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가전유통업은 자본주의시대의 전형적인 산물인 것처럼 보인다. 자본력 강한 소수기업이 가전시장을 거의 장악해왔기 때문이다. 국내 가전시장 은 소위 가전 3사가 주도, 부분적 과점상태에서 생길 수 있는 각종 문제점들 이 표출되기도 했다. 현재 이같은 문제점들을 치유하지 않고는 앞으로 다가올 유통시장 전면개방에 견디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다양한 가전제품을 판매하기 위해서는 유통이 필수적이다. 유통은 제품이 제조업자로부터 최종소비자까지로 흘러가는 과정에서 물적 소유권을 변경시키면서 재화 공급에 따른 여러가지 기능들(금융.위험부담.수송.보관.하역.시장 정보.가격설정.제품분류)이 수행된다. 이같이 제조업자에서부터 그 후의 단계에 존재하는 다양한 유통의 기능을 담당하는 유통기관들(도매상.소매상)의 관리가 유통전략의 대상이다. 우리나라는 유통기능 수행당사자인 중간상들의 관리가 제대로 되고 있지 않다.
우리나라 가전유통의 문제점을 몇가지 들어보자. 첫째, 여러가지 유통경로들 이 거의 배제된 채 제조업자의 단독대리점 형태가 지배적이다. 대리점은 계약을 맺은 제조업자의 가전제품들만을 취급할 수 있고 타 제조업체의 제품취급은 불가능하다. 유통이론서에서는 이를 배타적 제품취급(E.clusive Deali ng)이라고 하여 비윤리적인 행위(Unethical Pra-ctice)로 규정하고 있다. 중 간상의 자유로운 제품 취급권리를 저해하고 소비자의 제품선택 자유를 제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 규모가 작고 자본력이 약한 대리점에 자유스러운 상행위를 상당히 규제하고 있다. 예컨대 특정 대리점이 취급한도이상 제품을 강매받아 어쩔수 없이 원가이하로 블랙마켓에 되팔게 하는 것이 그것이다.
이때 대리점들이 강매를 거부할 때 제조업자들은 여러가지 위협적 요인들을 써 대리점의 권리를 제한한다. 셋째, 구조적으로는 "제조업자-대리점"체제 이면서도 2~4가지 가격대가 형성돼 소비자들을 혼동시키고 거래질서가 문란 하다. 동일 제조업자 산하의 여러 대리점들이 서로 다른 가격으로 제품을 판매하는데서 나타나는 것이다. 넷째, 가전 3사는 중간상들의 고객권리를 무시 내지는 용인하지 않은 상태에서 최종고객의 고객권리만을 제창하는 모순점을 안고 있다. 기업외부의 집단은 그것이 중간상이든 최종소비자이든 모두 고객 임에도 불구하고 가전3사가 중간상들의 고객 대우를 무시한다는 것은 일종의난센스라 생각한다.
이같은 문제점들은 제조업자가 가지고 있는 힘을 과다하게 발휘한데서 나타나는 것으로 보인다. 중간상들은 제조업자에 비해 힘이 약해 제조업자들의 통제를 받기가 쉽다. 이를 유통경로 구조를 설명하는 권력-의존이론(Power- Dependence Theory)으로 분석해보자. 이 이론은 힘의 위력에 따라 주도-의존 관계가 형성된다는 것이다. 이 이론에서는 보상력(Reward), 강제력(Coerciv e), 법적권한(Legitimate), 전문력(E.pertise), 준거력(Referent) 등 5개 권력의 원천이 기본이다. 보상력은 가격할인이나 리베이트 제공을, 강제력은 거래 단절과 같은 위협을, 법적권한은 계약사항 준수 촉구를, 전문력은 전문 판매 원조를, 준거력은 상호 신뢰관계 유지를 각각 의미한다.
