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사는 아이비 리그와 유명한 연구소를 가진 대학들을 주요 공략대상으로 삼았다. 스티브 잡스는 애플사가 유명 대학을 끌어들이는 데 성공한다면 다른 대학들은 자연스럽게 동조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아이비 리그가 관행을 깨고 학생들에게 컴퓨터를 보급하기 위해 한 업체와 거래한다면 매킨토시가 정말 특별한 제품이라는 생각을 갖게 될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애플-대학 컨소시엄의 회원이 되지 않은 대학들에게 영향력을 발휘하려면 매킨토시 그룹은 엘리트 대학을 설득시켜 계약을 맺도록 유도해야 만 했다. 즉 매킨토시가 처음 발표되기 전에 컨소시엄 회원명단을 작성해 놓아야만 했던 것이다.
사실 잡스는 대학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의사결정 과정을 잘 몰랐다. 그는 스탐퍼드 대학 총장인 도널드 케네디 와 점심 식사를 하면서 매킨토시를 소개하고 마치 컴퓨터가 아닌 사과를 도매로 넘기려는 식으로 제의했다. 그는 "이것 천개를 백만달러에 구입할 생각 이 있습니까?"라고 말하곤 했다. 그러나 그것은 한 사람이 결정할 수 있는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이런 결정은 컴퓨터연구소 소장, 학장, 부학장, 대학 부총장 및 교직원 전체의 의사를 수렴하여 이뤄져야 하는 것이었다. 잡스는대학내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실무자들을 설득할 능력이나 인내력도 없었다. 그러나 그의 옆에는 잡스와 비슷하게 20대 후반이고 프린스턴 대학 출인 인덴 르윈이 있었다. 르윈은 캘리포니아에 있는 소니사의 판매담당과장으로 근무할 당시 애플사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잡스와 처음으로 만난 인물이다. 르윈이 잡스를 처음 만난 이유는 소니사가 개발한 3.5인치 플로피디스크드라 이브 신제품을 판매하기 위해서였다. 잡스는 그 디스크드라이브가 마음에 들었을 뿐 아니라 르윈의 수완에 감동하여 애플사로 오도록 설득하게 된 것이다. 르윈에게 고등교육기관에 매킨토시를 판매하는 과제가 주어졌고 그는 각 캠퍼스를 열심히 찾아다니면서 그들의 의견을 듣고 설득시키는 활동을 폈다.
트리블과마찬가지로 르윈은 특별한 인물로 후에 잡스와 함께 넥스트사를 설립하게 된다.
르윈은 매킨토시가 미래형 컴퓨터라고 장담했다. 그러나 매킨토시는 카네기 멜론 대학의 팻 크레신과 다른 대학에 있는 컴퓨터 전문가들이 요구하는 1백 만 바이트의 메모리 용량, 1백만 도트의 화면조성과 초당 1백만개의 명령을 수행하는 속도를 갖는 이른 바 "3M"컴퓨터가 아니었다. 매킨토시는 모든 면에서 용량이 부족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르윈은 매킨토시가 사용하기 편리하면서 강력한 성능을 갖춘 "3M"형 컴퓨터라고 설명했다. IBM퍼 스널 컴퓨터는 작동이 어렵고 다른 PC들은 용량이 부족하다고 역설했다.
르윈은 매킨토시야말로 대학이 필요로 하는 성능에 대한 요구를 충족시켜 줄것이라고 설명했다. 르윈은 애플-대학 컨소시엄이 고객으로 구성된 단체가아니라 "함께 연구하는 집단"이라며 애플사와 함께 고등교육기관에 상당한영향 을 미칠 수 있는 혁신적인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말했다. 스탐퍼드 대학측은 매킨토시에 대해 깊은 관심을 보였지만 컨소시엄에 가입 하는 것과 2백만달러라는 재정적 부담을 져야하는 조건은 기피했다. 그러나 학생들로 하여금 대학 소유의 중앙 집중식 컴퓨터를 사용하도록 하는 것도비용이 많이 들었다. 대학측은 메인프레임 컴퓨터와 미니 컴퓨터에 지대한관심 을 가졌다. 학생들이 대당 1천달러의 매킨토시를 사용하도록 하는 것이중앙컴퓨터를 사용하는 것보다 훨씬 비용이 덜 들었다.
