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현지시간) 폐막한 CES 2025는 인공지능(AI) 기술이 일상에서 전방위적으로 활용될 것이란 미래를 확인하는 자리였다. CES 주관사인 미국 소비자기술협회(CTA)는 AI를 주요 전시 테마로 꼽았고,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국내 주요 기업도 AI를 통한 일상의 변화를 집중 조명했다.
전자신문은 한국전자정보통신산업진흥회(KEA)와 한국전자기술연구원(KETI) 후원으로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CES 2025 시사점'을 주제로 좌담회를 개최했다. AI를 비롯한 주요 기술 흐름을 살피고 산업 동향을 공유하려는 취지다. 국내외 전문가들은 좌담회에서 CES 2025에서 공개된 AI 기술과 국내 산업 발전 방향, 향후 과제 등을 짚었다.
〈참석자〉(가나다순)
△김보은 라온텍 대표
△박청원 한국전자정보통신산업진흥회(KEA) 부회장
△신희동 한국전자기술연구원(KETI) 원장
△임동석 홈즈에이아이 대표
△장수연 프리베노틱스 대표
△필립 비달 스트라드비젼 최고사업책임자(CBO)
△사회=김원배 전자신문 전자모빌리티부장
◇사회(김원배 전자신문 전자모빌리티부장)=CES 2025에서 다양한 기술과 제품이 공개됐다. 현장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무엇인가.
◇박청원 한국전자정보통신산업진흥회(KEA) 부회장= CTA 기조연설을 봤다. CTA가 2년 격년으로 국가별 혁신 역량을 평가하는 '글로벌 이노베이션 스코어카드'를 발표하는 데, 올해가 공개하는 해다.
총 4가지 카테고리가 있는데, 우리나라는 2년 전 CES 2023에서는 세컨 그룹이었다. 그런데 올해는 챔피언 등급으로 올라갔다. 글로벌 이노베이션 챔피언 등급이 됐으니, 국제 협력이 용이해지고 위상이나 신뢰도를 유지하는 데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기술적인 부분에서는 역시 AI다. 그동안 CES에서 AI 이야기를 많이 했는 데, 올해는 정말로 삶의 질을 개선할 수 있는 제품이나 서비스가 많이 나왔다.
이번에 특별히 새로웠던 건 양자 컴퓨터다. AI 이후 차세대 기술로 놀라운 혁신이 될 수 있을 것 같고, CTA 기조연설에서도 2030년부터는 AI 다음으로 양자 컴퓨팅이 새로운 혁신의 중심이 될 것이란 이야기를 했다.
양자 컴퓨터가 상용화되면 AI 분야에서 엄청난 변화가 있을 것이다. 지금보다 수조배 빠른 속도로 계산할 수 있기 때문에 신약이나 소재 개발 기간이 단축된다. 10년 뒤에는 지금과 완전히 다른 새로운 제품이나 시스템이 나올 것 같아 이런 부분을 기업이 고민하고 미래 모델을 제시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의미 있었던 건 일본 기업이 적극적으로 참여한 점이다. 파나소닉은 앞으로 매출 30% 이상을 AI에서 발굴하겠다고 했고, 토요다는 스마트 시티 '우븐 시티'로 자동차에서 AI로 변신을 꾀하고 있다. 보수적이라고 생각했던 일본 제조업 기업이 AI를 가미해 신시장을 개척하고 있는 데, 오히려 유연성이 있는 모습이다. 우리 기업도 재무장해서 신산업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고 느꼈다.
△신희동 한국전자기술연구원(KETI) 원장 = 코로나19 이후 첫 오프라인 CES 때부터 3년째 AI가 화두다. AI가 실생활로 많이 가는 것 같긴 한데, 변화가 체감되는 것 같지는 않다. 다만 3년이라는 시간이 짧아서 그럴 수 있고, AI가 서비스 차원으로 가는 건 느껴진다. 이 서비스를 구현하기 위한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가 많이 출시되고 있어서 실생활에 점점 접목되는 게 보인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의 CES 기조연설에 사람이 몰린 걸 보고 'AI가 열풍은 열풍이구나'라고 느꼈다. 많은 참석 인원을 보면서 AI가 확실히 대세라는 생각을 했다.
