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 관람석] 중경삼림-사랑..이별 그리고 재회

왕가위의 영화에는 특별한 아름다움이 있다. "펄프픽션"과 비슷한 구조를 가지고 있는 "중경삼림" 또한 그렇다. 아니 "중경삼림"은 "펄프픽션"보다 훨 씬감성적이며 철학적이다. "중경삼림"의 빠르고 수채화 같은 화면은 당신을이상스런 우울함으로 몰아넣을 것이다.

"중경삼림"은 두 남자의 사랑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경찰관 223(금성무 분)의 사랑과 경찰관 633(양조위 분)의 사랑이 그것이다. 이 두 남자에겐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다. 경찰관이라는 점, 실연당했다는 점, 고독하다는 점, 그리고 눈에 슬픔이 묻어 있다는 점이 같다. 다른 점도 있다.

경찰이라도 223은 사복차림이며, 633은 정복차림이다. 223은 밤에 근무하며 633은 낮에 근무한다. 두 남자 모두 실연당했지만 그 고통을 감내해가는방법이 다르다. 이 영화에서 가장 눈여겨 볼 점이 있다면 바로 이 차이일 것이다. 223은 아미에게 실연당했다. 그는 아미와 다시 사랑하고 싶어하지만 재회 를위한 어떠한 노력도 애써 하지 않는다. 다만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아미 와의 추억을 기억하려 하지도 않는다. 따라서 관객인 우리는 아미가 어떤 여자인지 화면을 통해 보지 못한다. 아미는 이름뿐인 허깨비일 뿐 그 실체는 사라져버린 것이다.

633은 스튜디어스에게 실연당했다. 그는 스튜어디스와 다시 사랑하고 싶어하지만 그녀는 그가 있는 공간에 없다. 이 인물 또한 자신을 차버린 여인을 무작정 기다린다. 그리고 그 기다리는 무료한 시간을 그녀에 대한 기억으로 달랜다. 따라서 관객인 우리는 그녀가 어떤 인물이었는지를 보게 된다. 그녀를불러줄 어떠한 이름도 우리는 알고 있지 않지만 그녀가 존재했다는 사실만큼은 틀림이 없다.

223은 아미가 자신을 왜 차버렸는지 알지 못한다. 그가 한 달 동안의 고통 스런 시간을 통해 깨달은 사실은 그녀가 좋아하는 통조림이 그러하듯이 자신에게도 유효기간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 유효기간이라는 것을 부정하려고 날짜가 지나버린 통조림을 마구 먹어댔지만 결국 배탈이 난다. 유효기간은 과 연유효한 경고였던 것이다.

이 영화는 유효기간에 반발하는 223의 모습을 자주 보여준다. 따라서 223 을통해 우리가 읽게 되는 것은 97년 홍콩 반환을 눈앞에 두고 살아야 하는그들 홍콩인들의 불안이다. 아울러 자취는 남아 있고 존재는 사라져버린 여인을 반추하는 633에게서 홍콩에 남겨진 자들의 무기력을 읽게 된다. 어떻게살 것인가? 선글라스와 레인코트를 입은 임청하가 아니라 "California Dreaming"을 크게틀어놓고 듣길 좋아하는 왕정문이 그 해답을 쥐고 있다. 두 여인은 모두 두남자가 실연의 끝에서 새로이 만난 인물들이며, 두 여인 모두 영화의 끝에서두 남자에게 메시지를 남긴다는 점이 동일하지만, 왕정문의 것이 훨씬 희망적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마약 밀매상이며 이미 많은 사람을 살해한 임청하와 경찰관 223의 사랑이 어떻게 순조로울 수 있겠는가? 그러나 왕정문은 다르다. 그녀는 633의 사랑을 얻기 위해 일찍이 스튜어디스의 자취를 자신의 사랑으로 닦아낸 바 있다.

그러한 눈물겨운 노력이 있었기에 633은 옛사랑을잊고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남겨진 사람들은 과거의 사랑을 기억하면서가 아니라 지금의 사랑을 토대로 해서 다시 서야 한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왕가위가 던지는 희망 적인 메시지이다. 채명식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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