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공 분야에 인공지능(AI)이 확산되면서 사업을 발주하고 시스템을 운영하는 기존 역량만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발주·운영이라는 기존 역할에 AI를 이해하고 직접 기획·개발할 수 있는 핵심 역량을 더한 '하이브리드형 조직'으로 진화해야 합니다.”
지난 5월 취임한 손경자 공공부문발주자협의회장은 AI 전환 시대 공공기관 전산조직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이렇게 압축했다.
이 같은 진단은 그가 현장에서 몸소 부딪히며 쌓아온 경험에서 나왔다. 농림축산식품부 전산직으로 입문해 30년간 정보화 현장을 지켜온 그는 최근 3년간 차세대 농업농촌통합정보시스템(농업e지) 구축을 총괄하며 담당과장으로서 발주부터 오픈, 운영까지 전 과정을 직접 책임졌다. 이 과정에서 95개 기관과 878종의 데이터를 연계하며 기관별 이해관계와 일정 차질을 조율하고, 현장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풀어 계획된 일정대로 시스템을 개통했다. 발주와 구축에 그치지 않고 개통 이후 운영까지 전 과정을 책임지며 복잡한 공공 정보화 사업을 조정하고 완수했다.
이런 노력은 농식품부의 정보화 역량을 한 단계 높이는 성과로 이어졌고, '2026년 국가대표브랜드'로도 인정받았다. 대규모 차세대시스템을 안정적으로 개통·운영한 경험을 바탕으로, 그는 임기 동안 반복되는 발주자의 애로사항을 개인의 경험담에 그치지 않고 협의회 차원의 제도 개선 과제로 발전시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가 하이브리드 조직을 제안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지금까지 공공기관 전산조직은 외부에 사업을 발주하고 구축된 시스템을 운영하는 역할을 주로 맡아왔다. 하지만 AI는 데이터에 대한 이해와 모델 학습, 현장 피드백 반영이 성능과 활용도를 좌우하는 만큼 기존의 발주·납품 방식만으로는 빠른 기술 변화와 현장의 요구에 충분히 대응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손 회장은 “대형 시스템 구축이나 인프라 운영처럼 외부 전문성이 필요한 영역은 지금처럼 민간의 전문성을 적극 활용하되, 기관의 업무 데이터와 도메인 지식이 핵심인 AI 분야는 기관이 모델의 기획과 핵심 기능 설계·개발을 주도할 수 있어야 한다”며 “이를 위해 기관별 여건에 맞게 AI 전담 기능을 강화하고, 우선순위가 높은 업무 영역부터 파일럿을 구축한 뒤 성공 사례를 바탕으로 단계적으로 확산시키는 방식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손 회장은 발주-구축-오픈-운영으로 이어지는 각 공공사업 단계별 현안 해결을 주요 과제로 꼽았다. 자신이 현장에서 직접 어려움을 겪어 본 만큼 대안도 제시했다.
먼저 발주단계에서는 기능점수(FP) 방식의 한계를 지적했다. 손 회장은 “제안요청서 시점에 향후 발생할 요구사항 변화를 모두 예측해 담아내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FP 방식은 명시된 기능을 중심으로 사업 규모와 예산을 산정하다 보니 구축 과정에서 구체화되는 요구사항을 충분히 반영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로 인해 구축사와의 협의가 길어지고, 일정이 촉박해지면서 품질이 부실해지거나 소송으로 번지는 일이 반복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사업의 특성과 불확실성을 고려해 기능점수 방식과 투입인력(M/M) 방식 등을 탄력적으로 적용하고, 구축 과정에서 발생하는 요구사항 변화를 합리적으로 반영할 수 있는 계약·예산 구조를 검토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구축단계에서는 기관 간 지연의 연계가 현안이라고 봤다. 법적 근거가 있어도 기관별 일정이나 업무 여건 등의 차이로 연계 협의가 지연되는 경우가 있고, 이로 인해 테스트 일정이 늦어지면 시스템 개통 이후 안정적인 운영에도 부담이 될 수 있다고 상황을 전했다. 범부처 차원에서 기관 간 연계를 조정·지원할 수 있는 체계 수립이 시급하다는 설명이다.
오픈단계에서는 검증이 단순 기능테스트 수준에 머물지 않고 실제 업무 환경을 충분히 반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 업무를 잘 아는 발주기관이 사용자테스트를 주도하고, 감리업체는 전문가 관점에서 다양한 시나리오를 통해 시스템을 검증하는 등 검증의 실효성과 책임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역할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감리 대가의 현실화와 함께 감리업체가 전문성을 바탕으로 독립적인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운영단계에서는 시스템 사용 현황과 성과가 다음 해 예산 편성에 충분히 반영될 수 있는 체계를 강조했다. 손 회장은 “유지보수 예산이 단순 기능 유지에 그치지 않고 AI 등 빠른 기술 변화와 새로운 행정 수요에 대응할 수 있도록 기능개선과 고도화를 위한 재원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짚었다.
이 모든 단계를 관통하는 과제로 정보화 사업에 대한 예산심의의 전문성 강화를 꼽았다. 손 회장은 “AI와 대규모 정보화 사업은 기술적 복잡성이 높은 만큼 사업의 규모와 시급성, 기술적 특성을 충분히 이해하고 판단할 수 있는 전문성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대외 활동 계획과 관련해서는 AI 전환을 포함한 공공부문 정보화 사업을 범정부 차원에서 총괄할 수 있는 컨트롤타워를 지정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협의회도 현장의 목소리를 모아 정책 건의로 구체화하고 관계기관과 정례적으로 협의할 수 있는 채널을 만드는 한편, 한국IT서비스산업협회와 협력해 발주 방식과 감리 운영 개선, AI 특화 발주 가이드라인 마련 등을 함께 논의해 나갈 계획이다.
손 회장은 “정보시스템은 결국 사람이 만들고 사람이 쓴다”며 “발주기관은 구축사가 관리·감독의 관계를 넘어 사용자에게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공동의 목표를 가진 파트너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호 기자 snoop@et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