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6년 제프리 힌턴은 인공지능(AI)이 영상 전문의 영역을 빠르게 대체할 것이기 때문에 영상 전문의 양성 교육을 멈춰야 한다는 파격적인 주장을 했다. 힌턴은 현대 딥러닝의 창시자로 인정받고 있을 뿐 아니라 2018년에 튜링상, 2024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AI 분야에서 자타가 공인하는 거두다.
사실 얼핏 보면 영상의학은 AI가 대체하기 가장 쉬운 분야처럼 보인다. 기초자료는 디지털 영상이고 업무는 패턴 인식이기 때문이다. 이후 영상의학 분야에 대한 AI 진격은 괄목하게 진행됐다. 전문의보다 더 정확성을 보여준 2017년 출시된, 10만장 이상의 흉부 X선 이미지를 학습한 판독 AI 모델 CheXNet은 시작에 불과했다.
최근에는 병원의 거의 모든 전자의무기록(EHR) 시스템 내에서 자율적으로 환자 데이터를 조회하고 안전 제약 조건하에 검사 처방, 투약 등의 임상 작업을 수행할 수 있는 자율형 의료 AI 에이전트인 MIRA가 전문의를 능가하는 실력을 과시하고 있다. 2025년 말 기준으로 FDA의 승인을 받은 의료 AI 모델 중 영상의학 관련 모델이 1000개로, 전체 의료 AI 모델의 약 4분의 3 이상을 차지할 정도다.
자, 그러면 힌턴의 전망은 실현되고 있는가? 흥미롭게도 현실은 정반대로 흐르고 있다. 2025년 미국 영상의학 분야는 역대 최대인 전문의 양성 프로그램(레지던시)이 진행되고 있고, 이는 2024년보다도 4% 증가한 수치다. 이처럼 공급이 늘고 있음에도 영상의학과 전문의 공백률은 사상 최고 수준으로, 없어서 못 뽑고 있는 실정이다.
상황이 이러다 보니 영상의학과 전문의 임금 수준이 치솟을 수밖에 없다. 2025년 영상의학과 전문의의 평균 소득은 52만달러로 전체 의료 분야에서 두 번째로 높고, 이는 2015년보다 48% 이상 급등한 상황이다.
19세기 영국 경제학자 제번스가 관찰했던 증기기관의 효율 향상이 오히려 석탄 소비량 폭증으로 이어진, 이른바 제번스 역설이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왜 AI 모델이 영상의학 분야에 광범위하게 접목되고 있음에도, 영상의학 전문의는 오히려 늘어나고 있을까?
첫째는 AI 모델이 잘 정리된 데이터가 뒷받침된 표준화된 환경에서 인간보다 우월해도, 현실의 병원 속에서는 성능이 크게 떨어진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병원은 영상 품질, 장비 차이, 환자군 차이, 촬영 방식 차이, 질병 표현의 미묘한 차이가 있고, 이로 인해 AI가 제 성능을 발휘하기 어렵다. AI가 학습한 데이터는 상대적으로 어린이, 여성, 소수인종 사례가 부족할 수밖에 없고, 이로 인해 이들이 가진 특질이 무시될 편향 위험마저 존재한다.
한 병원에서 검증된 AI 모델이라도 다른 병원에서는 적용이 불가능한 경우도 다수다. 무엇보다 현재의 AI 모델은 각각의 특정 질문에 대한 분리된 답변을 하고 있어, 영상을 보고 통합적인 소견을 내는 의사에 비해 경쟁력이 떨어진다. AI가 환자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을 내기 위해서는 많은 독립적 AI 모델을 왔다갔다 해야 한다.
이로 인해 FDA 승인 AI 모델을 보더라도 판단이 용이한 유방암, 폐암 등 일부분에 집중돼 있고, 혈관 및 갑상선 등 종합적인 판단이 요구되는 분야는 거의 없다.
결국 임상은 영상 속의 픽셀 패턴을 읽는 것처럼 단순하지 않고, 환자의 근무환경, 식생활 및 과거 병력 등 환자에 대한 암묵지가 종합적으로 어우러진 과학을 넘은 예술의 경지라고 할 수 있다.
둘째는 완전 자율 AI가 있더라도 규제와 보험 장벽이 존재하기 때문에 전문의를 대체하기 어려운 현실적 이유 때문이다.
의료 AI를 단순 보조 도구로 쓰는 것과 의사 없이 독립적으로 진료를 보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다. 현실 세계에서의 운용은 단지 AI가 똑똑하다든지 기술적으로 검증된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즉 완전 자율 진단을 허용하려면 기술 성능뿐 아니라 실패 감지 능력, 결과를 끝까지 책임질 수 있는 책임 구조, 품질 통제 체계가 함께 필요하다. 이로 인해 전문의를 대체할 수 있는 자율 진단 AI 모델의 경우 FDA 승인 기준이 훨씬 높고, 보험사들도 자율 진단 AI가 야기한 의료 과실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병원으로서는 자율 진단 AI의 오진으로 인한 손해배상에 그대로 노출되기 때문에 전면 도입이 어려운 것이다. 설령 AI 모델이 보조 역할에 머무른다고 하더라도, 그 효과가 다른 의사가 한 번 더 영상을 보는 것보다 암 발견율이 떨어진다는 연구 결과를 볼 때 아직 독립적 진료는 물론 보조적 진료에서도 인간 전문의를 능가하지는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셋째는 영상의학과 전문의의 일이 단순히 영상 판독에 국한하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 영상의학과 의사는 영상을 읽는 것 외에도 검사를 감독하고, 임상의와 소통하고, 환자에게 설명하는 등 다양한 업무를 수행한다. 이로 인해 AI로 판독 시간이 절감된다고 하더라도 다른 업무에 더 많은 시간을 쓰게 될지언정 의사가 대체되지는 않는다.
