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산업의 발자취- 12

85년에서 88년까지의 3~4년간은 로케트전기와 서통의 전성기였다.

양양이버튼형 알칼리 전지 사업에서 손을 뗌에 따라 알칼리와 망간 등 모든 전지시장에서 이들의 독과점체제가 정착됐다.

전지시장의 어떤 틈새에서 조차 이들 양대 세력에 맞설만한 업체는 존재하지 않았으며 어느 누구도 이들에 맞서려는 생각을 품을 수도 없었다.

전지시장의지배권을 완전 장악한 로케트 전기와 서통 양사는 상호 경쟁하면 서도 서로의 영역을 존중해주는 공존 관계를 형성하고 기득권을 공고히 하는데 온 힘을 쏟았다.

80년대중반은 이들 업체에겐 태평성대였다.

시장독점력을 바탕으로 양사가 대규모 설비 증설을 단행한 것도 이 시기 였다. 특히 로케트는 87년들어 본촌 공장과 별도로 하남공단내 2만2천평의 부지를 매입하고 제2공장 건설을 추진하는 한편 기업부설 연구소를 설립 하는 등 전에 없이 의욕적인 기업확장 전략을 펼쳤다.

이런 중에 로케트의 사주인 김남중 회장이 별세했으나 예전과 달리 경영 측면에서의 별다른 동요는 없었다.

2세체제로의 이행준비가 상당히 진행된 덕분이었다. 로케트의 2세 체제로의 이행은 89년 김회장의 2남인 김종성 현사장이 정식 취임함으로써 완료된다.

로케트는한편 2세체제에 들어서기 시작한 88년에 기업을 공개하고 상장업체 로 등록했다.

분당3백개의 생산능력을 갖는 알칼리 설비를 새로 도입하는 설비 투자도 착실히 진행됐다.

이해 로케트의 매출액은 처음으로 4백억원을 넘어선 4백50억원을 기록했다.

수출도2천만달러를 돌파했다.

비슷한시기 서통도 분당 6백개의 망간 전지 생산설비를 도입하는 등 로케트 와 마찬가지로 생산능력 확대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그러던차 87년에 수입자유화 조치가 발표됐다.

수입자유화조치에 따라 국내 업체의 시장 지배력이 약화될 것이라는 예상은 누구나 할 수 있었지만 그 강도는 생각보다 심했다.

업계의한 관계자의 말을 빌면 그것은 핵폭탄의 위력을 갖는 것이었다.

결코흔들릴 것 같지 않던 전지 시장의 양대 업체인 로케트와 서통의 아성도 불과 몇년을 못 버티고 삽시간에 무너져 내렸다.

수입자유화 조치로 본격적으로 외국산 건전지가 밀려들어오기 시작한 것은88년부터 였다. 이 때 줄잡아 10여종의 외국산 건전지가 들어왔으며 이후 계속 증가해 90년께는 20종을 넘어서고 값싼 중국산 전지까지 가세, 국내 업체 의 시장 점유율은 급속히 감소했다.

한번터진 외산 건전지의 유입은 걷잡을 수 없었다. 수입 자유화 이후 5년만 인 92년에 이미 내수 점유율이 30%를 넘어설 정도로 그 위력은 대단했다.

외산이이처럼 짧은 시간동안 내수 시장에 급속히 확산될 수 있었던 것은 크게 세가지 이유였다.

첫째는소비자들의 마음속에 깊이 자리잡고 있던 외산 선호 심리였고 둘째는값이 싸다는 것이었다. 특히 중국과의 수교이후 밀어닥친 중국산의 위력 앞에서 국산 제품은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었다.

이와함께국내 업계의 안일한 자세 또한 외산에 시장을 내주는 요인이었다는 비판을 감수해야만 했다.

독점이란틀 속에 안주해 온 탓에 수입 자유화에 따른 경쟁에 대비하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어찌됐건수입자유화 조치 이후 외산 건전지의 내수시장 잠식은 국내 업체들 의 경영을 급속히 악화시키면서 위기상황으로 몰아갔다.

매출감소와 눈덩이 처럼 불어나는 적자에 로케트와 서통 모두 나름대로 대응방안 마련에 나섰으나 이렇다 할 묘안은 나오지 않았다.

이때부터 일부업체의 부도설도 심심치 않게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45년의 역사를 갖는 국내 전지산업이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업계는 물론 정부내에서조차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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