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자취(튜너)-5

73년 중동전쟁과 석유파동으로 세계 경제가 불황에 빠지고 국내 경제도 막대 한 영향을 받기는 했으나 정부가 제 3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72~77년) 발표, 전자 공업을 중점 육성업종으로 선정한데 이어 부양책으로 전자 부품에 대해 세제 감면조치와 함께 대대적인 지원책을 펴기 시작한다.

이에발맞춰 국내 부품업체들은 일본으로부터 각종 기술을 도입하게 되고 현 삼성 전기는 73년 11월 일본 산요(SANYO)사와 합작인 삼성산요전기(주)를 수 원시 매탄동에 설립,흑백 VHF 기구식 메카 튜너를 처음 생산하기에 이른다.

삼성산요전기가생산에 나선 것은 가장 원초적인 진공관식 메카 튜너로 금성 알프스와 어깨를 겨눌 만큼 양산기술을 갖추지는 못했지만 국내 양대 산맥인 금성과 삼성의 경쟁체제가 이때부터 본격구축됐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들업체는 70년대 중반부터 냉장고.세탁기.TV 등 가전제품시장 경쟁에 돌입했으며 금성알프스와 삼성산요전기는 영상기기 핵심부품인 튜너 개발 경쟁 에 나섰는데 튜너는 지금까지도 선두그룹에서 양사가 선의의 경쟁을 벌이고있는 품목중의 하나이다.

70년대중반까지만해도 TV.냉장고 등 가전제품은 고급사치품으로 분류돼 매겨진 전체가격의 절반을 차지하는 특소세로 인해 TV는 수출가격이 5만5천원 인데 비해 국내 가격은 8만원 수준이고 냉장고 1백20리터의 경우 수출 5만원 ,국내 12만원으로 2배 이상 차이가 나는 등 당시의 국내 전자업계는 기술 혁신과 대량생산에 의한 전자제품 대중화와는 거리가 먼 상태였다.

이런와중에 삼성전자와 일본 산요전기가 마찰을 해소하고 양사간의 정상화 를 위한 합의각서를 73년 2월 교환했다.

이합의 각서에 따라 일본 산요전기가 구미에 독자적으로 설립, 추진해 오던 전자부품 공장을 삼성의 수원단지로 유치하고 삼성전자와 삼성산요전기.일본 산요전기.산요전기무역 등 4개사 합작사인 삼성산요파츠라는 부품전문업체를 설립했다. 기존 삼성산요전기가 74년 3월 23일자로 삼성전기로 상호를 변경하자 삼성산 요파츠는 삼성전기파츠로 상호를 변경, 등록한 이후 삼성전기파츠는 다시 77 년5월1일자로 상호를 삼성전기부품으로 변경하고 79년 1월 기업공개를 단행 했다. 삼성전기부품은 그 이후 77년 4월 3일 삼성전자에 흡수 합병되기까지 6년4개 월 동안 삼성전기와 일본 산요와의 기술제휴관계는 막을 내리게 되는데 그동안 다양한 분야에서 많은 부품 생산기술을 일본으로부터 도입, 기술 기반을마련한게 사실이다.

삼성전기가신규로 참여하는 사업에 대해 기존 선발업체들의 방해 공작이 거세지자 튜너부문에서도 생산활동이 활발히 이루어지지 못해 75년 4월 UHF대 역에 사용되는 NTSC방식의 메카 튜너와 PAL방식의 튜너를 개발, 양산에 나선 이후 70년대말까지 신제품 개발이 부진한 실정이었다.

이에 반해 금성알프스는 일본 알프스로부터 기술을 단계적으로 이전 하면서75년 9월 국내 최초로 유럽 채널의 튜너를 개발, 원 스피드 타입으로 생산한 데 이어 76년 10월에는 일본 알프스의 기술지원을 받아 순수 국내 기술진에 의해 설계된 UHF전용 전자동조 튜너를 국내 처음으로 생산한다.

금성알프스가76년말부터 일본의 기술지원으로 기계식 메카 제품에서 전자식 튜너로 전환하기 시작,국내 TV의 기술을 한 차원 높이는 계기를 마련한데 이어 삼성전기는 79년도초 2백?급 전자식(VVC) 튜너를 순수 독자기술로 개발 , 양산에 나선다.

70년대후반부터 81년 컬러 TV방송이 시작되기 이전까지는 부품의 생산 기술 이 진공관식 타입에서 트랜지스터 타입으로 전격 전환되고 각종 전자 제품은 기계식에서 전자식으로 급변하는 한편 세계적으로는 절약형 전자제품 개발이 한창 이루어지는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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