게다가 매킨토시를 사용하도록 하면 그 비용은 스텐포드 대학이 아닌 학생이 나 학부모가 지게되는 것이었다. 대학이 컨소시엄에 가입하면 대학은 대형컴퓨터를 도입하지 않아도 되므로 1년안에 이득을 보게 되는 것이다. 대학은하 룻밤 사이에 컴퓨터 지원금으로 6백~7백만달러라는 추가 예산을 얻는 셈이었다. 이같은 조건은 대학의 구미를 충분히 당길만한 것이어서 대학의 재정적 이해관계를 떠나서 애플사의 혁신적 기술을 수용하도록 설득하기에 충분했다. 아이비 리그 대학이 5개 있는 미국 동부지역을 이끌어 가는 인물은 스테시브레슬러였다. 브레슬러는 젊고 활달했으며 열정적으로 일했다. 애플사는 그녀를 캘리포니아로 초청해 개발단계에 있는 매킨토시를 보여 주었다. 당시개발 된 프로그램이 거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그 기계에 커다란 애착을 느끼게 되었다.
그녀뿐 아니라 그 컴퓨터를 미리 본 사람들은 호감을 갖게 되었고 생명이 없는 물체치고는 친밀감을 느끼게까지 되었다. 그때부터 애플사는 판매업무를 그만두고 판촉활동을 하도록 하였다. 그녀는 밑바닥부터 애플-대학 컨소시엄 회원을 모집하기 위한 캠페인을 벌였다.
브라운 대학은 쉽게 설득할 수 있었다. 브라운 대학에 있는 컴퓨터 전문가들 은 컴퓨터업계의 여러 소식통을 통해 이미 제품에 대한 긍정적 평가를 들어온 상태였고 그녀가 방문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가 제품을 소개 하려하자 그들은 자기들 마음대로 사용하고 시험해 보겠다고 그녀를 돌려보냈다. 그들은 곧 계약을 맺겠다고 그녀에게 연락했다.
아이비 리그 대학들은 쉽게 설득되지 않았다. 처음에는 이들 모두 그 제품에 대해 관심이 없다고 응답했다. 사실 그들은 퍼스널 컴퓨터를 사용할 것인지의 여부조차도 결정하지 못한 상태였고 사용한다고 결정이 되더라도 IBM퍼스 널 컴퓨터를 사용하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좌절감을 느낀 브레슬러는 게릴라 전법으로 전술을 바꿔 매킨토시 시제품을 직접 들고 학교 기숙사와 근무처등 을 찾아가 그 성능을 학생과 교무처 직원들에게 보여주기 시작했다. 다트마 우스에서는 컴퓨터센터 로비에 컴퓨터를 설치하여 한마디의 설명없이 화면그림을 조작한 적도 있었다.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고 곧 소문이 퍼지게 되어결국 그 컴퓨터센터의 윌리암 암스소장이 직접 나와보게 되었다. 그는 그자 리에서 설득당했다. 그는 네트워크를 통해 중앙컴퓨터와 학생 및 교직원모두 를 연결하는 개인용 매킨토시를 갖게 될 날이 올 것이라는 것을 예견한것이다. 다트마우스는 1960년대에 학생들이 캠퍼스내 컴퓨터를 자유롭게 사용할수 있도록 하는 데 많은 기여를 했었다. 이제 암스는 다트마우스가 컨소시엄 에 가입하도록 하여 캠퍼스내에 퍼스널컴퓨터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데일익을 담당하게 되었는데 이는 애플사 입장에서 보면 또 하나의 변혁이었다.
국제 많이 본 뉴스
-
1
공중화장실 휴지에 '이 자국'있다면...“절대 사용하지 마세요”
-
2
필리핀, 두테르테 대통령 체포…ICC 체포영장 집행
-
3
“인도서 또”… 女 관광객 집단 성폭행, 동행한 남성은 익사
-
4
“초상화와 다르다”던 모차르트, 두개골로 복원한 얼굴은
-
5
“하늘을 나는 선박 곧 나온다”…씨글라이더, 1차 테스트 완료 [숏폼]
-
6
중국 동물원의 '뚱보 흑표범' 논란? [숏폼]
-
7
가스관 통해 우크라 급습하는 러 특수부대 [숏폼]
-
8
“체중에 짓눌려 온몸에 멍이” … 튀르키예 정부도 경고한 '먹방'
-
9
'Bye-Bye' 한마디 남기고....반려견 버린 비정한 주인 [숏폼]
-
10
영화 같은 탈옥... 인도네시아 교도소서 50여 명 넘게 도주
브랜드 뉴스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