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수의 특이점(Singularity) 시대]〈5〉분절의 시대, 한국 경제 생존 공식은 '내수 근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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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수 싱귤래리티 금융 소사이어티(SFS) 간사
관련 통계자료 다운로드 독일의 재정구조 계획:적자와 부채

“당신이 패권국(hegemon)에 의존하면 의존할수록 패권국이 당신에게 더 우호적으로 대할 이유를 찾기는 어렵다.”-루이스 가리카노(Luis Garicano) LSE 교수

이 말은 최근 급변하고 있는 글로벌 정치경제 환경 하에서 패권국이 아닌 대다수의 나라들의 처지를 잘 대변하고 있다.

이미 트럼프 관세, 미국이 주도하는 반도체 동맹, 중국의 희토류 통제 등으로 명확해지고 있듯이 글로벌 질서를 주도하는 패권국들이 자국의 이해를 우선시하면서 안보 분야는 물론 경제 분야에서도 패권국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질 경우 그 대가 역시 클 수밖에 없는 세상이 도래했다.

변화된 글로벌 경제환경은 새해 경제전망에도 잘 드러나 있다.

과거 세계화 파고를 타고 승승장구했던 독일, 중국, 일본, 한국 등 나라들은 고전이 예상되지만 탄탄한 내수를 바탕으로 실질적인 회복력(resilience)을 갖춘 스페인, 인도는 견고한 성장이 예상된다. 과거로 따지면 상전벽해라고 할 만한 이 변화는 잠시 머무는 비정상이 아니다. 왜냐하면 지정학적 변화(자유주의 질서에 대한 대안 모색), 경제적 변화(기존 경제분석틀을 벗어나는 레짐 체인지), 기술적 변화(인공지능(AI)이 유발하는 변화)를 본격적으로 체감하는 첫 해가 될 전망이기 때문이다.

남유럽 저성장 모델의 대표국인 스페인 경제는 내수 및 관광에 힘입어 높은 실업률에도 2025년 2.9%, 2026년 1.8% 성장이 예상되는 등 유로 경제 평균(각각 1.4%, 1.1%)를 크게 상회하고 있다.(UBS 추정)

특히 각국의 보호주의 강화로 글로벌 무역 규모가 퇴조하는 거센 외풍에도 스페인은 독일의 3배를 넘는 높은 민간 소비 성장률 (2025년 3.3%, 2026년 2.2%)에 힘입어 건실한 성장을 지속하고 있다.

반면에 과거의 영광을 생각하면 믿기 어렵게도 유럽의 병자로 전락한 독일의 GDP 성장률은 2025년 간신히 0%대를 벗어나 2026년 1.1% 성장 예상되며 앞으로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에너지 위기와 더불어 글로벌 공급망 와해에 따른 무역 환경 악화로 인해 그동안 성장을 이끌던 순수출 부진이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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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이 정체된 독일 경제 (자료=파이낸셜타임즈)

독일과 스페인의 자리바꿈은 중국과 인도의 관계에서도 발견된다.

중국은 14억명 인구라는 규모에도 과도한 투자 중심의 성장모델과 지방정부 부채 위기 등으로 인해 내수경제가 견고하게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

UBS가 추정한 2025년 중국 성장률을 4.9%, 2026년은 4.5% 전망되며, 민간 소비 증가율은 코로나 이전 대비 여전히 낮은 3%(총소비는 4.8%)대에 머물러 있다. 최근 막을 내린 5중전회에서 채택된 향후 경제 전략에도 드러나 있듯이 향후 중국 경제의 사활은 소비 회복에 있을 전망이다.

반면에 인도는 내수 성장의 대표 국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2025년 인도의 경제성장률은 6.8%로 전망되며 이는 중산층 소비 촉진 정책에 힘입은 7.6%에 달하는 G20 국가 중 최고 수준인 민간 소비 증가율 덕분이다. 인도의 내수가 이끄는 경제의 힘은 지정학적 무대에서도 발휘되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인도가 미국이 주도하는 러시아에 대한 경제 제재에 이탈해서 러시아 원유 수입을 확대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인도에 대해 징벌적인 고율 관세를 부과했다. 하지만 고율 관세에도 인도 경제는 순항하고 있고 오히려 인도를 중국 쪽으로 밀어내고 있는 외교적인 실수가 되는 실정이다.

이처럼 글로벌 질서가 융합된 세계(globalized world)에서 분절된 세계(fragmented world)로 전환되면서 수출 중심 성장 모델을 가진 국가와 내수 중심 성장 모델을 가진 국가 간 명암이 달라지고 있다. 즉 '하나의 세계, 하나의 공급망'이라는 글로벌 자유주의 질서는 막을 내리면서 위처럼 내수의 중요성은 한층 강조되고 있다.

우리 경제 현실 역시 독일과 큰 차이가 없다.

2025년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1.8%로 추정되고 2026년은 2%대 턱걸이가 전망되는 등 코로나 이전 평균 성장률(2.6~2.8%)에 크게 못 미치고 있다.

