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내찬교수의 광고로 보는 통신역사]〈66〉인터넷의 전주곡, 폐쇄형 유료 PC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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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의 하이텔, 인터넷으로 변신(1998.12) 광고(왼쪽)와 옛 데이콤의 PC통신 천리안(1998.11) 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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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내찬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

한 시절 인기를 끌었던 'PC통신'. 모뎀을 통해 전화선으로 사업자 서버에 연결해여 뉴스·음원·게임과 같은 정보를 이용할 수 있었다. 인기를 끈 것은 공통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이 정보를 공유하는 게시판, 동호회로 지금의 온라인 카페·커뮤니티의 전신이다. 채팅방에서 공통 관심사로 대화를 나누며 새로운 만남이 이뤄지는 모습은 복고 드라마의 단골 소재다.

모뎀 접속 시에는 엄청난 굉음이 울렸다. 화려한 종합포털 웹사이트와 달리 화면은 파란 배경에 하얀 글자로 구성됐다. 검색엔진이 없어 정보는 분기 형태로 찾아 들어가야 했고, 인터넷 같은 하이퍼링크를 클릭하는 기능이 없어 커서를 움직이거나 키보드 번호로 메뉴를 선택했다.

대표적인 사업자는 하이텔(KT)·천리안(옛 데이콤)·나우누리(옛 나우콤)였다. 전용 번호로 분리된 망에 접속해야 사용할 수 있는 폐쇄형 서비스였다. 초기에는 사업자별로 임의의 식별 번호를 사용하다가, 1993년 이후 전용 번호 '014XY' 체제가 마련됐다. 예컨대 하이텔은 01410, 천리안은 01420을 사용했다.

매월 PC통신 사업자에 정액제의 정보사용료를 지급했고, 한국통신에는 이용 시간만큼 요금을 내야 하는 '이용료 따로 전화 요금 따로' 내는 방식이었다. 종량제로 부과되는 전화 요금 때문에 고지서에 놀란 부모님에게 꾸중을 듣기도 했고, 서비스 이용 중에는 전화 통화가 안 돼 또 한 번 쓴소리를 듣기도 했다.

워낙 속도가 느리다 보니 자료는 갈무리 즉, 한꺼번에 내려받아 PC에서 읽곤 했다. 지금도 사용하는 '방가방가' '··' 'ㅠ'와 같은 축약어는 통신 시간·비용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노력한 당시의 유산이다.

한 때 하이텔은 다운로드 기능이 없는 전용 단말기를 무상으로 보급하기도 했다. 1990년 시분제 도입으로 전화 요금이 인상되면서 PC통신 이용자의 불만이 고조되자, 정부는 데이터통신 활성화 차원에서 요금을 감면해 줬다. 부모님의 꾸중이 사라진 것은 1999년 말 전화·인터넷을 동시에 사용할 수 있는 초고속인터넷이 등장하면서였다.

PC통신이 사양길에 접어들게 된 것은 인터넷의 등장 때문이다. 국내에서는 1994년 상용 인터넷이 시작되자 아이네트(현 나우콤)를 최초로, 한국인터넷이란 의미의 코넷(KORNET·KT), 보라넷(옛 데이콤)과 같이 일반인에게 인터넷 접속을 제공하는 인터넷서비스사업자(ISP)가 등장했다.

개방형 온라인 환경에서 등장한 다음·야후·라이코스와 같은 종합포털은 광고주가 비용을 부담하는 대신 이용자에게는 무료로 서비스를 제공했다. PC통신 사업자도 '월드와이드웹(www)' 기반으로 전환하는 변신 노력을 기울이면서 기존 서비스를 차별화하려고 노력을 기울였지만, 구시대의 유료 모델은 인터넷의 플랫폼 수익모델의 장벽을 넘지 못했다.

서비스 종료가 잇따랐고 마침내 2017년 KT가 전용 번호를 반납하면서 PC통신 시대는 완전히 막을 내렸다. 돌이켜보건대 인터넷 정보화 시대인 지금은 당연시되는 정보기술(IT)의 혜택을 한발 앞서 체험할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다.

이내찬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 nclee@hansu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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