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선 후보 모두 인공지능(AI)을 핵심 공약으로 내세운다. 하지만 인재 확보를 위한 방안은 뚜렷하게 밝히지 않고 있다. 수십조원에서 수백조원을 투입해 AI 생태계를 조성하겠다는 말만 되풀이 할 뿐이다. 의대 쏠림 현상과 고급 인력의 해외 유출이 가속하는 상황이라, 이런 AI 공약은 선언적 의미에만 그칠 것이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AI 인재 이동을 추적하는 미국 시카코대 폴슨연구소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대학원 과정을 마친 AI 인재의 해외 유출은 심각한 수준이다. 2022년 기준으로 10명 중 4명 이상이 나라를 떠난다. 최근에는 트럼프 행정부 재집권으로 미국이 관련 인재 확보에 열을 올리면서 더 많은 인재가 유출되고 있다. 급여와 기업 문화, 양육 환경에서 미국이 더 매력적이라고 느끼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의 의료개혁이 사실상 실패로 귀결되면서, 가뜩이나 심했던 의대 쏠림 현상 역시 더 해질 것으로 보이는 점도 리스크다. 2024학년도 전국 자연계열 수능 최상위권 수험생 중 의·치·한의대 합격자는 약 75%다. 수학·과학 성적 상위 1% 학생 대부분이 연구직이 아닌 의료계로 진로를 정하는 것이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의대가 아닌 이공계로 국내 인재를 육성하는 한편, 세계 수준의 인재를 국내로 흡수할 수 있는 대안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된다.
그러나 주요 후보 공약을 뜯어보면 이 두 축을 아우르는 구체적 설계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AI 산업에 100조원을 투자하겠다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지역 거점대학에 AI 단과대학을 설립하고, 병역특례를 확대해 젊은 인재를 이공계에 묶어둔다는 전략이다. 김경수 후보도 국가 특성화 연구중심대학과 메가시티 중심의 AI 허브를 통해 인재를 '지역에서 키우겠다'는 계획이다. 김동연 후보는 글로벌 인재를 파격적으로 유치하겠다고 했지만 구체적 계획은 밝히지 않았다.
한동훈 국민의힘 후보는 200조원 규모의 AI 투자 계획을 밝혔지만, 인재 유출 방지나 유치 전략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홍준표 후보도 AI·양자·바이오 등 초격차 기술에 50조원 이상을 투입한다면서 디지털 영재학교, AI·반도체 마이스터고 설립 등을 공약했다. 안철수 후보도 과학기술 인재 100만명 양성을 내걸었지만 숫자에만 초점을 맞췄을 뿐이다.
주요 후보 모두 우수한 이공계 인재가 의료계로 몰리는 이유, 전문가로 키워진 인력이 왜 해외로 떠나가는지에 대한 고민의 흔적은 없어 보인다.
미국이 반도체법(CHIPS and Science Act)을 통해 이공계 고급 인력 양성과 비자제도 완화를 병행하고, 중국이 '천인계획'을 통해 해외 석학을 귀국시키고 연구자 연봉 상한선 폐지를 통해 글로벌 경쟁력을 끌어올린 것과는 대조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의대와 공대, 한국과 미국 중에 선택하라고 하면 이미 승부는 끝난 것”이라면서 “투자 총액만 키우는 후보들의 공약은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하다”고 꼬집었다.
안영국 기자 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