이제는 우리가 'AI를 어떻게 사업화해 매출을 발생시킬 수 있느냐'라는 고민을 해야 한다. CES2025 유레카관의 3분의 1이 우리나라 기업일 정도로 많이 참여하긴 했는데, 양적인 규모보다도 우리가 강점이 있고 사업화를 할 수 있는 분야에 집중이 필요하다는 숙고도 해야할 것 같다.
△필립 비달 스트라드비젼 최고사업책임자(CBO) =우리 일상 생활에 어떤 영감을 줄 수 있는지를 생각했다. 모빌리티에서 헬스케어까지 모든 분야에서 AI를 통합했다는 게 인상적일 뿐만 아니라 혁신적이었다.
그중에서 가장 눈에 띄었던 건 참여하는 기업이 실험 단계를 넘어 실행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것이다. 문제를 실제로 해결하는 솔루션을 볼 수 있었다. 예를 들면 삼성전자는 머리카락이 떨어졌을 때 로봇 청소기가 인지하고 바로 청소를 하는 걸 시연했다. 생활과 밀접한 곳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사례라고 생각했고, 화려한 개념이 아니더라도 삶을 개선할 수 있는 기술이라고 느꼈다.
△임동석 홈즈에이아이 대표=헬스케어 분야에서 AI가 융합되는 서비스 모델이 지난 해보다 올해 많아졌다. 관심 갖고 지켜본 건 AI가 이제 디지털에서 피지컬(물리적) 영역으로 바뀌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부분에서 고령층이나 사회적 약자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로봇 기반 헬스케어 기술이 인상적이었다.
상상했던 것이 현실이 되고, 그 속도도 점점 빨라지고 있다. 올해가 IT 기술이 사람에게 실질적인 도움울 줄 수 있다는 걸 알게 되는 시작점일 수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장수연 프리베노틱스 대표 = CES에 처음 왔는데, AI라는 게 '티핑 포인트'(급격한 변화점)를 넘어서는 느낌이다. AI로 돈을 어떻게 벌 수 있느냐와 지속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는 데, 티핑 포인트를 넘은 것 같아 개인적으로 희망을 봤다.
△김보은 라온텍 대표 =올해가 AI·증강현실(AR) 글래스의 원년이 될 수 있다고 예상한다. 소비자들이 제품을 살 수 있는 환경을 기다려왔는데, 이게 가능해 시작할 수 있는 해가 될 것 같다. CES2025의 가장 큰 의미다.
AI·AR 글래스는 생활을 완전히 바꾸는 계기가 될 수 있다. 피처폰에서 스마트폰으로 바뀌면서 세상이 크게 달라진 것처럼 AI와 사람을 연결하는 게 글래스다. 스마트폰은 내가 원하는 정보를 입력하지만, 스마트 안경은 내가 보는 걸 같이 보고 있어서 뭘 원하는지 미리 알려줄 수 있다. 이 제품을 통해 우리 삶이 AI와 밀접해질 수 있기 때문에 의미가 있다고 본다.
◇사회=역시 AI가 화두다. 우리나라가 AI 산업에서 선도적인 입지를 구축하려면 방법론 측면에서 어떤 게 필요한가.
△신희동=AI에서 앞서나가려면 우리나라가 대규모 사업은 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양적인 측면에서 중국이나 미국을 따라갈 수 없고, 우리가 잘하는 분야에 대한 집중이 필요하다.
구체적으로 본다면 제조업 기반인 우리나라가 생산성을 향상하기 위한 AI 활용, 이런 부분에 집중하는 게 좋겠다. 범용 디바이스의 경우 중국이 점점 앞서가고 있는데, 제조업 기업이 AI를 도입하지 않으면 중국을 이기기 쉽지 않다. AI 기술로 제조 데이터를 활용하는 측면이 있어야 한다.
