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증강현실(AR)·가상현실(VR), 디지털 콘텐츠와 같은 분야에서 팹리스 기업들이 수요처를 찾고 물량을 확보해 기술을 개발하는 동력을 제공하는 게 이곳 제2캠퍼스의 역할입니다.”
경기도 판교 제2테크노밸리에 위치한 글로벌 비즈센터. 한국전자기술연구원(KETI)은 올해 1월부터 이 곳 6~9층에 정보통신미디어연구본부, 지능정보연구본부, 반도체·디스플레이연구본부 3개 본부 연구센터 8개를 이전 배치했다.
경기도 야탑이 본원인 KETI는 이 곳을 '제2캠퍼스'로 명명했다. '시스템 반도체와 정보통신기술(ICT) 융합'을 기치로 내걸로 연구센터당 30~40명씩, 총 300여명 규모의 연구원들을 투입했다. 인공지능(AI) 기술이 통신, 반도체와 같은 첨단 산업 뿐만 아니라 콘텐츠, 인터넷, 유통 등 생활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것처럼 다양한 기술을 엮어 고부가를 창출하는 '융합' 기술이 중요해서다.
황태호 KETI 반도체·디스플레이연구본부 본부장은 “근방에는 전국 팹리스 기업 40%가 밀집해있고 수요기업도 많기 때문에, KETI는 이곳에서 이들 사이에서 친목 및 기술 공유의 기회를 제공하고 실제 협력이 일어나도록 하는 매개체 역할을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경택 KETI 정보통신미디어연구본부 본부장도 “본부 간 융합에서도 시너지를 기대하고 있다”면서 “온디바이스 인공지능(AI)에 적용할 수 있는 모델 경량화 기술과 클라우드 연동 플랫폼 기술, AI 모델 관리 기술 등을 반도체·디스플레이연구본부와 함께 기획하고 준비하기가 용이해졌다”고 말했다.

연구센터를 직접 돌아보니 자율주행, 미디어, AI, 우주통신 등 광범위한 연구가 진행 중에 있었다. 9층에는 미디어 기반으로 데이터 분석을 하는 정보미디어연구센터가 있었다. 빅데이터와 물리 보안을 결합해 활용할 수 있는 기술들을 개발하는 곳이다. 물리 보안이란 카메라나 라이다, 레이더와 같은 물리적 장비를 활용해 추적하는 기술이다. 금승우 센터장은 교통 집중 관제 시스템을 대표적인 사례로 소개했다.
그는 “카메라와 라이다, 레이더를 결합해서 사용하는 '데이터 융합' 기술을 적용해 모든 데이터를 종합한 한 장의 그림으로 표출되도록 했다”면서 “자율주행 시범단지에 설치해 2년 정도 데이터를 수집했으며, 다른 기관도 활용될 수 있도록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7층으로 내려오면 반도체·디스플레이연구본부가 자리잡고 있다. 융합신호SoC연구센터는 반도체 설계 검증과 국방, 우주, 항공 분야 반도체 기술과 AI 반도체 기술을 접목해 판교 여러 방산 기업과 협력 중이다. 전자전 중 신호를 변조시켜 내보내 레이더 등을 교란시키는 데 사용하는 재머용 반도체를 실험 테스트하는 기술을 개발한 상태다.
이성호 센터장은 “여기서 개발된 반도체가 무기체계에 탑재돼 실제 제품화에 사용되고 있다”면서 “고속 아날로그디지털변환회로(ADC)와 디지털아날로그변환회로(DAC) 한개씩 칩을 만들어 실제 함정이나 전투기 등에 활용 중”이라고 말했다.

이밖에도 SoC플랫폼연구센터, 지능형반도체디바이스연구센터, 콘텐츠응용연구센터, VR·AR연구센터, 스마트네트워크연구센터, 지능로보틱스연구센터가 포진했다.
또 글로벌 비즈센터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위치한 성남글로벌융합센터에는 KETI가 산업통상자원부, 경기도, 성남시와 함께 구축한 '시스템반도체 개발지원센터'가 있다. 이곳에는 시스템반도체 설계 기업들에게 회로 설계가 실제로 작동하는지를 빠르게 확인하고 제품 출시 전 다양한 조건을 시뮬레이션 할 수 있는 검증용 에뮬레이터가 마련돼있다. 작동하는 법이 익숙치 않은 기업들에게는 교육도 제공된다.
이 센터장은 “사전에 칩 제작 과정에서 오류를 줄일 수 있는데, 기존에 업체들이 이 서비스를 받으려면 매우 큰 금액을 지불해야 했다”며 “KETI는 정부 투자를 받아 저렴한 가격에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KETI는 제2캠퍼스에서 양자컴퓨팅, 뉴로모픽 등 시그니처 기술 발굴을 지원하고, 조직 간 네트워킹과 기초 역량 축적을 통해 미래 산업을 주도할 공공기술 플랫폼 역할을 강화하겠다는 계획이다. 연구기관으로서 산업 변화에 선제 대응하려면 연구 성과를 산업 현장에 연결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신희동 KETI 원장은 “판교 거점 구축은 KETI가 어떤 방식으로 기술을 다루고 협력할지를 새롭게 설계하는 출발점”이라며 “연구원 내부 유기적 협업과 외부 산·학·연과의 전략적 연결에 성공 여부가 달렸다”고 강조했다.
김영호 기자 lloydmind@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