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화" 구호의 허구

올들어 "국제화"라는 용어가 유행처럼 사용되어 왔고 이제 새삼 거론 하기에진부한 느낌조차 주는 용이가 되어 버렸다.

그러나 이것은 국제화가 필요한 국제상황이 이미 소멸했다거나 우리 나라의 국제화가 완료되었기 때문은 결코 아니다. 도리어 포스트 UR시대의 상질물로세계무역기구 WTO 가 상설 정착된 것이 현실이고 국제화가 무엇인지 의미 파악조차 잘되어 있지 않은 것이 국내현실이다. 국민들이 국제화의 용어에 식상하게 된 것은 국제화가 일상적인 정치구호에 불과하다는 느낌과 그에 걸맞는 변화들이 보이지 않는다는 실망감 때문일 것이다.

"국제화"라는 용어는 국제적 경쟁과 국제적 교류의 토대 위에서 활동해 온분야들에 있어서는 애초부터 별반 새로울 것이 없었다. 국제화 그 자체가 이미 생활화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전자산업.자동차산업.섬유산업 등이 그 경쟁의 대상을 국제무대속에서 찾게 된 것은 이미 오래전의 일이고 공학및 과학분야" 대부분의 연구가 그 생리상 먼 옛날부터 이미 국제적인 경쟁과 교류의 토대위에서 수행되어 왔던 것이다.

정녕"국제화" 구호가 새롭게 인식된 곳은 국제 경쟁과 거리가 먼 곳에서 안주하다가 국제무역질서의 재편과 더불어 국제경쟁에 새롭게 노출된 분야들이다. 따라서 금융등의 각종 서비스 분야와 농업분야에 "국제화"의 파장이 가장 크게 미치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고 하겠다. 한편 국내 정치분야가 "국제화" 의 무풍지대로서 구태의연한 행태를 보이는 것도 그 연장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겠다. "국제화"란 우물안 속 세계의 사고방식을 우물밖 세계의 사고 방식으로 전환 하는 데에서 출발한다고 할 수 있다. 홀로 사는듯이 생각해 왔던 것을 세계 속의 일부로서 살고 있음을 재인식하고 거기에 걸맞게 사는 방법을 터득하는것이 곧 "국제화"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국제화" 에 있어서는 국제적 인 교류와 이해가 선행되어야 하겠다. "현실은 소설보다도 더욱 소설적 이다 실제로 접해보고 사고방식과 생활양식을 겪어보기 전에는 진정한 이해가불가능한 법이기 때문이다.

국제적인교류를 위해서는 해외에 나가 국제적인 모임에 참여하는 것도 필요 하나 본격적이 국제화단계에 들어 가려면 국제적인 모임의 장을 국내에 마련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제네바는 누구나 잘 알고 있는 국제도시이다. 이것은 제네바가 인구 1천만의 서울이나 동경.뉴욕.상해처럼 대도시이기 때문이 아니다. 제네바는 인구 30만에 불과한 작은 도시이다. 그러나 각종 국제 기구들이 이곳에 위치하고 있고 각종 국제행사들이이곳에서 개최 되고 있기때문에 국제도시의 대명사가 되고 있는 것이다.

지난5월초 에는 ICC가 미국 뉴올리언스에서 개최되었었다. ICC는 잘 알려진 바와 같이 GLOBECOM과 더불어 통신분야 세계 최고 권위의 학술대회이다. 올해의 ICC에는 세계 48개국에서 2천4백명 가량의 인원이 참석한 바 있다. 만일 이러한 학술대회를 국내에 유치한다면 통신 분야에 있어서 국내의 학술 및 연구개발수준을 고양시키는 계기가 됨은 물론, 참가 외국인들과의 교류를 통해서 국제 감각을 높일 수 있고 외국인들에게 우리나라에 대한 인식을 높여줄 수 있으며, 한편 관광산업에 기여하는 바도 클 것이다. 이러한 점에 착안하여 싱가포르는 수년전부터 유수의 국제행사들을 적극 유치해 왔으며 내년도 GLOBECOM도 유치 확정한 바 있다.

그러나우리나라는 유감스럽게도 그러한 형편이 되지 못한다. 이러한 대규모 의 국제 학술대회를 개최할 시설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올해의 ICC를 예로 들면 논문 발표 세션 76개, 워크숍및 튜토리얼 20개, 각종 위원회 회의 56개 를 4일 동안 처리할 수 있는 회의시설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뉴올리언스는회의실 1백4개, 전시장 1만9천1백45평의 "어니스트 모리얼 컨 벤션 센터"가 있어서 이러한 행사를 5개 정도를 동시에 치를 능력이 있었다.

그러나현재 우리나라는 ICC행사 하나를 절반 규모로 축소시켜서 개최 한다해도 이를 수용할 만한 시설이 아직은 없다.

몇년 전 CCITT 제18연구단의 표준 회의가 일본 시고쿠섬에 있는 마쓰야마라는 작은 휴양도시에서 개최된 일이 있었다. 인근 에히메 현의 현민회관(우리 의 군민 회관에 해당)이 그곳에 있어서 이 국제회의를 개최한 것이다. 그 현 민회관은 충분히 넓어서 8개의 실무분과 회의를 병행해서 열 수 있었고, 한편 현민들도 평상시 대로 모임을 갖거나 영화관람을 할 수 있었다. 그 작은 도시의 현민회관 시설은 회의장을 보나 식당을 보나 국제회의 개최에 손색이 없었다. 이웃나라에는 군청소재지에도 갖고 있는 국제 회의시설을 우리는 천만 인구 의 수도 서울에도 갖추지 못하고 있다. "국제화"의 구호를 요란스레 외치면서도 원초적인 교유의 장 하나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 인 것이다. 이것이 바로 "국제화"구호의 허구성을 여실히 드러내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지금이라도 "국제화"구호를 잠시 멈추고 그 준비 단계로서 국제 규모의 컨벤션 센터 하나라도 우선 세워야 하겠다. "실질적인 국제 화"를 다짐하는 상징물로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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