문제는 이렇게 낮은 성장조차도 반도체, 자동차 수출 등 글로벌 공급망 수요에 크게 의존하면서 미국의 금리 인상, 중국 경제의 성장 둔화, 지정학적 위험 등 외생 변수에 영향을 크게 받고 있다. 결국 달라진 글로벌 환경에 안정적인 성장경로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훨씬 강한 내수 시장을 기반으로 한 회복 탄력성을 확보해야 한다.

이를 고려할 때 내수 회복을 타깃으로 한 새 정부의 정책 방향은 제대로 잡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새 정부는 민생 회복 지원을 위한 소비 쿠폰 지급, 지방 경제 활성화 추진 등 중산층의 소득 안정과 소비 여력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정책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이는 단순히 외형적인 GDP 총량만으로 경제를 보는 데서 벗어나 고용 안정성, 넓은 소비 기반, 산업의 자생력, 지역 균형의 복원력 등 소위 몸에 비유하면 코어 근육의 강화를 시도하고 있는 것으로 비유할 수 있다.

전 세계가 더 이상 '누구에게 기댈 것인가'라는 고민에서 벗어나 '무엇으로 버틸 것인가'라는 고민을 시작한 점을 고려할 때 제대로 잡은 정책 방향이라고 할 수 있다.

내수가 중요하다는 총론에서 의견의 일치가 있음에도 어떻게 내수를 확보할 것인가에는 독일의 길과 중국의 길을 놓고 의견이 달라질 수 있다.

독일은 2009년 헌법 개정을 통해 연방정부의 경우 재정적자 한도를 GDP의 0.35%, 주 정부의 경우는 적자를 허용하지 않은 소위 부채 브레이크를 도입한 바 있다.

이런 재정 운영에 관해 극보수적인 독일이지만 작금의 안보 및 경제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부채 브레이크의 예외를 통해 마련한 특별 기금을 러시아 위협에 대응한 국방 분야, 이민자 문제 부각 및 극우 정당인 독일대안당(AfD) 부상에 대응한 사회통합 분야 그리고 생활 인프라의 노후화 개선 분야에 투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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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상하는 독일대안당 (AfD) (자료=Dawum)

주목할 만한 점은 소비 진작을 위해 소비 쿠폰 등을 추진하기보다는 교육, 주거, 보육·돌봄, 이민 2세 통합, 도시 인프라 등에 대한 투자 확대를 통해 가계의 소비 여력을 높여주는 가처분 소득 확대를 겨냥하고 있다. 미 컬럼비아대 교수 애덤 투즈(Adam Tooze)는 현 독일의 재정 확대 정책을 산업 불안과 중국 쇼크, 러시아 위협, 이민을 둘러싼 극우 부상 등 복합 우울(polygloom)에 빠진 독일을 구해낼 복합해법(polysolution)이라고 부르고 있다.

반면 중국의 정책은 독일과 달리 직접적으로 소비 증진을 겨냥하고 있다. 즉 중국은 약 3000억위안(40조원 이상)의 특별 국채를 발행해 과잉 투자가 만들어낸 내구 소비재(전기차, 가전 등)의 과잉을 해소하기 위한 이구신환(以旧换新:낡은 내구재를 신제품으로 교환하는데 보조금 지급 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다.

둘 다 민간 소비를 늘리기 위한 전략이지 어느 한 길을 그대로 채택하기에는 우리와 양국의 처한 경제환경이 달라 어렵다. 우리도 소비쿠폰을 지급했지만 중국의 이구신환과 같은 대규모 지원도 독일과 같은 역대급 적자재정의 편성은 재정 여건상 감당하기 어렵다.

지난 정부가 추진했던 소득주도 성장처럼 실질임금을 크게 높이는 것도 쉽지 않다. 이처럼 임금과 정부 이전 지출 등을 통해 가계의 현금흐름을 늘리기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에 대안을 찾아야 하는데 한 대안으로 가계의 비금융 보유자산을 현금흐름으로 바꾸어 가처분 소득을 올리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잘 알다시피 우리나라의 가계 자산 구성에서 70%가 주택이 대부분인 부동산이고 금융자산 30%마저도 현금흐름으로 보기 어려운 임대보증금이 상당 부분 차지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주택 등 부동산 보유자들의 상당수가 이제는 현금 흐름이 끊어진 1, 2차 베이비 붐 세대 (1955~1971년)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그나마 소비 여력을 가진 사람들조차 지갑을 닫고 있다.

따라서 현금흐름이 끊어진 이들 세대가 보유 부동산을 다운사이징하고 생긴 유휴 현금흐름을 금융자산으로 이전시켜 가처분 소득을 늘리고 소비를 증가시킬 수 있는 정책 대안을 시급히 고민해야 한다. 이미 한차례의 높은 대외 파고를 넘은 것처럼 이 방법을 찾아내는데 구윤철 부총리를 비롯한 경제팀의 실력을 기대해 본다. 지금처럼 '질서없는 질서'가 지배하는 냉혹한 글로벌 환경 속에 내수의 강화는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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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재정구조 계획:적자와 부채

유재수 싱귤래리티 금융 소사이어티(SFS) 간사 yoojs6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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