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산업 발자취(7)

전지산업이 태동한지 30년이 넘는 동안 몇몇 기업이 생겨났다 없어지고 개척 자인 호남전기의 소유주도 몇번 바뀌는 과정을 거치긴 했지만 70년대 후반까지는 건전지 시장에서 호남전기의 독주 체제가 이어졌다.

때문에 이때까지는 전지산업의 역사가 바로 호남전기의 사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통의 시장진출은 이런 점에서 국내 전지산업의 역사를 명실공히 경쟁 체제 로 이끈 분수령이 되는 사건이었다.

서통이전지 시장에 참여한 해는 78년. 이해 구미에 전지공장을 준공한 서통 은 "썬파워"라는 브랜드의 건전지를 시장에 내놓아 호남전기를 바짝 긴장 시켰다. 서통의 시장 진출은 50년대 일부 소규모 업체의 시장진출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54년서울통상이란 상호로 설립돼 무역업에 종사하던 이 회사는 60년대 가발 및 스웨터 생산과 수출로 사업기반을 다진후 71년 유니온셀로판 공업 주식회 사(후에 서통화학으로 상호변경)를 인수하고 74년 기업공개 및 주식을 상장 하는 등 급속히 사업을 확대해 가고 있던 유망기업이었다.

게다가시장 진출을 공식 선언하기 전인 75년부터 서통은 이미 평택공장에서탄소봉을 생산, 수출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점에 비추어 서통이 건전지 시장 진출을 생각하고 탄소봉을 생산 하기시작한 것인지는 분명치 않으나 시기적으로 판단할 때는 충분한 개연성을 갖고 있었다.

서통이탄소봉 생산을 시작한 75년은 경영권 다툼과 탈세 사건 등으로 호남 전기의 이미지가 땅에 떨어지고 있었고 필연적으로 독점의 폐해에 대한 비판 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었던 때였다.

이런상황을 고려한다면 서통의 전지시장 진출은 예고된 수순이었음 에도 불구하고 호남전기는 이에 대한 적절한 대응책을 마련하는데 실패했다.

기업의소유주가 잇달아 바뀌는 시기였던 탓에 내부문제의 정리에 눈을 돌릴수밖에 없었던게 가장 큰 요인이었다.

이같은상황은 역으로 서통의 입장에선 다시 없는 행운이었다.

평시라면강력한 독점체제를 구축하고 있던 호남전기를 상대로 시장쟁탈전을 펼친다는 것은 상당한 위험부담이 따르는 것이었겠지만 당시의 상황은 달랐다. "75년(서통이) 탄소봉 생산을 개시할 당시 이미 호남전기는 경영누수에 이은 탈세사건으로 비틀거리고 있었습니다. 경영층에선 건전지 시장에 진출할 적기라고 판단했지요. 한편에선 은밀히 호남전기를 인수하자는 계획도 있었지만 호남기업이라는 인식이 워낙 강한 탓에 성사되지 못한걸로 알고 있습니다. (서통은 경상도 에 근거를 두고 있었다.) 때문에 독자적인 시장 진출을 추진할 수밖에 없었지만 성공 가능성을 의심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습니다.

내부시장조사 결과도 호남전기의 독점에 따른 횡포에 불만이 큰 걸로 나타났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서통 관계자의 회고담이다.

결국호남 전기의 경영 혼란과 그에 이은 위기가 단소봉을 수출하고 있던 서 통에 절호의 기회를 제공한 셈이었다.

서통은건전지 시장참여와 동시에 호남전기를 향한 강력한 공격의 포문을 열었다. 초반 승기를 잡자는 계산이었다.

서통은먼저 신문.방송을 통한 광고전을 전개해 소비자의 눈길을 끌어당겼다인기 연예인인 남보원과 이주일을 등장시킨 광고가 잇따라 제작돼 소비자의 안방을 파고 들기 시작했다.

엄지손가락을펼쳐든 인기 연예인의 사진에 "과연 쎄구나"라는 카피를 곁들인 광고는 세간에 유행어 하나를 탄생시키면서 서통의 "썬파워" 건전지를 일약 유명 상품으로 만들어 놓았다.

광고전과함께 대대적인 판촉활동이 병행됐다.

"암호명-로도작전"서통이 판촉활동에 붙인 작전명이었다.

이로도작전에 따라 서통은 전사원을 각자의 연고지로 보내 "썬파워" 건전지 에 대한 홍보와 함께 호남전기의 대리점들을 자사로 끌어 들이는 활동을 하도록 독려해나갔다.

서통과호남전기와의 한판 승부는 점점 더 피할 수 없는 상황을 향해 치닫기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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