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시론]기업 성장의 러닝크루와 페이스메이커, 공공조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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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보 조달청장

요즘 아침저녁의 하천 변이나 공원은 달리기 하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형형색색의 러닝화를 신고 스마트워치로 페이스, 케이던스, 심박수 등을 점검하면서 달리는 모습은 일상이 됐다. 과거에는 일부 중장년이 마라톤을 즐겼다면 지금은 남녀노소 누구나 러닝을 즐긴다. 이제 러닝은 단순히 건강관리 수단이나 취미가 아니라 현재의 라이프스타일, 문화 등을 상징하는 메가트렌드라고 할 수 있다.

필자도 이러한 러닝 열풍에 동참하고 있다. 일주일에 3번, 한 번에 7~10㎞ 정도 달리려고 노력하고 있다. 달리다 보면 느끼는 것이 몇 가지 있다. 첫째는 달리는 거리가 길던 짧던 기록 단축을 위해서는 거리에 맞는 스피드와 지구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달릴 거리와 체력을 고려하지 않고 초반에 무리하게 달리게 되면 완주가 어렵고, 너무 체력 안배를 하게 되면 자신의 능력에 훨씬 미치는 못하는 기록을 마주하게 된다. 다음은 다른 사람과 함께 달릴 때가 혼자 달릴 때보다 덜 힘들고, 자신보다 빨리 달리는 사람이 이끌어줄 때 좋은 기록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러닝크루와 함께 달리면 훨씬 덜 힘들다고 느끼는 것과 마라톤 대회에 페이스메이커가 있는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기업의 생존과 성장 과정도 달리기와 비슷한 것 같다. 단기적으로 폭발적인 매출이 있다고 해서 장기적으로 반드시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폭발적인 성장을 계속해서 유지할 수 있으면 가장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차근차근 기초를 다지고, 멈추지 않고 꾸준하게 성장할 때 장기적으로는 승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 또 같이 경쟁하는 기업이 있거나 옆에서 도와주는 이들이 있다면 성공 가능성이 클 것이다.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끊임없이 혁신해야 하고, 부족한 부분을 적절하게 보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업 경영에 있어 공공조달의 역할을 러닝과 비교해서 생각해 보면 러닝 트랙, 러닝 크루, 페이스메이커가 되는 것이 아닌가 한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창의적인 생각과 열정, 과감한 투자로 새로운 기술과 제품을 개발한 중소.벤처.창업기업들에 가장 필요한 것은 초기 판로다. 기술과 제품 개발에 성공해도 초기 판로를 확보하지 못하면 이른바 '죽음의 계곡'을 건너기 어렵다. 이제 사업을 시작한 기업들이 제대로 뛸 수 있도록 초기 판로를 제공하는 것이 바로 공공조달의 첫 번째 역할이다. 러닝을 갓 시작한 '런린이'에게 알아서 '산 넘고 물 건너' 달리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넘어지지 않고 잘 달릴 수 있도록 러닝 트랙을 깔아주는 것이다. 정부가 첫 구매자가 되어 새로운 기술과 제품을 개발한 중소·벤처·창업기업들에 초기 판로를 제공하고, 이들 기업들과 위험을 나누는 '혁신조달'이 러닝 트랙을 깔아주는 대표적인 정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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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유럽연합(EU)은 우리나라를 혁신조달의 모범사례로 평가한 바 있다. 우리나라가 공공조달을 기술혁신 및 신산업 육성을 위한 정책수단으로 적극 활용하고 있으며, 혁신제품 지정 및 구매목표제를 통해 혁신제품 공공구매를 촉진하고, 초기시장 창출을 효과적으로 지원하고 있다는 평가다. 조달청은 인공지능(AI)·로봇·바이오·기후테크 등 전략산업 분야의 혁신제품을 적극 발굴하고, 시범구매를 지속적으로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특히 AI 산업과 관련해서는 혁신조달과 함께 AI 제품과 서비스가 공공조달시장에 좀 더 쉽게 그리고 많이 진출할 수 있도록 지원할 것이다. 반도체, 피지컬 AI, 데이터센터 중심의 '3대 메가 프로젝트' 등 국가적 투자가 본격화되는 것과 발을 맞춰 피지컬 AI와 생성형 AI 서비스 공공조달을 활성화하고, 실적요건 폐지, 입찰심사 가점, 패스트트랙 계약 등 AI 기업의 공공조달시장 진입과 판로 확보를 위한 지원을 강화할 것이다.

