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이더맨: 브랜드 뉴 데이', 다섯 해를 건너 어른이 된 피터 파커

(*본 리뷰는 '스파이더맨: 브랜드 뉴 데이'의 스포일러를 포함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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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스파이더맨: 브랜드 뉴 데이' 스틸. 사진=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모두에게 잊힌 피터 파커가 돌아왔다. 그러나 5년 만에 다시 만난 그는 더 이상 누군가의 도움을 기다리던 소년이 아니다. 자신의 존재를 기억하는 이 하나 없는 세상에서 홀로 삶을 꾸려가야 하는 청년이자, 이제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의 중심을 짊어져야 할 히어로가 됐다.

29일 개봉한 '스파이더맨: 브랜드 뉴 데이'는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 이후 모두의 기억에서 사라진 피터 파커가 자신의 정체를 알고 있는 의문의 적과 맞닥뜨리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DNA 변이로 힘을 통제하기 어려워진 피터는 외부의 위협뿐 아니라 자신 안에서 일어나는 변화와도 싸워야 한다.

영화는 초반부터 여러 사건을 빠르게 쏟아낸다. 새로운 인물과 위협이 잇달아 등장하고, 피터의 변화와 주변 상황도 압축적으로 전개된다. 관객에 따라서는 지나치게 숨 가쁘거나 산만하다고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다만 이는 '노 웨이 홈' 이후 5년이라는 현실의 시간을 지나 다시 출발해야 하는 시리즈가 택할 수 있는 합리적인 판단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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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스파이더맨: 브랜드 뉴 데이' 스틸. 사진=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2017년 '스파이더맨: 홈커밍'에서 고등학생 히어로로 처음 등장했던 톰 홀랜드의 피터 파커는 더 이상 어린 소년에 머물 수 없다. 배우와 관객 모두가 나이를 먹은 만큼, 시리즈 역시 시간의 흐름을 인정해야 한다. '브랜드 뉴 데이'는 긴 공백을 설명하는 데 시간을 소비하기보다 그사이 축적된 사건과 감정을 초반부에 집약하고, 성인이 된 피터의 다음 단계로 빠르게 넘어간다.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전개지만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속도감이 작품의 새로운 출발과 잘 어울렸다.

액션은 이번 작품의 가장 분명한 강점이다. 뉴욕의 고층 건물을 오가는 특유의 웹 스윙은 기존보다 무게감을 더하면서도, 좁은 공간과 대규모 도심을 넘나드는 특유의 공간 활용이 훌륭하다. 장면마다 속도와 무게가 다르게 설계됐다. 특히 인물의 움직임에 맞춰 공간을 전환하고 화면의 방향을 뒤집는 연출이 탁월하다. 액션과 화면 전환이 하나의 리듬으로 이어지며, 관객이 피터와 함께 도시 사이를 내달리는 듯한 감각을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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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스파이더맨: 브랜드 뉴 데이' 스틸. 사진=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다수의 빌런과 MCU 캐릭터를 활용하는 방식도 안정적이다. 영화는 오랜 마블 팬이라면 반가워할 요소들을 곳곳에 배치하지만, 이를 알아야만 전체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지는 않는다. 팬 서비스를 위해 본편의 흐름을 멈추거나 다른 작품의 설정을 장황하게 설명하는 대신, 현재 피터가 겪는 위기와 선택 안에 기존 세계관을 자연스럽게 끌어들인다. 스크린에서만 MCU를 만나는 팬이라면 알 수 없는 캐릭터(퍼니셔·프랭크)도 있으나 영화 전반에 자연스럽게 녹아있다.

이번 작품은 어벤져스의 중심축이 됐던 아이언맨과 캡틴 아메리카의 빈 자리를 스파이더맨이 채우는 대신, 스파이더맨을 중심으로 MCU 다음 장의 포문을 연다. 과거의 피터가 아이언맨과 어벤져스의 세계에 합류하는 신입 히어로였다면, 이제는 다른 인물과 사건들이 그의 이야기 안으로 모여든다. MCU를 활용하면서도 스파이더맨의 서사가 중심을 잃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가 앞으로 세계관의 핵심적인 역할을 맡게 되리라는 인상을 준다.

메인 빌런 역시 이번 영화의 주제와 잘 맞물린다. 피터의 정체를 기억하는 존재이자 몸과 정신, 감각의 경계를 뒤흔드는 적은 모든 관계를 잃고 자신의 정체성마저 흔들리는 피터의 혼란을 외부로 드러낸 인물처럼 기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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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스파이더맨: 브랜드 뉴 데이' 스틸. 사진=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무엇보다 가슴을 건드리는 것은 여전히 계속되는 '피터의 불운'이다. 이른바 '파커 럭'이라 불리는 그의 지독한 불운은 이번에도 피터가 무언가를 얻는 순간 또 다른 것을 빼앗아간다. 그는 세상을 구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했지만, 그 희생에 대한 보상은커녕 자신이 지킨 이들의 기억에서도 사라졌다. 그럼에도 다시 마스크를 쓰고 타인을 구하러 나서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눈물이 날 수밖에 없다.

'브랜드 뉴 데이'라는 제목은 새로운 능력이나 새로운 적의 등장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과거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자신을 기억해 주는 사람이 없는 세상에서도 다시 하루를 시작하는 피터의 선택을 가리킨다. 이번 영화가 그리는 성장은 더 강한 영웅이 되는 과정이 아니라, 상실을 안은 채 자신의 삶을 책임지는 어른이 되는 과정에 가깝다.

'스파이더맨: 브랜드 뉴 데이'는 많은 사건과 인물을 한꺼번에 품으면서도 피터 파커라는 중심을 놓치지 않는다. 숨 가쁜 초반부는 관객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수 있지만, 5년이라는 공백과 배우의 성장을 이야기 안에 반영하기 위한 선택으로서는 설득력이 있다. 여기에 폭발적인 액션과 유려한 화면 전환, 절제된 MCU 활용이 더해지며 시리즈의 새로운 장을 힘 있게 열어젖힌다.

영화 '스파이더맨: 브랜드 뉴 데이'는 29일 개봉했다. 러닝타임 144분. 관람등급 12세 이상. 쿠키 영상 1개.


서희원 기자 shw@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