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집게 검색 "노웨어" 각광

한국전자 기획실 김차장은 자타가 공인하는 수출입 전문가다. 시장현황에 서각국의 통관절차, 관세제도, 주요 거점 등 수출관련업무에 관련된 정보라 면뭐든 막힘이 없다.

김차장이 무역통으로 불리게 된 비결은 사실 간단하다. 무역학을 전공한 데다 새로운 사항은 수시로 전문서적을 통해 보충하는 등 남다른 부지런함이비결. 그러나 입사 5년만에 무역전문가로 표창까지 받는 등 "잘 나가는" 김차장 에게 얼마전부터 말 못할 고민거리가 생겼다.

수출물량도 크게 늘어난데다 올해부터 국제무역기구(WTO)가 정식 가동하면 서각국의 무역체제가 한꺼번에 바뀌고 있는 것. 수출상대국도 10여개국가나돼1년동안 무려 3배나 증가했다.

이처럼 상황이 급변했지만 김차장이 입수한 정보는 6개월전에 발행한 경제 동향 및 통계서적과 관계기관이 보내온 무역정보가 전부다. 현지 협력업체가 수시로 분석해 보내오는 정보가 있기는 하지만 내용이 빈약한데다 정확도도 매우 떨어진다.

이처럼 형편없이 낡은 정보를 갖고 일하다 보니 최근 몇 달 동안 뜻하지않은 실수를 수 차례나 범하기도 했다. 한국전자의 무역통이란 자존심도 여지없이 무너져버렸다.

반면 얼마전 미국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정대리는 까다롭기로 이름난 스웨 덴수출건을 성사시켜 새로운 무역통으로 사내의 관심을 끌고 있다.

무역정보와 서적으로 가득차 있는 김차장과는 달리 정대리 책장에는 컴퓨터와 사전, 참고서적 두어 권이 놓여 있을 뿐 별다른 서류도 없다.

그러나 정대리는 틈만나면 PC통신망을 이용, 외국의 최신정보와 첨단제품 에대한 상세한 자료를 입수한다. 스웨덴 수출건도 바로 이같은 정보력이 한몫을 톡톡히 해냈다.

불과 몇년전만 해도 성실하게 일하면 뭐든지 앞설 수 있었고 그 분야의 전문가로 인정받았던 게 사실. 어떤 일을 어떤 방식으로 처리하면 된다는, 이른바 노하우(know how)를 터득한 사람이 대접받는 시절의 얘기다.

그러나 컴퓨터가 대중화되면서 사정은 달라졌다. 정보력을 확보하지 못하면아무리 성실해도 무능력한 사람으로 밀려나기 십상이다. 정보력이 개인이 나조직의 능력을 평가하는 새로운 잣대로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깔끔한 업무처리능력과 원만한 대인관계만 갖추면 "만사 OK"였던 시절은호랑이 담배피던 옛이야기의 한 장면이 됐다.

변화무쌍하게 바뀌는 경제전쟁에서 살아남으려면 무엇보다 신속하고 정확 한정보취합능력이 필수적이다. 정부기관이나 학계 연구소 군사기관 정보기관 등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그러나 문제는 정보가 수용할 수 없을 만큼 쏟아져 넘친다는 데 있다. 우편함과 대문앞에는 아침마다 수십장의 광고전단이 쌓여 있고 매일 받아보는일간신문만 해도 10여종이 넘는다. 다양한 정보를 수록한 전문정보지와 특정 분야의 전문정보를 담은 전문서적이 서점마다 가득차 있다.

최근엔 소프트웨어나 데이터베이스 형태로 엄청난 양의 정보를 제공하는 곳도 크게 늘어났다.

이를테면 국민학교 교과서나 수십권에 달하는 백과사전을 한 장의 CD롬에 전부 집어넣은 제품이 등장하는가 하면 컴퓨터통신을 이용해 상상하기도 힘 든엄청난 양의 정보를 판매하는 기업도 나타났다. 한마디로 손만 뻗으면 원하는 정보를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세상이 됐다.

