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모터시장에서 정밀모터생산붐이 한창이던 80년대말경 모터업체들의 관심은 스테핑모터에 쏠리고 있었다.
정확한 각도에 의한 제어효과가 뛰어난 스테핑모터는 당시 컴퓨터주변기기를비롯한 각종 OA기기의 성능을 좌우하는 핵심부품으로 인식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모터강국인 일본에서조차 몇몇업체만이 제대로 만들 수 있다는 소문이 또한 스테핑모터의 부가가치와 "주가"를 한층 올려 놓고 있었다.
국내모터전문업체로 스테핑모터생산에 처음 나선 업체는 광림전자다.광림전자는 87년 일본 펄스사와 OEM공급계약을 맺고 서울 등촌동공장에서 PM타입의 스테핑모터생산에 들어간다.
비슷한 시기에 연탄가스배출기사업을 하던 새한전자의 이만화사장이 일본 자 노메사와 손잡고 경기도 이천공장에서 하이브리드(HB)방식의 스테핑모터생산 에 나서면서 스테핑모터의 국내생산은 활기를 띠기 시작한다. 이에 앞서 국내 최대의 소형 AC모터업체인 성신도 80년초 스테핑모터 생산을적극 추진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성신의 기술제휴업체인 일시나노겐치사는 본래 HB타입의 스테핑모터 세계시장의 60%이상을 차지하고 있던 업체로 성신에게도 이 모터의 생산을 적극권유했다. 그러나 성신은 당시로는 시장수요가 한정됐던데다 기술 또한 까다로워 중도하차하고 말았다.
대다수의 성신관계자들은 당시 스테핑모터생산포기를 "불행중 다행"이라고 곧잘 표현하고 있다. 만약 성신이 그때 스테핑모터를 붙들고 있었더라면 오늘날의 성신은 없었을 것이라는 게 그들의 한결같은 얘기다.
스테핑모터는 AC모터와는 달리 기술습득과 제품안정이 용이치 않은데다 양산 을 한다해도 일본업체들의 저가공세에 버티지 못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같은 예상은 수년후 국내에서 스테핑모터생산을 시작하면서 현실로 나타난다. 국내업체들과 OEM계약을 맺은 일본업체들이 인건비상승을 비롯한 국내생산여 건악화를 이유로 물량을 줄이자 OEM수출에 의존해온 국내 업체들은 커다란 타격을 입게된다.
이로 인해 결국 광림전자가 막대한 초기투자를 회수하지도 못한채 부도를 내고 문을 닫았다. 새한전자도 일본 자노메사의 OEM물량이 끊긴 90년대초부터 국내 복사기업체들을 주대상으로 영업활동을 펼치고 있으나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이후에도 태림전자.한국써보등 몇몇업체들이 스테핑모터생산에 뛰어들었으나모두 양산에는 실패하고 만다. 그 후 스테핑모터는 다른 DC정밀모터와는 달리 국내업체들에게 기피품목으로 낙인찍혔다.
스테핑모터사업의 어려움을 말해주는 것으로는 아직도 답보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는 삼성전기의 예를 빼놓을 수 없다.
삼성전기는 스테핑모터 생산을 위해 89년 미에머슨과 합작관계를 맺고 수원 공장에서 양산채비를 갖췄다.그러나 처음에 쉽게 보였던 마그네트착자기술에문제가 생기면서 양산은 계속 미뤄지기 시작했다.
또 삼성이 스테핑모터생산에 들어갔다는 소문이 나기 무섭게 일본업체들이 개당 6달러선이었던 모터가격을 3달러이하로 내리면서 삼성전기의 양산은 더욱 어려워졌다.
그 후에 착수한 스핀들.캡스턴.드럼 등 다른 정밀모터분야에서는 빛나는 성과를 거둔 것과는 달리 아직도 명맥만 유지하고 있는 스테핑모터사업은 삼성 이 이제까지 저지른 몇 안되는 실책중 대표적인 사례로 꼽힐만 하다는게 업계관계자들의 공통된 견해다.
일본업체들에 의해 거의 10년 넘게 장악돼온 스테핑모터시장에서 국내업체들 의 자존심이 회복된 것은 한국권선기술이라는 한 중소업체에 의해서다.
한국권선의 임종관씨는 (주)성신에 있다가 85년 모터의 코일을 감는 임가공 사업으로 독립하게 된다. 그후 일동경전기에 프린터용 PM방식의 스테핑모터 스테이터를 공급하고 90년까지 팩시밀리.FDD용 스테이터를 공급하는 등 스테 핑모터 생산을 위한 착실한 기반을 갖춰나갔다.
한국권선이 사실상 국내 유일의 스테핑모터전문업체로 부상하는데에는 90년 대초 당시 상공부가 핵심부품국산화를 위해 강력하게 추진했던 "일렉트로-21 "사업의 덕이 컸다. 이 때 실행주관업체로 지정된 한국권선은 FDD용 스테핑 모터국산화에 성공, 이를 삼성전자와 현대전자에 공급하면서 스테핑모터전문 업체로 자리잡아갔다.
이후에도 팩시밀리및 프린터용 제품을 속속 개발, 일산을 대체해가면서 높게만 보였던 스테핑모터의 "벽"은 서서히 허물어져 갔다. <김경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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