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부품산업의 발자취 (156);소형모터(8)

국내 DC정밀모터산업이 오늘날 이만큼 경쟁력을 확보하게 된데에는 80년대말 부터 시작된 금성과 삼성 두 대기업간의 개발경쟁이 큰 역할을 했다.

두 회사 모두 모터의 자가수요가 가능한 계열사를 갖고 있었다는 점과 보이지 않는 자존심싸움이 각종 세트의 핵심부품인 정밀모터개발경쟁에 불을 댕겼다. 금성과 삼성이 정밀모터분야에서 처음 맞선 것은 VCR용 모터. 당시 VCR는 가전시장에서 막대한 신규수요를 창출해 줄 새로운 시장으로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있던 시절이었다.

VCR모터개발경쟁에서는 금성이 한발 앞서갔다. 금성은 86년말 금성정밀을 통해 VCR용 캡스턴 모터를 자체 개발했다. 다음해에는 드럼 모터도 개발, 금성 사에 공급하는 개가를 올렸다.

금성정밀은 이 모터의 개발을 위해 당시 VCR용 모터시장을 장악하고 있던 일본 서보.산쿄등에 기술제휴를 요청했으나 번번이 거절당하고 만다.

이유는 간단했다. 당시로선 선진기술인 VCR모터생산관련기술을 국외로 유출 시킬 수 없다는 일본정부의 방침과 일본 특유의 기업마인드때문이었다.

이로 인해 금성측이 개발이후 양산에 이르기까지 겪은 시행착오는 이루 말할수 없을 정도다. 일산모터를 수십번 뜯어보고 그런대로 개발은 해냈으나 세세한 부분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사고로 곤경에 처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한번은 모터에 VCR테이프를 모두 못쓰게 만들 정도로 기름(오일)을 너무 많이 뿌려 불량이 나자 금성사에 납품한 몇 트럭분의 모터를 회수하느라고 혼난 적도 있다"고 당시 캡스턴 모터생산에 참여했던 금성사의 한 관계자는 기억하고 있다.

국내에서 VCR용모터가 개발됐다는 소식이 들리자 일본업체들은 여지없이 공 급가격인하공세를 취하기 시작했다. 개당 1천2백엔에 공급하던 캡스턴 모터 를 하루 아침에 8백엔이하대로 공급했다. 금성정밀이 양산할 엄두도 내지못하게 하겠다는 의도에서였다.

그러나 금성도 호락호락하지만은 않았다. 당시로서는 가장 유망한 가전시장 으로 꼽히는 VCR시장을 지키기 위해서는 핵심부품인 캡스턴.드럼모터의 국산 화가 필수적이었기 때문이다.

상황이 당초 의도대로 되지않자 일본측은 그동안 족쇄를 채워온 VCR생산기술 을 삼성측에 제공한다.

삼성전기 정밀사업부에서는 VCR데크.드럼및 헤드가공등 VCR관련제품을 생산 하면서도 핵심부품인 모터는 생산하지 못하는 게 당시의 실정이었다. 금성의 VCR용 모터생산으로 일본의 기술제휴보호막이 느슨해진 틈을 타 삼성은 일산 쿄에 손을 내민다.

일산쿄와 기술제휴관계를 맺고 VCR용모터생산에 들어간 삼성전기는 별다른 대과없이 순탄한 행진을 계속한다. 특히 90년에 구동IC의 국산화 성공으로 금성보다 오히려 양산경쟁력면에서 앞서게 된다.

양사가 두번째로 부닥친 곳은 FDD용 스핀들모터시장에서였다.

금성은그룹차원에서 벌인 F88프로젝트에 의해 88년 금성정밀의 모터사업이 금성부품으로 일원화되면서 정밀모터사업이 활기를 띠기 시작한다.

DC브러시리스 타입의 쿨링 팬 모터와 FDD및 HDD용 스핀들 모터의 개발도 이 무렵 거둔 성과다. 특히 91년에 개발된 스핀들모터는 삼성전자FDD에 공급되는등 삼성전기에 대한 기선제압효과를 십분 발휘했다.

그러나 곧이어 삼성전기가 FDD용 스핀들모터생산에 참여하면서 상황은 또다시 반전되기 시작했다. 삼성전기가 국내 유일의 FDD생산업체인 이상 결과는뻔한 노릇이었다. 인하우스(In H-ouse) 수요처가 없는 금성부품으로서는 당초 삼성전자의 수요를 믿고 투자한 만큼 삼성전기의 스핀들 모터생산에 강하게 반발했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일이었다. 당시 두업체간 첨예한 신경전 으로까지 비화됐던 이 문제는 결국 구미공장의 금성부품설비를 삼성측에서 인수하는 조건으로 일단락된다.

이 사건의 여파로 금성부품이 주도한 모터사업은 92년에 금성사로 합병되면 서 다시 한번 금성알프스로 이관돼 현재는 헤드폰 스트레오 모터와 8mm 캠코 더용 모터등 AV용 정밀모터분야에만 주력하고 있다.

삼성전기는 FDD용 스핀들모터에 이어 미시게이트사의 설비를 들여와 HDD용 스핀들모터 생산에도 나서면서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한다.

또 최근들어서는 미유력PC업체로부터 데이터 스토리지용 모터개발을 의뢰받을 정도로 정보기기분야의 정밀모터강자로 부상하고 있다.

대다수 전문가들은 이와 관련, "항상 개발은 금성이 1~2년 앞선데 반해 양산 은 삼성이 유리하게 끌고 나가는 형국이었다"고 설명하고 "모터시장을 놓고벌인 이들 두 대기업간의 경쟁은 분명 국내DC정밀모터산업발전에 기여한 바가 적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김경묵 기자>


브랜드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