정보홍수시대에 새롭게 요구되는 것이 바로 필요한 정보소재를 정확히 파악 언제든지 활용할 수 있는 "노훼어(know where)" 능력이다.

예를들어 PC를 3~4년 사용하다보면 멀티미디어 CD롬 타이틀을 수십장 갖게된다. 그러나 이쯤되면 어떤 타이틀에 무슨 내용이 들어 있는지 정확하게 파악하기가 힘들다. 더욱이 한 장의 CD롬 타이틀에는 최소한 1백MB에서 6백MB 까지의 엄청난 정보가 수록돼 있기 때문에 CD롬안에 포함된 정보까지 기억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무리다.

그래도 개인이 소장한 CD롬 타이틀은 좀 나은 편이다. PC통신에 접속해 보 면노훼어의 필요성은 더욱 절실해진다.

우선 국내 간판격 PC통신서비스인 천리안에 들어가 보자.

정보를 제공하는 업체수가 무려 5백70개나 된다. 호스트 컴퓨터에 구축된 데이터베이스가 총 1천7백개이고, 동호회와 기업포럼도 각각 2백60개와 60개 나된다. 주요 화면수도 1천6백개, 전체 화면은 6천개가 넘는다. 데이콤 호스 트에 확보한 데이터 용량만 해도 3백GB를 넘는다. 물론 자체 호스트를 운영 하면서 독자적으로 서비스하는 정보제공업체까지 합치면 전체 정보량은 1천G B에 육박한다. 이정도면 일반인이 하루종일 앉아 한달동안 천리안을 뒤지고 다녀도 전체 데이터의 1%도 보기 힘든 엄청난 정보량이다.

최근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인터네트(Internet)에 접속해보면 사정은 또 달라진다. 전세계에 거미줄처럼 연결된 수만대의 호스트컴퓨터를 자유롭게 오가면서 이들 컴퓨터에 수록된 가공할만한 분량의 정보를 만나게 되면숨이 막히는 게 당연하다.

이처럼 엄청난 정보의 바다에서 필요한 정보를 구한다는 것은 전문지식이 없는 사람에겐 끔찍한 일이다. 그렇다고 도도히 흐르는 정보화 물결을 거스른다면 도태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정보 사냥꾼으로 불리는 전문검색요원이 새로운 직업으로 자리를 굳히고있고 전문검색업체가 신종 유망업종으로 부상한 것도 바로 이같은 이유에서 다. 최근 발간된 인터네트 검색서적이 공전의 히트를 하면서 불티나게 팔려나 간사실이나 컴퓨터학원과 각종 문화센터에 인터네트 강좌가 초만원 사례를 연출하는 것도 "노훼어" 기술을 습득하려는 열기를 잘 말해준다.

개인은 물론 기업체의 정보력이 경쟁력을 좌우한다는 것은 이제 상식에 속한다. 한국전자의 김차장이 노하우를 갖춘 관리자라면, 정대리는 노훼어로 중무장한 신세대 직장인에 속한다. 노하우만을 고집한 김차장은 결국 후배에 게무역통이란 명예스런 호칭을 넘겨줄 수 밖에 없었다. 기업이나 개인이 필요한 정보만을 골라 취합할 수 있는 "정보력"을 상실했다면 결과는 김차장의 경우와 별 차이가 없을 것이다.

특정분야의 전문지식이 없더라도 의사나 변호사같은 전문가들을 친구로 잘 사귀어두면 몸이 아프거나 법적인 문제에 자문할 수 있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어떤 정보가 필요하고 누구를 만나면 해결할 수 있다는 방안을 정확히 알고 있다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기업이나 사회기관이 노하우보다 노훼어능력이 탁월한 사람을 대접하는 것도이때문이다. 정보력을 새로운 잣대로 가늠하는 "노훼어시대"가 활짝 열리고있는 것이다. 남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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