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 기업은 데이터 뺏기고 충성도에도 위협
“에이전틱 커머스로 진화할 것인가” vs “특화 AI로 승부를 걸 것인가”

소비자가 검색창 대신 인공지능(AI)에 상품을 묻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 AI가 상품 탐색과 추천을 넘어 구매까지 대신하는 '에이전틱 커머스'가 확산하면서 유통업계는 새로운 도전에 직면했다. 플랫폼을 거치지 않고 AI가 소비자와 브랜드를 직접 연결하는 이른바 '플랫폼 패싱'이 현실화되면서 유통업계 생존 문법이 바뀌고 있다. 플랫폼업계는 주도권 쟁탈전에서 한 발 앞서기 위한 생태계 선점 경쟁에 나섰다.
◇AI, 추천 넘어 '구매 대행'으로…'플랫폼 패싱' 현실화
AI가 소비자와 브랜드 사이에서 유통 플랫폼을 건너뛰는 '플랫폼 패싱'은 이미 현실이 됐다. 챗GPT·퍼플렉시티 같은 AI는 여러 쇼핑몰을 돌며 상품을 비교하고 추천한다. 아마존은 자사 AI가 다른 브랜드 사이트에서 상품을 대신 구매해 주는 '바이 포 미' 기능까지 내놨다. 소비자가 플랫폼에 들어가 직접 검색하지 않아도 AI가 거래를 완성하는 구조다.
변화는 수치로도 확인된다. 베인앤컴퍼니에 따르면 일부 유통사는 전체 추천 유입의 최대 4분의 1이 AI를 통해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소비자 약 30%는 이미 상품 비교·추천에 생성형 AI를 쓰고 있다. 모건스탠리는 2030년 미국 이커머스 거래의 10~20%를 AI 에이전트가 차지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런 쇼핑 에이전트는 크게 △제3자 AI(챗GPT·제미나이·퍼플렉시티 등) △유통사 자체 AI △외부 구매 대행형 AI(아마존 바이 포 미 등) 세 가지로 나뉜다. 이 가운데 제3자 AI가 기존 유통사와 소비자 관계를 가장 크게 위협하는 존재로 꼽힌다.
플랫폼 패싱 현상은 유통사에게 새로운 도전 과제를 안긴다. 자사 플랫폼으로의 고객 유입이 감소하면서 고객 데이터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이에 따라 회사 브랜드 충성도까지도 위협받기 때문다. 기존 검색광고·리테일미디어 등 수익구조는 약화하는 가운데 가격 경쟁은 심화하는 상황에 놓였다.
이경전 경희대학교 경영대학 교수는 “하나의 AI 에이전트에 여러 가지를 다 시킬 가능성이 커지면서 버티컬의 의미가 점점 흐려지고 있다”면서 “지난 10∼15년 동안 고객 접점을 장악했던 버티컬 기업들이 가장 고민해야 할 부분”라고 말했다.

◇플랫폼 주도권 쟁탈전…자체 생태계 경쟁
플랫폼 업계는 에이전틱 커머스 주도권을 확보하려는 노력이 치열하다. 패싱 당하는 플랫폼이 아니라 생태계를 흡수하는 에이전틱 커머스의 위치에 오르려는 전략이다. 자체 생태계를 통해 기존 커머스 체계를 위협하는 챗GPT·제미나이·퍼플렉시티와 맞붙는다.
국내에서는 네이버와 카카오가 AI 쇼핑 플랫폼 경쟁의 새 판을 짜고 있다. 두 회사 모두 강력한 트래픽을 가진 기존 플랫폼 위에 AI 생태계를 얹는다는 공통점이 있다. 다만 네이버는 자사 서비스 간 결합으로 상품 탐색부터 구매까지 직접 연결하고, 카카오는 내·외부 서비스 연동으로 상품 라인업을 넓힌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네이버는 AI 검색과 서비스 경쟁력을 전략의 핵심으로 삼았다. 지난 2월 베타 출시한 쇼핑 AI 에이전트와 AI 검색 서비스 'AI탭'이 대표적이다. 맥락을 이어가는 멀티턴 대화로 추천 정확도를 높였고, 이에 올해 1분기 AI 추천 영역 거래액은 직전 분기보다 50% 늘었다. 자사 검색·쇼핑·결제를 묶어 이용자를 자체 생태계 안에 붙잡아두는 전략이다.