제조업자들이 유통업체들보다 힘이 강할 경우 전문력이 가장 바람직하고 법적권한이 가장 바람직하지 않다고 한다. 보상력도 유통업체를 움직이는데 어느 정도 효과가 있지만 강제력은 쓰지 않는 것이 대체로 바람직하다고 한다. 그러나 국내 가전업체들은 강제력 발휘를 통해 대리점체제 유지를 해오고있다. 대리점의 판매력을 상회하는 양을 강매, 이것이 다른 유통경로로 흘러가게 하고 있다. 이는 가격질서 파괴의 주된 원인으로 거론되고 있기도 하다. 대리점들은 제조업체의 통제를 벗어날 수 없는가. 이는 거래-비용이론(Tran saction Cost Theory)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이 이론은 조직상호간 거래관계 에서 소요되는 비용을 분석도구로 삼아 유통업체의 기회주의 행동(Opportun istic Behavior)을 설명하고 있다. 거래 관계를 맺기위해 소요되는 다양한자원 시간.돈.노력등 즉 거래비용은 기회주의행동인 거래 단절과 함께 사라진다. 이 이론에 의하면 유통업체가 가진 다른 수단의 이용도가 낮으면 낮을수록 유통업체들은 기회주의적 행동을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시말해 대리점이 작고 다른 대안(다른 유통경로로 변화)이 없으면 제조업체에 자연 히 종속된다는 것. 만약 대안이 생겨 이때까지 제조업체와 거래를 맺으면서유지하는데 들었던 거래비용보다 더 높은 이익이 생기면 기존 제조업체와의 관계를 단절하고 새로 제조업체나 다른 대형 판매점과의 관계를 맺을 수 있다. 다른 업체가 가전사업 참여를 망설이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제품을 생산해도 이같은 유통상황에 자연스럽게 진입할 수 없는 것이다.
가전3사의 치열한 가격경쟁도 신규 참여를 어렵게 하는 요인이다. 시장점유 율 확대를 위해 기존 가전업체들은 가격경쟁에서 비가격 경쟁으로의 이행을 담합적으로 막아왔고 경쟁자를 뒤떨어뜨리기 위한 가격경쟁이 주요 도구로 이용돼왔다. 가전3사의 지배하에 있는 패쇄시스템은 유통시장 개방에 따른 선진업체의 상륙으로 개방시스템으로 전환될 것이 명백하다. 외부환경의 변화는 국내가전 유통시스템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까. 상황 적합이론(Contingency Theory)에 의하면 외부환경의 변화에 맞춰 내부구조와 기능을 탄력적으로 변화시키는 조직이 고정된 조직구조보다 더 효율적이고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외부환경의 변화는 어떻게 전개될까. 외국 가전업체의 국내 진출이 얼마나 치열할지 아직 예측하기 힘들다. 주로 일본 가전업체나 전문 유통업체들이 진출할 것이라는 추측이 많다. 이들 외국기업의 국내진입은 앞으로 가전유통 업이 어떻게 전개될지 불확실하다. 환경이 불확실해지고 복잡해지면 국내 가전산업은 어떻게 될까. 혹자는 지난 80년대 후반 대만의 가전유통시장이 일본에 의해 붕괴된 예를 언급하기도 한다.
조직의 생존을 설명하는 개체군 생태이론(Population Ecology Theory)에 의하면 신규 조직이나 규모가 작은 조직이 오래된 조직이나 대규모 조직보다 사멸할 가능성이 더 높다는 것이다. 거대한 자본력과 경영능력을 보유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상황을 중소기업 중심이던 대만의 경우와 동일시하기는 곤란할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대만의 시장붕괴 교훈을 얻어 변화된 시장에 맞는 새로운 유통전략을 짜고 실시할 필요는 있다. 이는 궁극적으로 비교적우리보다 경쟁력을 갖춘 외국 기업들과의 싸움에서 이기기 위함이다.
유통전략의 핵은 소비자 욕구에 맞춰 최적의 유통경로를 선택하고 이를 효율 적으로 관리하는데 있다. 가전 유통기관의 미래상은 대형화와 저가격화라는두개의 축을 근간으로 형성돼야 한다. 대형화는 제품 선택의 폭을 넓히고 깊이를 늘린다. 여러 제조업체의 제품을 판매하면서 동시에 특정 브랜드내에서다양한 품목의 제품을 취급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형태가 체인형식을 갖춘양판점 General Merchandising Store)과 대규모 대리점 등이다.
