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3년 9월 15일.
과학기술처는 이날 헌법기관인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위상과 역할을 대폭 강화하는 내용의 자문회의법 중 개정법률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그동안 비상임이었던 위원장을 상임으로 하고 국무위원급 보수를 지급하며 자문회의 활성화를 위해 매월 대통령에게 업무를 보고한다는 내용이다.
김영삼 대통령은 이에 앞서 1993년 5월 19일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위원장에 이상희 전 과학기술처 장관을 임명했다. 위원으로는 노재식 한국환경기술개발원장, 하두봉 서울대 교수, 권태완 인제대 교수, 김영욱 한국생산기술연구원장, 박우회 서울대 교수, 채영복 한국화학연구소 연구위원, 정조명 한국과총 부회장, 유장희 대외경제정책연구원장, 배순훈 대우전자 사장(전 정보통신부 장관) 등이었다.
김 대통령은 이날 오전 청와대에서 이들에게 위촉장을 주고 오찬을 함께 하며 과학기술 발전 방안을 논의했다.
“과학기술 발전 없이는 결코 선진국이 될 수 없는 경쟁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자문회의가 경제성장과 산업발전, 기술개발 촉진을 위한 제반 정책을 자문하는 기구로 역할을 다 해주기 바랍니다.”
김 대통령은 “자문위원들의 전문지식을 활용해 앞으로 과학기술 정책과 관련 분야 정책을 유기적으로 연계해 나가겠다”며 “월 1회 대통령에게 과학기술 과제를 보고해달라”고 당부했다.
1993년 11월 23일 국회 경제과학위원회 회의실.
이날 오후 5시 18분. 신진욱 위원장이 개회를 선언하고 국가과기자문회의법 중 개정법률안을 상정했다.
“과학기술처 장관 나오셔서 제안설명 하시기 바랍니다.”
김시중 장관이 연단으로 나가 제안 이유를 소상하게 설명했다.
“과학기술의 국가적 중요성이 증대하고 있어 대통령에 대한 과학기술 자문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개정법률안을 제안했습니다. 원안대로 의결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어 국회 진재훈 전문위원이 개정법률안에 대한 검토 보고를 했다.
신진욱 위원장이 사회봉을 잡았다.
“그러면 이 법안에 대해 질의를 시작하겠습니다.”
첫 질의자는 한국일보 편집국장 출신의 조세형 의원이었다. 조 위원은 김 장관을 상대로 날카로운 질의를 시작했다. 그런데 처음부터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돌아갔다.
◇조세형 의원=자문회의 위원장이 장관급이면 추가 예산 비용을 얼마입니까.
◇김시중 장관=2억2000만원 정도입니다.
◇조세형 의원=이 정부가 작은 정부를 지향한다고 했는데 자문회의 위원장을 왜 장관급으로 해야 합니까. 장관급이 과학기술처에 두 명이 있어 한 사람은 대통령에게 한 달에 한 번씩 과학기술에 대해 자문한다는 명분으로 지금 간사인 과학기술처 장관을 밑에 두기 어려워 차관이 간사를 한다는 것인데 이것이 위인설관(爲人設官) 아닙니까.
◇손세일 의원=과학기술 진흥을 위해 자문회의 강화도 필요하지만, 그보다는 과학기술처를 부(部)로 승격하는 그런 노력을 해야지, 자문회의 역할을 강화하면 위인설관 혹은 과학기술처를 더 번거롭게 할 수 있습니다.
◇최운지 의원= 위원장을 상근으로 하면 과학기술 입국과 진흥에 큰 도움을 줍니까.
◇김시중 장관=예, 그렇습니다. 자문회의에는 각 부처에서 파견 나온 25명의 손발이 있으니까 이를 활성화하자는 것입니다.
◇이철 의원=이 법안과 예산 모두 대통령 자문을 위한 기구인데 과학기술처에서 이 기구와 예산을 관장할 이유가 있나요.
◇허화평 의원=이 문제에 대해 장관이 직접 대통령과 의논한 일이 있습니까. 장관께서는 대통령 과기특보와 과기수석비서관, 상근 위원장제 중에서 어느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까.
◇김시중 장관=경제수석과는 논의했습니다. 저는 수석비서관이 가장 좋다고 생각합니다.
