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가 소리 없는 '인공지능(AI) 전쟁'을 치르는 지금, 미국과 중국은 천문학적 자본으로 패권을 다투며 GPT 같은 핵심 기술을 독점하고 있다. 한때 '정보기술(IT) 강국'이라 불렸던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글로벌 순위라는 숫자 뒤에 가려진 거대한 기술 격차와 더 나은 환경을 찾아 떠나는 핵심 인재들이 그 현실을 말해준다.
이런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국가 경쟁력을 강화하겠다며 'AI기본법'이 제정돼 2026년 1월 시행을 앞두고 있다. 과연 이 법이 추격의 발판이 될지 오히려 격차를 고착시키는 족쇄가 될지 학계와 산업계의 우려가 크다.
AI 성공 방정식을 구성하는 4대 변수는 G(거버넌스), R(연구개발), I(인프라), D(데이터)다. 안타깝게도 우리의 R, I, D는 모두 미국·중국과 같은 AI 선도국에 비해 현저히 뒤처져 있다. 따라서 우리의 AI 국가 전략의 최우선 순위는 당연히 R, I, D의 점수를 끌어올리는 '파격적인 진흥'과 '과감한 규제 혁파'가 돼야 한다. G는 그 이후에 신경 써도 늦지 않다. G를 우선하는 것은 달릴 차도 없는데 차량감독기관부터 만들고 교통법규만 빽빽하게 규정하는 격이다.
AI기본법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이런 순서를 거꾸로 이해한 것은 아닌지 의문이다. 위 법은 대통령 소속 AI 위원회 신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의 권한 강화 등 'G'에 힘을 싣고 AI 사업자에게 투명성 확보 의무, 안전성 확보 의무, AI생성물 표시 의무 등을 지우는 '규제 신설'에 집중하고 있다.
정작 중요한 AI 진흥 조항은 구체적인 예산 확보나 새롭고 혁신적인 정책 추진에 관한 내용 없이 대부분 '국가는…를 할 수 있다'는 수준의 형식적, 선언적 규정이다. 이마저도 ICT융합법 등 기존 법률에 근거해 이미 가능한 내용을 반복하는 수준에 불과하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위 법에는 AI의 '쌀'이자 '연료'라 할 수 있는 'D' 규제 해소에 관한 내용이 아예 없다는 점이다. '개인정보 보호'라는 이유로 AI 학습 데이터 확보와 활용이 매우 어려운 우리 현실에서, AI기본법이 AI 육성을 내세우면서 정작 학습데이터 규제 해소는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다는 점은 그 자체로 이해하기 어렵다.
AI기본법이 유럽연합(EU)의 AI법(AI Act)을 많이 참조했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그러나 EU의 AI법은 미국 빅테크로부터 시장을 보호하고 차별이나 감시 같은 사회적 위험을 막기 위한, 그들만의 '방어적 규제'에 가깝다. 추격자 입장인 우리가 이 법을 그대로 가져오는 것은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되는 지름길일 뿐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AI 사업자에게 새로운 규제를 만들지 않고, 국가에 AI 연구개발과 산업 촉진 시책을 강구할 의무를 지우는 일본의 AI법과 같은 '실용주의'다.
최근 국회는 AI기본법 시행을 유예하거나 AI 진흥책을 구체적으로 규정한 별도의 'AI산업특별법'을 제정하려고 움직이고 있다. 입법부 스스로 AI기본법이 현 수준으로는 시행될 수 없고 AI기본법이 이름과는 달리 정작 AI를 '진흥'하기에 역부족이라는 사실을 인정한 것이다. 만약 AI산업특별법이 통과된다면 AI기본법은 그나마 남아있는 형식적·선언적 진흥 규정은 사문화되고 규제와 위원회라는 껍데기만 남아 '기본법'이라는 명칭과 체계에 걸맞지 않는 법이 될 것이다.
시행하기도 전에 이미 논란의 중심에 서 있고 오히려 AI 진흥의 발목을 잡을 우려마저 제기되는 AI기본법. 지금이라도 원점에서부터 전면 검토해야 한다.
이해원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hwlee.law@g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