변화하는 소비자의 행태중 하나가 일괄구매이고 이를 겨냥한 전자업계의 대응이 양판점과 독립 직영점이다. 원래 양판점의 의미는 대규모 소매점으로서 연쇄점 형태를 갖춘 것을 말하나 우리나라는 대체로 두가지로 쓰인다. 첫번째 의미의 양판점은 용산 전자상가가 그 예이다. 양판점의 정의에 부합하는 형태이지만 최근 연쇄점 형태로 되는 추세이다. 다양한 제품의 비교구매가 가능한 양판점이 많이 등장할 것이다. 두번째 의미의 양판점은 특정 업체의 계열 전제품 취급을 의미하는데 이것은 엄밀한 의미에서 대리점의 대형화이지 양판점이 아니다. 물론 전제품을 취급하므로 현재보다는 제품 선택의 폭이 넓어질 것이다.
저가격화는 중간상을 배제한 직접판매나 통신판매와 대량 구입을 통한 중간 상의 이윤폭 감소및 불필요한 서비스 대량삭감을 통한 방법등 두가지다. 대량구매의 할인을 보장해주고 낮은 마진-높은 회전율을 기본적인 소매점 전략 으로 쓰는 것이다. 미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할인형 백화점이나 우리나라에 등장하기 시작한 대규모 할인형 전문점이 좋은 예이다.
기존 단일 대리점 형태에서는 거의 없었으나 다경로하에서는 유통경로 구성 원사이에 경로간 갈등 생길 수 있다. 제조업자와 특정 유통업체의 목표 또는역할이 서로 다른데서 생기는 경로 구성원들간 갈등의 해소도 당면할 문제일 것이다. 유통경로의 갈등이론에 의하면 전혀 갈등이 없을 때보다 약간의 갈등이 존재할 때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여러 경로 종사자간 에 경쟁심을 유발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다경로 체제하에서는 특정 집단이 제대로 유통의 혜택을 못받거나 과도하게 받을 수 있다. 어느 지역은 구매력 이 높아서 다수의 가전업체가 다수의 경로로 침투하는 반면 어느 지역은 구매력이 특히 떨어져서 아주 소수의 제조업체가 단일 경로로 접근할 수 있는것이다. 후자에 속하는 소비자들은 일정 지역내에서 공정한 선택의 기회를 상실케 될지도 모른다.
유통경로 선택 다음으로 중요한 것이 유통경로의 효율적 관리문제이다. 제조 업자-대리점, 제조업자-소비자, 제조업자-양판점, 제조업자-직영점등 유통경 로에서 가전업자들은 중간상을 일종의 하위 종속기관으로 간주할 것이 아니라 공동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같이 노력하는 협력자로 인식해야 한다. 담보 요구에 의한 물품제공이라는 형태뿐 아니라 필요하다면 다른 형태의 메커니즘도 필요하다.
제조업자와 중간상간 새로운 형태의 정보 집적이나 교환시스템들이 개발, 적용된다면 지금보다는 훨씬 효율적인 유통경로 관리가 가능할 것이다. 미국에 서는 완전한 컴퓨터화로 본사와 전국 대형 소매점들이 연결되어 있어 판매추이나 수요변동뿐 아니라 다양한 고객관련 정보의 집적,분석이 가능해지고 있다.우리나라도 제조업자와 대형 소매점들과의 협력체제를 통한 전산망제도가 도입된다면 판매에 영향을 미치는 여러 요소들을 감안한 다양한 형태의 유통 전략이 가능해지리라고 본다.
대리점은 제조업자가 미처 획득하지 못했을 수도 있는 정보를 가지고 있을수 있다. 최종소비자들을 직접 대면하면서 느끼거나 획득한 중요한 고객정보 , 최근 고객의 취향 변화 등에 관한 전문적 자료를 聖득하고 있다. 이것이대리점이 제조업자에 대해 가지는 일종의 대항력이다. 따라서 가전제품 제조 업체들은 지금과 같은 일방적 강압수단들을 쓸 것이 아니라 제조업체의 고객 인 대리점을 상대로 각종 대리점운영에 관한 노하우의 제공이나 원조에 중점 을 두는 것이 더 의미있을 것이다.
앞으로는 단일 경로를 벗어나서 다양한 소비자들의 요구에 맞추는 다양한 형태의 유통 경로들을 개발,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기존체제를 그대로 혹은 변형시키면서 또 새로운 형태의 경로를 추가, 적절히 관리하는 전략의 선택이 필요하다. 변화하는 환경을 위기의 시작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도약의 시작으로 인식, 창조적인 차별적 우위와 경쟁 우위를 적극개발할때 국내 가전산업의 미래가 밝아지리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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