신진욱 위원장도 나섰다.
“저도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과학기술처가 부로 승격해 큰일을 하기를 바라고 대통령과 늘 만나서 과학기술 진흥을 위한 역할은 장관이 담당해야 한다고 봅니다. 이것으로 개정법률안에 대한 질의를 종결하겠습니다. 심도 있는 심사를 위해 법안심의소위원회에 회부하겠습니다.”
과학기술처는 처음 개정법률안 국회 통과를 낙관했다. 하지만 국회 반응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개정법률안을 국회에 제출하자 야당은 물론 여당 국회의원조차 “위인설관 아니냐”며 반대하고 나섰다.
과학기술처에 비상이 걸렸다. 이런 분위기라면 개정법률안은 국회 통과가 무산할 수도 있었다. 상황을 반전시킬 지원군이 절실했다. 과학기술처는 다급했다.
김시중 장관은 김종필 민자당 대표(전 국무총리)를 만나 도움을 요청했다.
“대표님께서 이 개정법률안 통과를 도와주십시오. 꼭 부탁드리겠습니다.”
김 대표는 전후 사정을 듣고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그 말에 김 장관은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었다.
1993년 12월 16일 개정법률안은 국회 본회의에 상정했다. 반대는 소수 의견으로 첨부했다.
이날 오후 2시. 이만섭 국회의장이 개회를 선언했다.
“자문회의법 중 개정법률안에 찬반 토론신청이 있습니다. 토론을 시작하겠습니다.”
개정안에 반대하는 조홍규 민주당 의원이 단상으로 나왔다.
“김영삼 대통령은 작지만 효율적인 정부를 지향하는 새로운 시대의 문민 대통령답게 이 개정안을 철회하시고 과학기술특보 또는 수석비서관을 설치하는 단안을 내려주시기를 바랍니다.”
이어 찬성 입장인 김채겸 민자당 의원이 발언했다.
“개정법률로 자문회의가 활성화하고 과학기술처와 효율적인 업무협조체계를 유지하면 과학기술 발전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찬반 토론이 끝나자 이만섭 의장이 사회봉을 잡았다.
“토론을 종결하고 표결하겠습니다. 먼저 찬성하는 분은 기립해 주세요, 다음 반대하는 분 기립해 주세요. 표결 결과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재석 196인 중 찬성 147, 반대 43, 기권 6으로 국가과기자문회의법 중 개정법률안은 가결했음을 선포합니다.”
국회는 이 법안을 12월 21일 정부로 이송했다. 정부는 법안을 1994년 1월 5일 법률 4709호로 공포했다. 이상희 당시 위원장의 생전 회고.
“위원장으로 한 달에 한 번 대통령을 만나 회의를 하면서 과학기술 과제를 보고했고 각계의 다양한 의견을 대통령께 가감 없이 전하면서 정책 대안을 제시했습니다. 자문회의는 과학기술 정책과 국가발전의 틀을 짜는 일을 했습니다.”
이 위원장은 2002년 '과학경제 대통령'을 내걸고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에도 출마했다. 결과는 후보 탈락이었다. 그는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국민에게 각인시키는 선봉장 역할을 했다.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는 노무현 정부에서 그 기능과 역할을 대폭 강화했다.
2003년 9월 22일. 노무현 정부는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의장을 대통령이, 그리고 사무처장을 대통령 정보과학보좌관이 맡고 민간위원도 30명으로 확대키로 했다고 발표했다.
노 대통령은 과학기술 진흥에 남다른 노력을 기울였다. 국정과제에 '과학기술중심사회 구축'을 포함시키고 과학기술 부총리제를 도입했다. 대통령실에는 정보과학보좌관을 신설했다.
인터넷 대통령으로 불린 노 대통령은 정부위원으로 과학기술부 장관, 산업자원부 장관, 정보통신부 장관, 기획예산처 장관, 대통령 비서실장과 정책실장, 정보과학보좌관 등 7명을 참여시켰다.
당시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참여정부 국정과제인 '과학기술중심사회 구축'을 자문회의가 담당하기 위한 조치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이 법안은 국회 본회의를 거쳐 2004년 3월 22일 법률 제7205호로 공포, 시행했다.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3.0 시작이고 과학기술계 새 시대 서막이었다.
이현덕 대기자 hdlee@et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