카카오는 카카오톡 위에 AI 생태계를 구축했다. AI 에이전트 '카카오툴즈'로 무신사, 올리브영, 더현대Hi 등 외부 서비스를 연동했다. 이용자는 카카오톡에서 챗GPT를 바로 쓰는 '챗GPT 포 카카오'에서 외부 서비스를 불러와 뷰티·패션 등 다양한 상품을 탐색할 수 있다. 국민 메신저라는 이용자 접점을 토대로 여러 쇼핑 서비스를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것이 핵심이다. 네이버가 폐쇄형 생태계로, 카카오가 개방형 연동으로 각각 주도권 확보에 나선 셈이다.
◇유통업계 생존 방정식은 'AI 네이티브 리테일'
유통업계는 △풀필먼트 고도화 △경험가치 극대화 △AI 최적화 △자체 쇼핑 AI 에이전트 구축 등 과제를 동시에 안았다. 해법은 두 축으로 모인다. 자체 AI를 고도화해 고객과 데이터를 지키는 한편, 거대 AI와 손잡아 새로운 유입을 확보하는 'AI 네이티브 리테일' 전략이다.
이 교수는 “올리브영이나 무신사처럼 유통 자체가 브랜드가 된 곳은 의미가 남지만, 택시나 숙박 플랫폼처럼 서비스 차이를 느끼기 어려운 버티컬은 위험하다”라고 진단하며 “AI 에이전트로 직거래가 되면 더 쌀 수도 있고, 아예 배송 AI 에이전트가 또 나올 수 있는데 그러면 거대 플랫폼이 다 마이크로 AI 에이전트로 쪼개질 가능성도 있다”고 예측했다.
유통 업계는 해당 카테고리와 브랜드에 맞춤형으로 개발한 AI를 내재화함으로써 에이전틱 AI와 비교해 훨씬 더 편리한 쇼핑 경험을 제시하는 것을 최우선의 전략으로 두고 있다. 자체 AI 고도화는 이의 일환이다. 올리브영은 4000만건이 넘는 고객 리뷰를 학습한 자체 소형 AI 모델(sLLM)로 '리뷰로 찾는 AI 추천 테마'를 운영하고, 일상 문장으로 상품을 찾는 자연어 검색을 대화형 검색으로 고도화하고 있다. 플랫폼 내에서 AI를 활용해 고객 쇼핑 경험을 혁신하는 취지다.
쿠팡은 물류 현장에 적용하던 AI를 상품 검색·리뷰로 넓히며 생성형 AI를 상품 검색에 도입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무신사는 자체 개발한 커머스 탐색 인터페이스 '무신사 MCP'를 기반으로 대화형 추천을 구현하고, 패션 이미지 300만장 이상을 학습한 '비주얼 서치'와 리뷰 요약 기능을 운영한다.
거대 AI와 협업도 빨라지고 있다. 무신사와 올리브영은 카카오톡 '챗GPT 포 카카오'에 연동돼 메신저 안에서 상품을 추천받을 수 있도록 했다. 무신사는 챗GPT 전용 앱까지 출시해 검색 중심 쇼핑을 대화형 커머스로 바꾸고 있다. 롯데웰푸드·아모레퍼시픽 등 식품·뷰티 기업과 여행 플랫폼 마이리얼트립도 챗GPT·카카오 생태계에 올라타며 거대 AI 이용자를 자사 채널로 끌어들이는 효과를 노리고 있다.
정다은 기자 dandan@et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