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칠레에서 임신중단을 앞둔 여성에게 태아의 심장박동을 직접 듣도록 하는 내용을 담은 법안이 제출되면서 찬반 논쟁이 거세지고 있다.
9일(현지시간) 아르헨티나 매체 채널26은 칠레 의회에서 추진 중인 이른바 '심장 소리를 들어라(Escucha su corazon)' 법안을 둘러싸고 정치권과 시민사회가 충돌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번 제안에는 강경 보수 성향으로 알려진 크리스토발 우루티코에체아 의원을 포함해 국민자유당(PNL), 공화당, 국가쇄신당(RN) 소속 의원 6명이 참여했다. 이들은 지난 6월 25일 해당 법안을 의회에 제출했다.
핵심 내용은 칠레 보건법 119조를 손질해 임신중단 시술에 들어가기 전 의료진이 배아 또는 태아에서 심장 활동이 확인되는지를 설명하고, 당사자가 그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도록 하는 것이다.
여성이 청취를 원하지 않을 경우 거절할 수 있다는 조항도 포함됐다. 그러나 청취를 거부하면 의료진이 임신중단을 진행할 수 없도록 규정해 사실상 시술을 받기 위한 필수 절차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이 논란을 키우고 있다.
칠레의 임신중단 제도는 2017년 법 개정 이후 제한적인 상황에서만 허용되고 있다. 산모의 생명이 위태로운 경우, 태아에게 치명적인 질환이 있는 경우, 성폭력으로 임신한 경우 등 세 가지 사유가 기존 허용 범위였다.
법안 발의 당시에는 세 조건 모두를 대상으로 삼으려 했지만 이후 산모의 생명에 직접적인 위험이 발생한 경우는 적용 대상에서 빠졌다. 현재는 태아가 자궁 밖에서 생존하기 어려운 경우와 강간으로 인한 임신 등이 주요 대상이다.
법안을 둘러싼 갈등은 지난 7월부터 수면 위로 떠올랐다. 여성 인권단체와 진보 성향 정치권은 임신중단을 선택한 여성에게 태아의 심장 소리를 듣게 하는 것은 심리적인 부담을 가중하고 자기결정권을 침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법안을 추진하는 측은 다른 입장이다. 태아의 상태에 관한 정보를 충분히 전달한 뒤 여성이 임신중단 여부를 다시 숙고할 수 있도록 선택지를 제공하는 것이 목적이라는 설명이다.
칠레 정부는 아직 이 법안에 대한 명확한 찬성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마이 초말리 보건부 장관은 지난 3일 태아의 심장 활동을 듣는 행위가 실제로 임신중단 결정을 번복하게 만든다는 과학적 근거는 확인되지 않았다고 밝혀 사실상 부정적인 견해를 나타냈다.
호세 안토니오 카스트 대통령이 치안 강화와 경제 활성화를 우선 과제로 추진하면서 낙태 등 사회·문화적 쟁점에는 비교적 거리를 두는 상황에서 이번 법안은 여권 내부의 입장 차이까지 드러내고 있다.
실제로 법안에 이름을 올렸던 국가쇄신당 소속 시메나 오산돈 의원은 내용을 충분히 살펴보지 않고 동의했다며 지난 7월 지지를 거둬들였다.
현재 법안은 칠레 하원 보건위원회에서 초기 심사 절차가 진행 중이며 아직 본격적인 표결에는 들어가지 않았다. 우파 성향 의원들이 의회에서 우세한 의석을 확보하고 있지만 실제 법제화 여부는 아직 예측하기 어렵다.
이번 사안을 계기로 카스트 정부 출범 이후 잠잠했던 낙태 관련 보수·진보 간 대립이 다시 부각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향후 칠레의 임신중단 제도가 어떤 방향으로 바뀔지를 둘러싼 논의도 한층 치열해질 전망이다.
이원지 기자 news21g@et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