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산업 발자취(6)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호남전기 탈세사건은 이듬해인 76년 이 회사의 소유주를 완전히 바꾸어 놓는 선에서 일단락됐다.

당시국세청은 호남전기에 55억원이 넘는 탈세액을 한꺼번에 추징하지 않고몇년에 걸쳐 분납토록 하는 특별조치를 취했다. 호남전기의 도산을 우려한 일종의 구제조치였다.

국세청의이같은 조치로 붕괴 일보 직전까지 몰렸던 호남전기는 일단 회생의 발판을 마련했지만 경영권 다툼의 홍역을 치르고 난후의 심씨 일가는 기업주 로서 회사를 살릴 능력을 상실하고 있었다.

이에따라 호남에 연고를 갖는 12인이 호남전기를 인수함으로써 심씨 일가가 경영해온 호남전기 1기 역사는 막을 내리고 이른바 "12인단" 체제의 2기 역사가 시작됐다.

이들12인이 호남전기를 인수하기까지는 호남을 대표하는 기업의 하나인 이 회사를 반드시 살려야 한다는 지역여론이 큰 역할을 했다.

"12인단"으로 불린 당시의 멤버중엔 전남일보의 김남중씨, 세방그룹의 이의승씨 한국합판의 고창남씨 등이 속해 있었다.

그러나12인단의 2기 경영체제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12인단에속한 인물들이 모두 각자의 사업기반을 이미 갖고 있어 호남전기의 경영에 전념할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던 데다 내부 알력이 존재했기 때문이었다. 더욱이 탈세사건의 여파가 잦아들면서 호남전기는 이제 과도기적 집단경영체 체가 아닌 책임경영체제를 필요로 하고 있었다.

이같은상황적 요구에 따라 12인단의 협의결과, 호남전기의 경영권은 78년 마침내 전남일보의 운영자였던 김남중씨에 의해 단독 인수됐다.

과도기였던2기 경영 체제가 마감되고 호남전기의 3기 경영체제가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호남전기 계열사였던 진해전지의 소유권은 세방 그룹에 넘어갔다. 진해전지는 52년 진해 해군연구소로 출발했으나 60년대에 호남전기가 불하받아 계열사로 두고 있던 자동차용 배터리 생산업체였다.

현재는세방그룹 계열사인 세방전지로 바뀐 이 회사가 호남전기 계열에서 분리될 당시만 해도 이 회사는 별다른 주목을 받진 못했다.

당시의일을 잘 알고 있는 현 세방전지 한 관계자의 회고담.

"호남전기의경영권 인수를 둘러싼 협의가 진행되는 동안 진해전지에 관심을갖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당시 국내에 자동차가 별로 없던데다 자동 차 산업이 요즘처럼 크게 발전하리란 생각을 못했던 거죠. 물론 매출액도 비교가 되질 않았구요. 그러다 보니 건전지를 생산하던 호남전기엔 너나 할 것없이 욕심을 냈지만 진해전지는 찬밥 신세였지요." 당시엔 이 회사가 얼마나 큰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지 아무도 몰랐던 것이다그런데 80년대 이후 자동차산업이 크게 발전하면서 지금은 세방전지의 매출 액이 로케트전기의 2배이상에 달할 정도로 고속성장한 것을 보면서 당시 관계자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한편진해전지를 세방으로 넘겨준후 김남중씨 단독경영체제에 들어간 호남전기는 탈세사건의 후유증에서 벗어나 건전지 전문업체로서의 위치를 확고히재정립해가고 있었다.

특히70년대말 호남전기는 전지산업 발전 역사에서 중요한 획을 긋는 신제품 을 발표했다.

KAIST와 공동연구 끝에 국내 최초로 니카드 전지를 개발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망간전지에 이어 60년대말 알카리 전지가 국내에 소개된지 10년의 세월이 흐른 뒤의 일이었다.

니카드전지의 개발은 한번 쓰고 버리는 1차전지 시대에서 재충전 사용이 가능한 2차전지 시대로의 변화를 예고하는 것이었다.

그리고휴대형 전자기기의 보급확산 등에 힘입어 이 때로부터 몇 년 지나지않아 2차전지의 본격적인 개화기가 도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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