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차 SFS포럼] AI 거품론, 닷컴식 해석은 위험…관건은 '내재화 역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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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귤래리티 금융 소사이어티 제9차 회의가 22일 서울 중구 더존을지타워에서 열렸다. 지용구 더존비즈온 성장전략부문 대표가 'AI 버블론의 실체와 산업적 증명 : 한국 산업의 지정학적 기회와 전략'을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 김민수기자 mskim@etnews.com

인공지능(AI)을 둘러싼 '버블 논쟁'을 두고, 이를 단기 성과 부진이나 주가 변동만으로 평가하는 닷컴 버블식 해석은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AI의 성패는 기술 자체보다 노동 생산성과 수익으로 연결될 때까지 조직이 이를 얼마나 깊이 내재화할 수 있는지, 즉 어답션 역량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더존비즈온 AI 연구소를 이끄는 지용구 성장전략부문 대표는 22일 서울 을지타워에서 열린 싱귤래리티 금융 소사이어티(SFS) 제9차 포럼에서 “AI는 버블이 아니라 실사용 중심으로 성숙해가는 과정에 있다”고 말했다.

특히 올해 들어 오라클 주가가 급락하면서 AI 버블론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오라클은 이달 중순 단 한 주간에 주가가 10%대 하락하며, 2002년 이후 최대 낙폭 중 하나를 기록했다.

지용구 대표는 “수치상 차이는 크지 않았지만, 그간 AI 기대감으로 과열됐던 주가에 차익 빌미를 제공했다”며 “클라우드 인프라 성장은 이어졌지만 고마진인 기존 소프트웨어 라이선스 매출 감소가 수익성 우려를 키웠다”고 말했다. AI 투자 지속 가능성에 대한 의구심, 실적 기대치 미달, 파트너십 차질 등 복합 요인이 작용했다는 설명이다.

다만 이를 AI 버블 붕괴로 해석하는 것은 과도하다고 선을 그었다. 지 대표는 “오라클 쇼크는 '묻지마 투자'의 시기를 지나 투자의 지속 가능성과 효율성을 검증하는 단계로 진입했음을 알리는 신호”라며 “AI에 대한 과열된 기대가 현실적인 속도에 맞춰 조정되는 정상화 과정”이라고 평가했다.

AI 논쟁의 핵심은 기술 자체가 아니라 AI를 얼마나 실질적으로 조직에 녹여내고 있는지, 즉 어답션 역량에 있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지 대표는 “AI 어답션은 이제 실제 수익화를 증명해야 하는 시대로 전환됐다”며 “기업의 비전 제시보다 현금 흐름과 투자 효율성이 더 엄격히 평가되고 있다. 아무리 좋은 배가 있어도 운용 능력이 없으면 수익을 내기 어렵다”고 짚었다.

내년을 기점으로 에이전트 AI 시대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지 대표는 “기존에는 API를 통해 데이터가 연결되는 수준이었다면, 모델 컨텍스트 프로토콜(MCP)로 전환되면 룰베이스를 넘어 멀티태스킹·병렬처리 기반의 자율적 업무 운영이 가능해진다”며 “회사 업무 전반의 작동 방식 자체가 바뀔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어진 기조발표에서 신관호 고려대 교수 역시 “새로운 기술 혁명은 예외 없이 과잉 투자와 버블을 동반해 왔다”면서 “비록 버블이 있었어도 그 이후 이를 어떻게 활용했는가에 따라 추후 발전 방향이 달라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신 교수는 역사적 사례를 통해 이 같은 주장을 설명했다. 1840년대 영국은 국방비의 두 배에 달하는 자금을 철도에 투입하며 거품을 만들었지만, 결과적으로 철도망은 산업화의 혈관이 됐다. 1920년대 전기 산업 역시 유틸리티 주가 급등으로 버블을 겪었으나, 당시의 과잉 설비는 훗날 전시 산업과 대량 생산 체제를 가능하게 했다는 것이다.

신 교수는 “생성형 AI가 기업 전체의 수익성을 실질적으로 끌어올리는 단계까지 갔느냐에 대해서는 아직 그렇지 않다는 의견이 더 많다”면서도 “과거 4차 산업혁명 담론에는 부정적이었지만, AI는 분명히 실체가 있는 기술이고 산업혁명으로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언급했다. AI는 경제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범용기술이면서 동시에 발명 방법을 발명하는 기술로 혁신을 촉진하는 두 가지 조건을 모두 만족한다는 설명이다.

신 교수는 현재의 AI 랠리를 2000년대 IT 버블과 단순 비교하는 것은 구조적 차이를 간과한 해석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과거 닷컴 버블은 수익 모델이 불분명한 신생 기업들이 트래픽과 기대감만으로 평가받던 시기였다면, 지금 AI 시장을 주도하는 기업들은 이미 시장을 장악한 빅테크로, 검증된 플랫폼과 데이터 지배력을 바탕으로 실적을 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신 교수는 “당시에는 적자가 누적된 상태에서 미래 기대에 의존했지만, 현재 AI 주도 기업들은 높은 순이익률과 강력한 현금 창출 능력을 갖추고 있고 밸류에이션도 과거보다 훨씬 합리적인 수준”이라며 “부채에 의존해 투자를 늘리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풍부한 현금을 기반으로 자체 투자를 감당할 수 있다는 점도 다르다”고 덧붙였다.

AI 도입 이후 기업 성과가 기대에 못 미치는 현상에 대해서는 '생산성 역설'로 해석했다. 신 교수는 “ 기술을 들여온다고 생산성이 즉각 오르지는 않는다”며 “조직 재설계·업무 흐름 변화·숙련 축적이 동반되지 않으면 오히려 초기에 생산성이 정체되거나 떨어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신 교수는 AI 확산 국면에서 주체별로 다른 판단 기준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중앙은행은 자산 가격 상승과 실질 생산성 확산 사이의 속도를 어떻게 맞출 것인지에 주목하면서, 금리 변화에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부를 향해서는 “중복투자를 되도록 방지하되 지나친 기대를 제도적으로 증폭시키는 것은 오히려 위험할 수 있다”며 “설령 시장 자체논리로 버블이 발생하더라도 구축된 인프라를 이후 경제 성장의 동력으로 어떻게 활용하느냐를 고민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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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귤래리티 금융 소사이어티 제9차 회의가 22일 서울 중구 더존을지타워에서 열렸다. 신관호 고려대 교수가 'AI와 버블 : A Macro View'를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김민수기자 mskim@etnews.com

박유민 기자 newmin@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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