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유통의 요람 전자상가 지상여행;세운상가

우리나라 전자산업의 살아있는 역사라고 표현해도 전혀 손색이 없는 곳이바로 세운상가이다.

세운상가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해외에까지도 잘 알려져 있는 종합전자상가로 가전·컴퓨터·오디오·영상기자재에서부터 게임기·전자부품에 이르기까지 취급하지 않는 품목이 없다.

세운상가의 역사는 60년대부터 시작된다. 60년대만 하더라도 종로3가는 「종삼」이라는 이름의 홍등가로 유명했던 곳이다. 서울시는 도심개발의 첫사업으로 종로-청계천, 청계천-을지로, 을지로-화원시장, 화원시장-퇴계로등 4개 블록을 정비하여 상가아파트를 건설하기로 계획했다. 그 가운데 종로-청계천에 건립된 13층 상가아파트가 지금의 세운상가 가동으로 우리나라최초의 대형 고층건물이다. 당시의 상가 명칭은 세운상가가 아닌 현대상가아파트였다.

66년 9월 착공해 67년 10월에 완공된 세운상가는 30년이 지난 지금에도 종로 한복판에 서서 그 위용을 과시하고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1∼4층은 상가, 5∼13층은 아파트로 사용되고 있다. 아파트의 경우 18∼25평 규모로 지금의 국민주택 규모에 불과하지만 당시에는 사회 저명인사들이 앞다투어 입주할 만큼 최고급이었다. 특히 엘리베이터란 용어 조차도 생소했던 30년전에이미 엘리베이터를 설치해 세인들에게는 부를 상징하는 대명사로 통하기도했다.

오늘날의 세운상가는 가전 또는 컴퓨터 전문상가로 잘 알려져 있다. 가전·컴퓨터·영상기기·방송장비·오디오·전자부품 등 전기·전자·통신에 관련된 갖가지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하지만 67년 개장 초기엔 지금의 백화점에 지나지 않았다.

「세계적 규모의 세운상가」

「즐거운 쇼핑은 세운상가에서! 크리스마스, 연말연시의 선물도 세운상가에서!」

「우주소년 아톰」 「쇼쇼쇼」 「보난자」 「여로」 등의 TV 프로그램이인기를 끌던 70년 11월 세운상가의 광고를 돌이켜보면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당시에 1층은 금·은·시계·TV·전기기구 매장, 2층은 양품부, 3층은 주단·포목·양품·잡화·4층은 볼링장이었다. 그러던 것이 80년초부터 3층에가전매장이 들어서고 84년 4층 볼링장이 있던 자리에 컴퓨터 매장이 하나둘들어서면서 첨단 상가로서의 이미지를 굳히기 시작했다.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2층 양품부는 세운상가의 전성기였던 90년 5월을 기해 가전매장으로 전환됐다.

세운상가는 종로방면의 현대상가와 청계천방면의 아세아상가로 구분된다.

현대상가의 소유주는 금강개발로 각 매장을 개인사업자들에게 임대하고 있는반면 아세아상가의 소유권은 각 매장주에게 분할돼 있다.

현대상가에는 총 3백19개의 매장이 입점해 있는데 이 가운데 전체의 54%인1백73개 매장이 가전을, 25%에 해당하는 80개 매장이 컴퓨터를 취급하고 있다.

아세아상가는 총 4백62개 매장이 입점한 가운데 가전매장이 2백16개로 47%, 전자부품매장이 61개로 13%, 오디오매장이 56개로 12%를 차지하고 있다.

「전자산업의 메카」 「가전산업의 효시」 「엔니지어 양성의 모태」 등세운상가에 따라 붙는 수식어는 매우 다양하다. 그만큼 국내 산업발전에 이바지한 공이 크다는 의미이다. 90년대 초만 하더라도 세운상가를 일컬어 「한국의 실리콘밸리」라 칭하기도 했다. 특히 컴퓨터 분야의 전문가들이 이곳세운상가에 모여 있어 관련업계에서는 「종로의 KAIST」라고까지 불렀다.

세운상가에서는 만들지 못하는 게 없다. 전자제품은 물론 반도체까지로 원본과 똑같이 복제할 수 있을 만큼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한때는 불법복제의 온상이라는 불명예를 얻기도 했다. 하지만 「모방은 창조를 낳는다」는 말이 있듯이 세운상가의 기술력은 최고 품질의 제품을 개발하는데 상당한 기여를 했다. 기술자들은 모든 전자제품의원리와 구조를 꿰고 있어 기존 제품에 비해 품질이 월등히 나은 제품을 손쉽게 양산할 수 있었다. 90년대 세운상가의 컴퓨터 제조 기술은 대기업을 앞설만큼 뛰어나 국내 공급량의 대부분을 소화해내기도 했다. 그 당시 세운상가를 기반으로 컴퓨터 제조업에 나선 중소기업이 지금은 어엿한 대기업으로 성장했다는 것만 보더라도 세운상가의 영향력은 대단하다.

90년대 이후로 용산에는 나진·선인·원효·전자랜드 등 전문전자상가들이대거 들어섰다. 현재 용산상가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엔지니어들의 대부분은 과거 세운상가 출신들이다. 이렇듯 세운상가는 최고 수준의 엔지니어를 양산해 내는 산파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세운상가의 자랑거리는 높은 기술력 이외에도 저렴한 가격이 있다. 얼마전 모경제지에서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국내 가전상가 가운데 제품가격이 가장 싸 알뜰구매에 가장 적합한 상가로 평가받은 바 있다.

세운상가에서는 모든 전자제품을 공장도가 이하로 구매할 수 있다. 제품을선택하는 안목이 남다르다면 시중가의 절반에도 못미치는 가격으로 전자 제품을 구입할 수도 있다.

세운상가는 일년 내내 각종 제품을 값싸게 판매하지만 어느 특정 기간에는가격파괴를 겸한 대단위 바겐세일 행사를 갖기도 한다. 이름하여 「세운상가깜짝세일」.

이때는 최고 70%까지 할인된 가격으로 고객에게 봉사하기도 한다. 올해에도 10월에 「깜짝세일」 행사를 기획하고 있는데 작년 바겐세일 때 재미를본 고객들은 올해도 그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는 후문이다. 작년에는 10월 5일부터 7일가지 3일간 이 행사를 실시했는데 영업시간을 오전 11시부터오후 3시로 정했음에도 불구하고 소문을 듣고 구매객이 일시에 몰리는 바람에 제품이 동나 한두 시간 일찍 문을 닫아야만 했던 가슴 아픈(?) 추억이 있다.

세운상가는 항상 재개발의 루머에 시달려 왔다. 잊을만하면 툭툭 터져나오는 악성 루머에 상가 관계자들은 노이로제까지 걸릴 정도란다. 언제 개발될지도 모르는 먼 미래의 도시계획을 들어 언론에서 들썩일 때마다 매출이 크게 줄어 상인들의 주름은 깊어졌다.

상가 상우회장들은 다가올 21세기에도 세운상가는 첨단 전자상가로서의 이미지를 확고히 해 세계화에 앞장설테니 묵묵히 지켜봐 달라고 힘주어 말한다.

〈최정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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