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자료서 출발한 실험, 국제무대서 교육적 의미 재확인
중경삼림 오마주, 2034 핵전쟁 뒤 디스토피아로 확장
서정호 가천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가 AI 기반 단편영화 '네오 충킹 익스프레스 2034'의 프랑스 칸 '에이아이 필름 어워즈 칸 2026' 공식 선정 소감을 이렇게 말했다. 7분30초 분량의 이 작품은 왕가위 감독의 '중경삼림'을 오마주해 2034년 핵전쟁 이후 디스토피아를 배경으로 환경과 반전 메시지를 담아냈다.
이번 선정은 단순한 수상 실적이나 개인 성취를 넘어, AI가 영화 제작 방식과 창작 언어를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로 읽힌다. 생성형 도구를 활용한 영상 제작이 실험 단계를 넘어 실제 서사와 미학, 편집 방식 전반을 재구성하는 흐름으로 이어지는 가운데, 교육 현장에서도 창작과 기술의 경계가 빠르게 허물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서 교수는 학생들에게 AI 영화 제작 과정을 보여주기 위한 강의자료가 한 편의 작품으로 확장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기술은 도구일 뿐이고, 결국 중요한 것은 무엇을 만들고 무엇을 말할 것인가”라며 “이공계 학생은 인문학적 감수성을, 인문계 학생은 기술 문해력을 함께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시대가 너무 빠르게 변하고 있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한때는 100% AI로 만든 영상이 1분을 넘기기도 어려웠는데, 이제는 5분을 훌쩍 넘기면서도 캐릭터 일관성을 상당한 수준으로 유지할 수 있게 됐다.
2024년만 해도 '일관성'은 큰 기술적 난제였는데, 2025년 8월 나노 바나나 같은 도구가 등장하면서 그 벽이 빠르게 낮아졌다. 그래서 작품 선정의 기쁨도 있었지만, 그보다 영상 제작 문법과 기술 발전 속도에 대한 두려움, 말하자면 현기증이 날 정도의 변화감이 더 크게 와닿았다.
그렇지는 않았다. 애초 이 작품은 수업용 강의자료였다. 학생들은 영상을 보는 데는 익숙하지만, AI로 영화를 만드는 과정은 아직 낯설어한다. 교수자로서 '이런 방식으로 기획하고, 이런 툴을 써서 만들 수 있다'는 걸 직접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그렇게 매주 시연용으로 만들던 영상이 1분을 넘고, 3분을 넘더니, 결국 7분 이상의 단편으로 발전했다. 강의자료가 자연스럽게 작품으로 성장한 셈이다. 출품이나 상업적 성과를 염두에 두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더 자유롭게 실험할 수 있었고, 그 덕분에 메시지 중심의 독특한 플롯을 구현할 수 있었다.
초기 플롯을 구상할 때 사회적 불안정성을 작품 안에 담고 싶었다. '중경삼림'이 나왔던 당시 홍콩은 1997년 중국 반환을 앞둔 시기였고, 영화 전반에는 유통기한, 시간의 흐름, 기억과 망각 같은 불안 요소가 아날로그 감성 속에 배어 있다.
지금 우리가 AI 기술을 마주하는 감정도 비슷하다고 봤다. 기대와 불안이 겹쳐 있는 상태다. 그런 감정을 미래를 향해 단순히 전망하는 데 그치지 않고, 오히려 과거를 돌아보는 방식으로 다뤄보고 싶었다. 그래서 '중경삼림'의 미장센과 정서를 근미래로 옮겨오면 매력적인 대비가 만들어질 것이라고 판단했고, 캐릭터의 감정선과 시각적 묘사를 그 방향으로 재구성했다.

가장 큰 문제는 수율이었다. 이번 7분30초짜리 단편을 만들기 위해 생성한 영상이 1800개가 넘는다. 총 러닝타임으로 따지면 250분이 넘는데, 실제 사용한 건 7분 남짓이다. 수율이 3% 수준인 셈이다.
일반적인 영화 제작 현장의 촬영 수율이 30% 안팎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AI 영화 제작은 대부분을 버리는 작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원하는 장면이 한 번에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미드저니는 예술적 표현은 뛰어나지만 물리성이 약하고, 비오는 재현력은 좋지만 표현의 결이 아쉽고, 런웨이는 일부 기술은 강하지만 영상 이해력에서 한계가 있다. 결국 해결책은 세 가지였다. 다양한 툴을 익혀 우회로를 확보하는 것, 예산을 투입해 기술적 한계를 보완하는 것, 시간을 들여 실패를 축적하면서 성공 확률을 높이는 '베이지안 업데이트'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이다.
코로나19 직전만 해도 언리얼 엔진 도입으로 영화 제작 현장이 크로마키 합성에서 LED 볼륨과 실시간 렌더링 중심으로 바뀌고 있다는 점이 큰 화두였다. 당시에도 제작 프레임워크가 바뀐다고 했지만, 지금의 AI 영상이 주는 충격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작은 변화였다고 느낀다.
AI 영상은 순차적 파이프라인을 동시적 루프로 바꾸고 있다. 편집의 본질도 '선택'에서 '생성'으로 이동하고 있다. 각본 역시 완성본이 아니라 계속 수정되고 변형되는 텍스트가 될 가능성이 크고, AI 캐스팅도 점점 활성화될 것이다. 결국 촬영 현장과 편집실이라는 개념 자체가 AI 프레임워크를 중심으로 한 하이브리드 구조로 재편될 수 있다고 본다.
루이스 설리번의 말처럼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고 한다면, 제작 도구의 변화가 결국 영화 언어 자체를 다시 정의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
AI는 분명 이공계 기술이다. 하지만 그것을 사용하는 건 결국 사람이다. 사람은 편의성, 즐거움, 만족감 같은 가치를 추구한다. 그래서 AI 활용의 핵심은 인간 중심, 다시 말해 무엇을 만들고 누구를 위해 서비스할 것인가에 있다고 생각한다.
가천대는 AI를 특정 학문 분야에만 가두지 않고 인문계까지 포함한 대학 전체 차원으로 확장해 적용해 왔다. 이번 선정은 그런 방향성이 실제 사례로 증명된 결과라고 생각한다. 학생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도 분명하다. 기술은 도구이고, 그 도구의 가치는 그것을 쥔 사람이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에 따라 결정된다.
이공계 학생은 인문학적 감수성과 창의성을, 인문계 학생은 기술 문해력을 함께 갖출 때 AI 시대에도 대체 불가능한 창작자가 될 수 있다.
결국 학생들에게 돌려주고 싶다. 이번 작품도 강의자료에서 출발해 단편영화로 완성된 결과물이었다.
그래서 앞으로도 이 분야에 관심 있는 학생들을 위해 더 나은 AI 기반 콘텐츠 강의를 이어갈 생각이다.
생성형 AI 콘텐츠 교육은 영화, 광고, 디자인 등 활용 범위가 매우 넓은데도 아직 체계적인 지침서가 부족하다. 제작 과정에서 겪은 실패와 성공, 시행착오와 노하우를 학생들에게 환원하는 것이 교수자의 역할이라고 본다.
한국은 이미 이야기의 힘을 세계에 증명해 온 나라다. 그 위에 AI라는 도구가 새로운 영상 제작 문법으로 더해진다면, 앞으로 K-콘텐츠는 더 많은 가능성을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 콘텐츠의 미래가 지금보다 더 밝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성남=김동성 기자 estar@et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