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글 긴생각] 내셔널리즘의 "빗장"

김 현 숙 며칠 전 어떤 일간지에서 서울대 국문과 교수가 대통령의 부정확한 발음에 대해 꼬집은 한토막 기사를 재미있게 읽었다. 국가의 최고 통치권자가 자기네 국어 발음도 제대로 하지 못해 `관광 자원 확대`를 `강강 자언 학대`로,` 경제 규제 완화`를 `겡제 기제 안하로` 말하는 등 발음에 신경쓰지 않는 대통령의 표준어 인식을 문제삼은 글이었다.

사실 그 글을 읽고 몇 년 전 출근길 버스 안에서의 기억이 새삼 떠오른다.

김영삼대통령의 취임 후 첫 신년담화로 기억되는 데, 대통령이 경제 라는말을 정확히 발음하기 위해 특별히 연습했다는 얘기를 기사로 접한 터라 담화의 내용보다도 대통령이 얼마나 정확한 발음을 하는가 하는 데 온통 신경 이(?) 몰려 있었다. 과연 대통령은 정확히 `경제`하고 힘주어 말했다.

그런데 바로 뒤이어 나오는 "국가겡쟁력"하는 말에 완전히 웃음이 나오고말았다. 연습해도 안되는 것이 아마도 대통령의 구강 구조 자체에 문제가 있나 보다라고 생각했었다.

우리말을 연구하는 국문학자 입장에서는 나라의 최고 수장인 대통령이 우리말 하나 제대로 정확히 표현하지 못하는 것이 매우 못마땅할 수 있다. 사실대통령의 부정확한 발음을 들을 때마다 나도 쓴웃음이 나오곤 하니 충분히공감하고도 남는 얘기다. 외국에서도 대통령이 틀린 발음이나 단어 스펠링을 잘못 써 언론의 입방아에 오르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문제의 핵심은 맞춤법 도 모르는 대통령의 무식함(?)을 의심하는 선에서 끝나고 만다.

그러나 우리는 다르다. 대통령 뿐만 아니라 사회 각 분야의 지도급 위치에 있는 사람들일수록 그들의 행동거지는 우리식 사고방식으로 엄격히 평가된 다. 난데없이 `대통령의 말`을 소재로 꺼내 길게 늘어놓았는데, 이유는 바로 그 우리식 사고방식의 밑바탕에 깊이 뿌리 내리고 있는 `내셔널리즘`을 조금이나마 헤아려 보고자 해서이다.

내셔널리즘, 이것은 다른 말로 `민족주의`나 `국수주의`로 이야기할 수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내셔널리즘 자체가 나쁜 것은 절대 아니다. 어느 나라 어느 민족이든지 간에 내셔널리즘은 존재한다. 마찬가지로 우리 민족이 하나의 공동체로서 끈끈한 연대감을 갖고 살아나가기 위해서는 내셔널리즘은 더욱 장려되어야만 한다. 그러나 이것이 정도를 넘어서면 어떻게 될까. 물론대통령의 `말` 문제에 대한 질타는 표준말은 그 자체로 장려해야 한다는 기본 전제와 함께 적당한 내셔널리즘적 시각의 반영이라고 볼 수 있다.

문제는, 말했듯이 정도를 넘어서는 내셔널리즘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어느업계 어느 조직(또는 사람)에 대해서든 한바탕 내셔널리즘이란 잣대가 휩쓸 고지나가면 당사자는 무조건 낮은 포복(?) 자세가 되어야 한다. 일례로 국내 업체가 외국 회사와 제휴라도 하게 되면 일단은 내셔널리즘이란 잣대로 외국 자본의 국내 유입과 종속을 우려하고 본다.

국내 신문이나 잡지 등 언론에서는 한국 기업의 결정을 일단 부정적인 측면에서 조명하려고 노력하는 것 같다. 가까운 예로 최근 한글과 컴퓨터사와한국IBM의 전략적 제휴를 보자. 신문, 잡지 언론은 대체로 다국적 기업의 자본을 한글과컴퓨터사가 유치한 것을 놓고 신토불이를 지키지 못한데 대해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하필이면왜 국내기업(대기업?)을 제쳐두고 외국기업 이냐, 다급해서 다국적 기업의 자본에 손을 내밀었다는 등 추측에 가까운 시각이 그런 예이다.

물론 이런 내셔널리즘의 약효는 그 반대 편에서도 줄곧 공급 과잉되어 왔다. 국산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의 신토불이가 전부인 양, 기업과 언론에서 는국내 사용자들의 애국심을 고취시켜 오고 있다. 그것의 약효가 언제까지갈까. 경제장벽이 없어지고 인터네트가 세계를 지구촌화하며, 너도 나도 영어를 익히고 연간 수백만명이 순수 해외관광을 떠나는 마당에 우리것 지키기 가역으로 우리 것을 고립시키게 되는 것은 아닌지 오히려 걱정스럽다.

최근 비즈니스차 한국을 방문한 모 외국 기업인을 만났는데, 그는 "한국이 란나라는 너무 이상하다. 빗장이 굳게 걸려 있어 어떻게 열어야 할지 모르겠다 고 말했다. 물론 그 말이 나쁘게 들리지는 않았다. 그러나 국제시장을 발판으로 컸고 앞으로도 커나가려면 시각을 넓혀 국제적으로도 기여해야겠다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통큰 자세를 생각해 본다.

이미 표준화되어 세계를 점령한 외국 제품을 따라잡으려고 도전하는 것은무모할지라도 좋다. 그러나 그 보다 더 바람직한 것은 그것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이용한 2차, 3차 애플리케이션들을 내놓는 것이라고 본다. 물론 그렇게하기 위한 전제는 내셔널리즘으로 꽁꽁 닫힌 마음의 빗장부터 푸는 것이다.

전문가들조차 흔히 `국가 경쟁력`이란 단어를 많이 사용한다. 그런데 요즘과같은 글로벌 세상에 어떻게 국가 경쟁력을 말하고 따질 수 있을까. 내셔널리즘의 과잉이 `경쟁력`을 잘못 키워 `겡쟁력`이 되는 우를 범하지는 말았으면하는 심정이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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