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남·경북을 덮친 대형 산불 피해가 커지자 정치권이 정부에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 논의를 촉구하고 나섰다. 하지만 재난 예비비 포함 여부와 추경 범위와 규모를 놓고 여야 간 입장차가 커 실제 추경 편성 합의까지는 난항이 예상된다.
정치권은 산불 대응에 집중하기 위해 27일 예정됐던 국회 본회의를 연기했다. 여야는 산불 재발 방지와 추가 대책 마련을 위한 추경 편성 필요성에 한목소리를 냈다. 하지만 세부 예산 항목을 놓고 서로 다른 본심을 드러냈다.
그동안 추경에 소극적이던 국민의힘은 경북지역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자 지난해 더불어민주당이 삭감한 재난 대응 예비비 2조원을 추경에 포함해야 한다는 입장으로 선회했다.
반면 민주당은 이미 소관 부처별로 재난대책비가 편성돼 있고, 목적예비비 1조6000억원로도 활용 가능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아울러 산불 피해 대응과 함께 민생 회복 소비 쿠폰, 지역화폐 할인 지원 등 '소비 진작 패키지'도 함께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상훈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현재까지 발생한 산불의 이재민 숫자가 2만7000명으로, 2022년도 경북·강원지역 산불 때보다 46배 증가했다”며 재난 예비비를 포함한 추경 편성을 거듭 촉구했다. 또 “설사 이번 산불 피해 복구 지원에 문제가 없다 하더라도, 다가오는 하절기 태풍·홍수 피해를 염두에 두면 재난 예비비는 반드시 복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야당은 재난 대응 예비비를 정쟁의 도구로 삼지 말아야 한다면서도 추경 논의 자체에는 긍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진성준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국가적 차원의 대응이 절실하다”며 산불 추경 추진 방침을 밝혔다. 다만 민주당은 지난 2월 발표한 자체 추경안에 포함된 9000억원 규모의 '국민 안전 예산'으로 충분하다는 입장이다. 해당 예산에는 소방헬기 등 산불대응 항목도 포함됐다.
민주당은 산불 외에도 침체된 내수경기를 회복해야 한다며 '민생회복 소비 쿠폰' 예산도 다시 꺼냈다. 진 위의장은 “계엄과 항공기 참사, 산불로 얼어붙은 내수경기 회복도 절실하다”며 “민생 회복 소비 쿠폰, 상생 소비 캐시백, 지역화폐 할인 지원 등 소비 진작 패키지도 적극 검토하라”고 요구했다.
여야가 추경 필요성에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그동안 공전하던 국정협의회도 재개될 가능성이 커졌다. 우선 30일 예정된 고위당정협의회에서 정부와 여당이 추경안 기본 틀을 마련하면, 이후 협의회도 순차적으로 열릴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변수는 여전히 남아 있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가 다음주 중 내려질 경우, 정국이 급격히 얼어붙어 추경안 논의가 지연될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성현희 기자 sungh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