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중인 기업활동 규제완화 특조법 개정안에 EMI(전자파 장해) 규제완화 조항이 삽입된 것은 첫단추부터 잘못 꿰어진 것이라는게 업계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기업활동 규제완화 특조법은 김영삼정부 출범과 동시에 상당히 비중있게 추진돼왔고 많은 경제인들 사이에서 상당한 지지를 받아온 대표적인 사업중의 하나다. 특조법 제정 의미가 기업들의 경제활동을 저해하는 각종 행정규제들 을 제거, 경쟁력을 높이겠다는데 초점을 두고 있으며 이면에는 국내시장및관련 산업보호라는 대명제를 깔고 있기 때문이다.
개정안의 내용에 대해 EMI검정과 관련된 대부분의 업계가 즉각적으로 반발하고 있는 이유도 바로 EMI규제를 완화하는 것이 국내 산업보호라는 동특조법 의 근본 취지와 정면으로 상치된다는 사실에 근거한다.업계 관계자들은 42개 특조법 개정안중 유일하게 EMI규제완화조항만이 "국내산업보호"라는 특조법 의 근본취지에 어긋난다고 지적한다.
10여개의 체신부지정 EMI검사대행업체들은 이와 관련, 지난 2일 청와대 민원 실.민자당.상공자원부.체신부등 유관기관에 이의 부당성을 탄원하는 진정서 를 제출하는등 여론화를 통한 법개정 저지작업에 나섰다.
90년부터 체신부 주관으로 시행돼온 현 EMI검정제도는 그동안 숱한 시행착오 를 거쳤고 지금도 문제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국내산업의 대내외 경쟁력강 화에 크게 일조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단계적인시장 개방의 물결속에서 물밀듯이 쏟아져 들어오는 외산제품에 대해 국산제품의 방패막이 역할을 맡아준 것 중의 하나가 다름아닌 EMI검정제였다는 얘기다.
실제로 마더보드(주기판), VGA카드, 모니터 등 상대적으로 수입비중이 높은일부 컴퓨터용 주변기기의 경우 가뜩이나 어려운 판국에 EMI규제 마저 풀린다면 국내산업은 제대로 피지도 못하고 고사하고 말 것이라는 지적이 강하다. UR 우루과이 라운드)타결이후 확실한 방어책도 없이 하나둘씩 시장을 내주고있는 우리 형편에서는 수입품에 대한 EMI규제를 완화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실제로 이미 오래전부터 EMI검정제도를 운영하고 있는 미국, EU, 일본등 선진국들은 점차 EMI를 다가오는 TR(기술라운드)시대의 새로운 무역장벽으로적 극 활용, 규제를 더욱 강화하는 추세다.95년부터는 EMI와 함께 EMS(전자파내 성)와 EMC(전자파 혼합성)까지도 일괄적으로 규제하려는 움직임마저 보이고있다. 수입품에 대한 EMI검사를 사실상 면제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이번 특조법 개정안에 관련업계가 강력하게 반발하는 또하나의 이유는 상대국과의 "호혜"차 원이 아닌 우리만의 일방적인 규제완화라는 사실이다.
업계의 한관계자는 이와관련, "우리가 해외시장에 진출하기 위해선 각국의수 많은 EMI시험을 거쳐야하는데 외국업체들은 자국에서 받은 시험인증서 하나만으로 국내시장에 쉽게 들어온다는 것은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기술 사대 주의 발상""이라고 성토한다.
물론 정부의 입장은 다르다. 심지어 주무부처로 업계의 사정을 누구보다도잘 아는 체신부측 관계자마저도 "완전한 폐지가 아니라 상호인증의 틈이 약간은 남아있다"고 말할 정도다. 개정안이 EMI검정 면제기관을 "우리와 기술수준이 같거나 높은 국가의 공인기관"으로 명시돼있어 결코 우리만의 일방적인조치 는 아니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EMI검정을 필해야하는 정보통신 관련기기를 수출하는 나라중 우리나라 수준을 밑도는 곳은 드물다는데 문제가 있다.업계의 대부분이개정안의 내용을 "완화"가 아니라 "완전철폐"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인 것도바로 이때문이다.
전파학회등 EMI관련 학계의 의견도 전반적으로 냉랭하다. EMI가 기술적인 시각에서 이해돼야 함에도 불구, 마치 행정규제의 하나로 인식되는 것은 어불성열이라는 것이다.학계 관계자들은 "각종 유해전자파가 "정보화시대의 AIDS "로 불릴만큼 심각하게 인식되고 있는 상황"이라며 "이번 개정안을 내놓은입안자들의 수준이 의심스럽다"고 혹평한다.
물론 국내에서 전자파로 인한 구체적인 피해사례가 나온 것은 지금까지 거의없다. 그러나 전자파에 노출된 사람들이 치명적인 병을 얻거나 각종 기기들 의 오동작이 전자파에 기인한다는 학계의 보고는 끊이지 않고 있는 실정이 다. 더구나 정보화의 급진전으로 앞으로 정보통신기기의 보급및 이용이 급증할것이 분명함에 따라 전자파로 인한 각종 사고의 위험성은 날로 배가되고 있는형편이다. 결론적으로 이번 정부의 기업활동규제완화 특별조치법의 일환으로 상정된 EMI규제완화조항은 일부 수입업자를 제외하고는 어디에도 찬성하는 곳이 없다.
정책입안자들이"누구를 위한 규제완화인가"를 심사숙고해서 법개정 여부를결정해야 한다는게 관련업계 및 학계의 공통된 지적이다. <이중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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