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반도체 무한경쟁 대비하자

지난 5년 동안 지속돼온 D램 경기 사이클까지 깨뜨리면서 끝없는 호황행진을 거듭해온 세계 D램 반도체 시장환경이 급변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그동안의 공급자 위주의 시장상황이 이제는 서서히 수급 균형을 이루고,나아가 공급이 수요를 앞지르는 구매자 위주의 시장으로 바뀔 것이라는 예측들이 나오고 있다. 반도체 경기 선행지표라 할 수 있는 미국 반도체 수주액대출하액 비율(BB율)도 근 5년 만에 처음으로 지난 1월에 1이하를 기록한것으로 조사됐다. 또 그동안 국내업체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투자에 신중했던일본업체들이 공격적인 자세로 돌아서고 있고, 후발 대만업체들도 준비기간을 거쳐 시장참여 채비를 서두르고 있어 80년대의 무한경쟁 양상이 재연될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우선 미국 반도체 BB율은 잠정치이기는 하지만, 근 5년 만에 처음으로지난 1월에 작년 12월보다 무려 0.19포인트나 떨어진 0.93으로 잠정 집계됐다고 한다. BB율이 1이하라는 것은 해당 월까지의 3개월 평균수주액이 3개월평균출하액보다 작다는 뜻으로, 1월이 계절적 요인이 강하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91년 이래 처음으로 1이하로 떨어진데다 낙차까지 크다는 점에서일단은 경기가 위축되거나 식을 가능성을 경계해야 할 것이다.

최근에는 미국의 한 D램 수요업체가 일본 반도체 업체들에게 공식적으로D램의 공급가격 인하를 요구했다는 외신보도가 있었으며, 이에 앞서 지난해D램 공급초과 전망을 내놓아 세계 증권계를 벌컥 뒤집었던 메릴린치사가 최근 또다시 공급과잉을 전망했고, 노무라증권도 비슷한 맥락의 시장전망을 내놓았다.

물론 반도체 시장상황이 공급초과 국면으로 돌아설 것이라는 전망은 수년전부터 여러 반도체시장 분석기관들에 의해 여러 차례 제기돼 왔으나, 91년이래 지금까지는 공급초과나 이에 따른 가격폭락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다.

이는 무엇보다도 빠른 속도로 늘어가는 수요가 뒷받침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만큼은 상황이 다른 것 같다는 의견들이 많다. 일단 D램 업체들의 호황이 오래 지속돼온데다 한국의 3사 등 일부가 증설에 매달렸던 그동안과는 달리, 이번에는 한국은 물론 일본과 대만 등 D램에 주력하는 국가들이 모두 설비투자 경쟁에 나서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최근 1~2년 사이한국.일본.대만의 D램 투자열기로 인해 세계 반도체 투자증가율은 수요증가율의 2배를 넘었으며, 작년에는 무려 26%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 주요 반도체 업체들의 증설은 전반적인 공급량을 늘릴 것이고, 후발대만업체들의 시장발붙이기 노력은 가격하락 속도를 가속화해 공급업체들의수익성을 떨어뜨릴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럴 경우 90년대 들어 계속돼온"모두가 행복했던" 상황과는 달리 앞으로는 치열한 가격경쟁을 이기지 못해도태되는 기업이 속출하는 사태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으며, 특히 투자가늦었거나 미진한 업체들이 받을 타격은 막대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몰론 이번 외국 증권사들과 시장전망기관들의 D램 공급과잉 전망은 기우로그칠 수도 있다. 또 BB율의 하락이 반드시 경기침체로 이어지는 것이 아닌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현재의 시장상황 변화와 경쟁 본격화 등으로 지금까지5년간 이어져온 D램 시장상황과 앞으로의 시장국면이 같지는 않으리라는 것이다. 따라서 국내업체들도 이제는 만들면 팔리고 많이 파는 대로 수익이 남는 것이 아닌 품질과 수익에 초점을 맞추는 사고의 전환과 함께 기술개발과업체간 협력을 통한 끊임없는 시장주도 노력이 한층 필요하다.

경쟁적 공급에 따른 채산성 악화에도 불구하고 시장점유율을 유지.확대하기위해서는 차세대 제품에 대한 공격적인 설비투자를 계속해야 하고, 인텔이컴퓨터시장을 이끌어가듯 우리나라와 같은 D램 선발업체들이 제품의 세대교체를 비롯한 시장환경을 유리한 방향으로 유도해 나갈 수 있도록 보드업체나컴퓨터 등 세트업체들과의 전략적 협력관계를 한층 강화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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