해외조달시장 진출과 비수도권 기업이나 사회연대경제 조직의 성장을 지원하는 정책은 공공조달이 러닝크루, 페이스메이커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약 2조달러에 달하는 해외조달시장은 우리 기업들에게는 기회의 장이자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할 목표다. 지난해 유엔의 식량조달시장 첫 진출과 함께 우리나라 기업의 유엔 진출실적이 3억4600만달러로 최고치를 기록하는 등 의미 있는 성과가 있었다. 기업들과의 소통과 유관기관 간 협력을 기반으로 혁신제품 해외실증 확대, 공공조달 수출상담회 개최, 해외조달시장 전문인력 양성 등 다양한 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역량 있는 우리 기업이 국내시장에 머무르지 않고, 해외조달시장에 진출해서 성과를 거두고 글로벌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할 것이다.

전체 조달기업의 50%가 수도권에 집중돼 있고, 이들이 비수도권의 사업까지 수주하는 상황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또 사회적 기업, 사회적 협동조합과 같은 사회연대경제 기업이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다. 전국에 걸쳐 다양한 기업이 존재하고 이들이 각자의 역할을 할 수 있어야 경제 전반의 경쟁력도 높아진다. 조달청은 입찰 가점과 우선구매와 같은 제도적 장치를 통해 비수도권 기업, 사회연대경제 기업이 성장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할 것이다.

러닝 트랙, 러닝 크루, 코치, 페이스메이커의 역할에 하나를 덧붙이자면 공정한 심판으로서의 역할이다. 공공조달시장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이자 기업이 성장하는데 촉매가 되는 것이 바로 경쟁이고, 경쟁의 핵심은 공정성이다. 허위 서류, 직접생산 의무나 원산지 위반, 계약이행 능력 없는 자의 묻지마 입찰 등과 같은 공공조달시장의 불공정행위는 육상경기에 있어 신호 전 출발, 도핑, 정해진 주로를 지키지 않거나 다른 주자를 방해하는 반칙에 해당한다. 조달청은 불공정행위 조사, 등록기준 실지조사, 입찰보증금 부과 등의 제도를 활용해서 공공조달시장에 건전한 경쟁을 저해하는 행위가 발붙이지 못하게 할 것이다.

향후 공공조달정책의 방향은 한마디로 경제의 대도약과 대체불가 대한민국을 실현할 주역인 우리 기업들의 지속적인 성장을 뒷받침하는 것이다. 조달청은 우리 기업들이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해서 달릴 수 있도록 좋은 트랙을 제공하고 함께 달리면서 응원하며, 때로는 앞바람을 막고 달리는 속도를 높일 수 있도록 이끄는 역할을 제대로 하는지 지켜봐 주시기를 부탁드린다.

백승보 조달청장 baeksb71@korea.kr

〈필자〉 부산 출신으로 브니엘고와 고려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1996년 행정고시 39회로 조달청에서 공직에 입문한 뒤 29년간 구매사업국장과 공공물자국장, 조달관리국장, 시설사업국장, 기술서비스국장 등을 역임했다. 주요 조달분야에서 임무를 수행하면서 공공조달분야 전문가로 불린다. 정책 기획력도 뛰어나고 조직 내 신망이 두터워 2019년과 2020년 2년 연속 직원이 뽑은 '베스트리더'에 선정됐다. 지난해 8월 조달청장으로 취임해 혁신조달을 활용한 인공지능(AI), 로봇 등 신산업 육성을 목표로 정책을 이끌고 있다.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조달개혁에도 앞장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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