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철강과 알루미늄에 이어 자동차와 반도체, 의약품까지 관세 전쟁의 전장을 넓히고 있다. 처음에는 멕시코와 캐나다, 중국, 유럽연합(EU) 등 특정 국가를 대상으로 압박 강도를 높여왔다면, 이젠 품목별로 관세 부과를 공언하고 있다. 그간 추이를 살피던 우리나라, 일본과 같은 나라도 트럼프발 관세전쟁의 직접 대상이 된 셈이다.
특히 자동차와 반도체는 우리 경제를 견인하는 대표적 수출 효자품목이다. 세계에서 가장 큰 시장인 미국에서의 경쟁력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10일(현지시간)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철강·알루미늄에 대한 25% 추가 관세 부과 내용을 담은 포고문에 서명하면서 자동차와 반도체, 의약품에 대한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앞으로 (자동차 등) 다른 조치도 취할 예정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상호주의다. 우리는 관세가 공정하길 원한다. 그들이 우리에게 관세를 부과하면, 우리도 그들에게 관세를 부과할 것”이라고 말했다.

철강과 알루미늄, 자동차와 반도체는 모두 우리나라의 주요 대미 수출품목이다. 특히 철강과 알루미늄은 트럼프 1기 때 협상을 통해 수출 물량을 제한하는 '쿼터제'를 받아들였지만 추가 25% 관세를 피하지 못했다.
미국은 각국에서 수입하는 철강과 알루미늄 수입품에 대해 기존 쿼터제를 폐기하고 3월 12일부터 25% 추가 관세를 부과키로 했다. 대상은 우리나라를 포함해 아르헨티나, 호주, 브라질, 캐나다, 멕시코, 유럽연합(EU) 회원국, 일본, 영국 등이다. 포스코, 현대제철, 동국제강그룹 등 우리 주요 기업과 철강협회는 정부와 함께 품목별 영향 등을 분석하고 있다. 일본은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지난주말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각종 유화책을 쏟아냈지만 관세를 피하지 못했다.
우리나라의 철강 대미 수출 규모는 캐나다, 멕시코, 브라질에 이은 4위다. 알루미늄은 캐나다, 아랍에미리트(UAE)에 이은 3위 국가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의 값싼 철강·알루미늄 제품이 우리나라를 비롯한 대미 수출국가에 들어오고, 상대적으로 비싼 해당국가의 제품이 미국으로 수출되고 있다고 의심하고 있다. 이번 조치 역시 중국을 겨냥한 조치로 분석되는 이유다.
자동차와 반도체 역시 이런 논리로 관세 부과가 현실화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우리나라는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를 맺어 서로가 사실상 무관세인 상태지만, 주요 대미 수출 흑자국이라는 점이 리스크다. 트럼프 대통령이 '상호 관세' 부과를 예고하며 강조했던 부분이 바로 무역적자 해소라는 점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금명간 회의를 거쳐 '상호 관세' 부과 대상과 내용 등을 밝힐 예정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내 일자리 창출과 지역경제 활성화에 중점을 두고 있는 만큼, 관세 전쟁의 해결책은 미국 내 공장 설립과 같은 현지 투자로 귀결될 수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는 친구와 적들로부터 똑같이 두들겨 맞고 있었다”면서 “우리의 위대한 산업들이 미국으로 되돌아오도록 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외국 땅이 아닌 미국에서 철강과 알루미늄, 자동차, 반도체 등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일본도 미국 현지 투자를 두 배 늘리기로 했다.
이는 제조업 부흥을 내세운 트럼프 대통령의 대선 공약과도 궤를 같이한다.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기업인 대만 TSMC가 트럼프 대통령의 자국 내 반도체 생산 정책에 협조해 미국 투자를 늘릴 것이라고 밝힌 것도 이런 이유다. 우리나라 역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현대자동차 등이 미국 현지에 생산공장을 준비하고 있는 만큼, 우리 정부의 발 빠른 대응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안영국 기자 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