨어를 인텔 80286기반의 IBM호환 PC용으로 이식했고 이를 계기로 스프레드시트와 그래픽기능을 함께 구현할수 있는 「수퍼 명필」의 개발까지 맡았으나 빛을 보지는 못했다.
한편 명필이 개발돼 나올 무렵인 83년 국내에는 영문 워드프로세서의 대명사인 미국의 「워드스타」가 소수 전문가들 사이에 보급돼 있었고 국산으로는 큐닉스가 개발한 「으뜸글」이 있었다. 1인용과 2인용등 2개 기종으로 돼있던 으뜸글은 워드스타처럼 문장 중간에 명령어를 입력하는 방식의 제품이었는데 메뉴선택방식의 명필과 달리 상당기간동안 교육받은 사람이 아니면쉽게 사용할수 없는 전문가용이었다. 사용자층이 서로 분명하게 달랐음에도불구하고 명필과 으뜸글은 당시 국내 시장상황이 워낙 좁아 곳곳의 입찰경쟁에서 부딪치곤 했는데 이런 기억을 두고 정왕호는 『명필의 발전에 가장 큰역할을 한 것은 으뜸글이었다』고 회고 하고 있다.
<서현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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