힌턴 역시 2025년 5월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글에서 자신의 전망이 지나치게 영상 분석에 국한한 실수에 기인했음을 인정한 바 있다. 과거 ATM이 텔러 업무를 자동화했지만 텔러 직업이 사라지지 않은 것과 같은 이치다. 무엇보다 AI로 인해 영상 판독이 싸지고 빨라지면서 영상의학의 적용 범위가 과거보다 크게 확대되고 있는 것도 영상 전문의의 수요를 늘리는 배경이 되고 있다.
경제적으로 직업, 즉 일자리는 여러 '작업(Task)'의 집합체다. AI가 특정 작업을 자동화할 때 일자리와 임금에 미치는 영향은 한 일자리에 포함된 작업의 개수인 작업의 차원수(Dimensionality)와 AI 도입으로 생산성이 올라가 제품 가격이 내려갔을 때, 소비자가 그 제품을 얼마나 더 많이 구매하는가를 측정하는 소비자 수요의 탄력성에 달려 있다.
작업의 숫자가 적은, 즉 저차원 일자리일수록 자동화하기 위한 유인이 크다. 이를 적용하면 영상의학과 의사의 경우 작업의 차원수가 고차원일 뿐 아니라 탄력적 수요로 인해 제번스의 역설이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대부분의 지식노동은 영상 전문의처럼 업무 범위는 물론 수행 방식이 다양하고, 위험이 크며, 수요가 탄력적이다.
이런 조건에서는 AI가 적어도 초기에는 인간 노동을 줄이기보다는 오히려 늘릴 가능성이 높다. AI가 생산성을 높이면 인간 전문의는 더 많은 일이 가능해지고, 더 많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으며, 더 높은 수준의 판단·책임·조정 업무를 수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현실만 보더라도 대형 병원의 경우 과거에 비해 훨씬 많은 의료 보조기기들이 의사의 업무 부담을 덜어주고 있지만, 여전히 의사가 환자를 상담하는 시간은 5분을 넘지 않는다.
CJ그룹 경영총괄을 역임했던 임경묵 박사는 힌턴의 전망이 어긋난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작업은 자동화됐는데 직업은 강해졌다. 세 가지가 함께 작동한 결과다. 직업은 작업의 묶음이라 한 작업의 자동화가 직업을 무너뜨리지 못했고, 효율은 수요를 줄이는 대신 키웠고, 책임은 사람에게 남았다. 그래서 영상의학과가 보여준 것은 AI의 한계가 아니다. 직업의 구조다. 답은 힌턴이 AI를 과대평가해서가 아니다. 직업을 과소평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 AI 기술을 과거 자동화 과정과 단순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무엇보다 AI는 에이전틱 AI를 통해 자동화를 넘어 자율화 단계로 진전되고 있다. 자동화는 자율화와 차원이 다르다. 단기적으로는 AI 도입에도 불구하고 직업 수요의 증가가 있을 수 있지만, 결국에는 인간의 일자리를 대체하는 방향으로 진전될 것이다.
암묵지와 책임이 인간을 AI의 공세로부터 영원히 지켜준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오히려 현재 인간을 직업 공간에서 지키고 있는 암묵지가 만든 경계선은 AI가 진전되면서 점차 사라질 것이다.
2026년 5월 미국 애리조나대 졸업식에 축사 연사로 나선 에릭 슈미트 전 구글 최고경영자가 최근의 AI 혁명을 1982년 타임지 올해의 인물로 선정된 컴퓨터에 비유해 “여러분이 어떤 길을 선택하든, AI는 업무 방식의 일부가 될 것”이라고 말하자 졸업생들의 야유가 터져 나왔고, 그의 연설 내내 AI를 언급할 때마다 야유가 이어지는 보기 드문 장면이 연출된 적이 있다.
결국 슈미트는 “AI에 대해 느끼는 그 두려움을 이해한다”고 한발 물러서야 했다. 이미 대학 졸업생을 중심으로 한 신규 채용 일자리가 확 줄어든 것은 먼 미래가 아닌 현실이 되고 있다. AI가 일자리를 위협하고 있다는 현실을 인정하고, 업스킬(Upskill) 및 리스킬(Reskill)을 넘어 새로운 사회안전망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시급하다고 하겠다.

유재수 싱귤래리티 금융 소사이어티(SFS) 간사 yoojs64@g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