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정부와 산업계, 그리고 엔비디아 간 인공지능(AI) 동맹이 본격화한다. 엔비디아는 전 세계적으로 공급이 달리는 그래픽처리장치(GPU) 26만 장을 향후 5년간 한국에 공급하고, AI 기술 공동연구와 인재 양성에도 협력하기로 했다. 한국 정부가 전략 분야로 선정한 '피지컬 AI' 경쟁력 강화를 위한 든든한 원군을 확보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재명 대통령은 31일 경주에서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를 만나 AI 인프라 확충과 피지컬 AI 협력 방안 등 한국 AI 생태계 활성화 전략을 논의했다. 이번 회동은 국정 핵심 과제인 'AI 3대 강국 실현'을 위한 이 대통령의 연속된 행보의 일환이다. 앞서 이 대통령은 글로벌 투자사 블랙록, 아마존웹서비스(AWS), 오픈AI 등과도 연쇄 회동을 갖고 한국의 AI 생태계 구축에 동참해줄 것을 요청했다.
이날 이 대통령은 황 CEO에게 “대한민국의 목표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AI 수도로 도약하는 것”이라며 “블랙록, 오픈AI 등 글로벌 기업이 참여한 AI 허브 프로젝트에 엔비디아도 함께해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인프라·기술·투자가 선순환하는 AI 생태계를 함께 만들어가자”고 강조했다.
엔비디아는 한국 정부와 기업들과 △AI 인프라 구축 및 기술 협력 △AI 기술 공동연구 △AI 인재 양성 및 스타트업 지원 등 구체적인 분야에서 협력하기로 합의하며 이에 화답했다. 인프라 구축과 관련해 엔비디아는 이 대통령의 임기 내인 2030년까지 26만 장 이상의 GPU를 한국에 공급하기로 했다. 이 중 5만 장은 정부가 구입해 국가 AI 컴퓨팅센터와 독자 AI 파운데이션 모델 개발 프로젝트에 활용하고, 나머지 20만 장은 삼성전자, SK, 현대자동차, 네이버 등 민간 기업이 구매해 사용한다.
세계적으로 GPU 공급이 부족한 상황에서 한국이 안정적으로 연산 자원을 확보하게 되면, AI 기술 개발 속도를 크게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정부가 글로벌 선두권 도약을 목표로 하는 피지컬 AI 분야의 동력을 확보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피지컬 AI는 단순 소프트웨어형 인공지능을 넘어 자율주행차, 로봇, 스마트팩토리 등 현실 공간에서 작동하는 '물리적 인공지능'을 의미한다. 감지(센싱)-판단(추론)-행동(실행)의 전 과정을 수행하며, 제조·모빌리티·물류·헬스케어 등 산업 전반에 적용될 수 있다.
한국은 반도체·통신·제조 기술을 결합할 수 있는 산업 생태계를 보유하고 있으며, 특히 자동차 등 제조 분야에서 축적한 데이터가 풍부하다는 점이 최대 강점으로 꼽힌다. 젠슨 황 CEO는 “한국은 AI와 제조, 소프트웨어 역량을 두루 갖춘 나라로 제조 AI 분야에서 글로벌 리더가 될 수 있다”며 “오늘이 AI 혁명뿐 아니라 한국의 AI 산업에도 매우 중요한 날”이라고 강조했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도 브리핑에서 “AI 혁명의 다음 단계는 '피지컬'이며, 세상의 모든 사물에 AI가 기여하게 될 것”이라며 “한국은 이를 주도할 최적의 나라로, 엔비디아 입장에서도 최고의 파트너”라고 설명했다.
피지컬 AI 역량 고도화를 위한 협력도 본격화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현대자동차, 엔비디아는 이날 피지컬 AI 분야 협력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현대차는 자율주행차와 자율제조 등 AI 기반 제조기술 개발과 인재 양성에 나서고, 네이버는 소프트웨어 정의 차량(SDV)과 클라우드 기반 모빌리티 산업 경쟁력 강화를 추진한다.
삼성전자와 SK는 엔비디아 GPU를 활용해 반도체 생산공정의 디지털 트윈을 구축하기로 했다. 또 양측은 고대역폭 메모리(HBM) 공급 확대 등에서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AI 공동연구 분야에서는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과 엔비디아가 슈퍼컴퓨터 6호기 '한강'의 양자 하이브리드 컴퓨팅 환경을 구축하고, 삼성전자·통신 3사·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연세대 등은 AI-RAN 기술 개발과 상용화를 공동 추진한다.
AI 인재 양성과 스타트업 지원에도 속도가 붙는다. 엔비디아와 중소벤처기업부는 공동으로 운영 중인 '엔업(N-UP)' 프로그램을 확대해 실습 중심의 AI 교육을 강화하고, 국내 스타트업 생태계의 성장 기반을 다질 계획이다.
이 대통령은 “엔비디아가 AI 혁신의 속도를 담당한다면, 한국은 그 속도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 최적의 파트너”라며 “오늘 논의된 협력 방안이 국내를 넘어 국제사회에도 기여하는 성공 사례가 되도록 정부도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경주=
최호 기자 snoop@et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