AI 서비스 활성화와 함께 인프라도 구축돼야 한다. 온디바이스 칩이나 저전력 반도체 등 다양할 수 있는 데, 엔비디아를 당장 추격하기는 어려운 만큼 우리가 경쟁력이 있는 틈새 시장을 공략해야 한다. 제조업과 AI 서비스를 뒷받침할 수 있도록 경쟁력을 확보하는 게 우리가 취해야 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박청원=AI를 상품화하려면 보안 문제가 생긴다. 이걸 해결하지 않으면 상품으로 제공하기가 제한적이다. 딥페이크 같은 문제가 심각해 규제도 필요하지만, 국내에서 기술 개발보다 제도가 너무 늦게 따라가면 기업이 곤란해진다. 규제를 비롯한 제도적인 환경이 보완돼야 한다.
△임동석=기업 입장에서는 사실 규제가 갑자기 없어지는 것도 문제다. 예측 가능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정부에서 규제가 어떻게 될 것인지 결론을 빨리 내주는 게 더 도움이 된다. 그래야 거기에 맞게끔 대응할 수 있다.
◇사회=비달 CBO에게 묻겠다. 외국인 입장에서 한국 AI를 냉정하게 평가하자면 어떤가.
△비달=한국에서 인상적인 건 AI 개발 속도가 굉장히 빠르다는 것이다. 특히 미국이나 유럽에 비해 전환 속도가 빠르다. 미국에도 기업이 많지만, 한국과 비교한다면 국내 기업이 효율성 있고 빠르게 연구개발(R&D)을 하고 있다.
결국은 기술을 사용하는 고객이 안전함을 느끼고 높은 신뢰성을 부여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게 가능하도록 만드는 규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사회=새로운 기술이 나올 때 격차가 벌어지곤 한다. 오남용 같은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AI도 이런 측면을 관심 가져야 하지 않나. 어떻게 생각하는가.
△박청원=예전에 '디지털 디바이드'라는 용어처럼 AI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격차가 많이 생길 수 있다. AI 에이전트가 상용화되면 기기가 알아서 해준다는 측면에서 주니어나 시니어 모두 활용하기 쉬워지는 세상이 될 것 같은데, 격차를 줄이는 건 정부가 해야 하는 역할이다. 사용자 편의에 대한 고민 등 정부가 관심을 가져야 한다.
△임동석=AI는 윤리적인 측면이나 보안과 연결되고, 특히 헬스케어 사업에서는 개인 의료 기록 유출이나 AI가 데이터를 컨트롤하는 문제가 있어 우려스러운 부분이 있다. 법적인 문제를 기술적으로 보완한다면 앞으로는 발전이 빨라질 것 같다.
◇사회=CES 트렌드를 짚어보는 시간인데, AI 이야기가 제일 많이 나왔다. AI 분야에서 우리가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한다고 보는가.
△장수연=기술도 변하지만 이와 함께 고객의 기호도 바뀌기 때문에 이걸 빨리 캐치하는 게 경쟁력을 확보하는 방법이다. 사실 한국은 이걸 잘한다.
의료 기기 분야에서 살펴보면 저희가 사업을 하고 있는 AI 진단 영역은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 승인된 제품이 하나도 없다. 반면, 한국은 여러 개가 있다. 그런 측면에서 살펴보면 한국은 그만큼 적응이 빠르고, 사업하기도 어려운 환경이다.
△임동석=보호주의를 내세우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곧 출범하면 기업 입장에서는 불확실성이 높아진다. 이걸 확실성으로 바꾸기 위해 기업이 많은 노력을 하고 있고, CES 2025에서 혁신상을 받은 국내 업체도 많다. 어려운 상황일수록 정부에서 신경을 많이 써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양적인 성장, 벤처 기업을 많이 육성하는 게 아니라 똘똘한 기업을 발굴해 글로벌 유니콘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게 필요하다.
△김보은=R&D 투자 측면에서 글로벌 1위가 우리나라라고 알고 있는데, 그만큼 리턴이 되느냐는 살펴볼 필요가 있다. 현실적으로 우리나라는 모든 걸 잘할 수는 없는 데, R&D는 모든 분야를 잘하려고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방향으로 투자를 한다면 잘못될 수 있다. AI에서 우리가 강한 분야는 고대역폭메모리(HBM)다. 우리가 강점이 있는 분야에 R&D 자금이 많이 활용돼야 한다. 또, R&D에서 기업 목소리를 많이 반영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신희동=우리 R&D 방향성은 잘 짜여져 있다. 다만, 실행 측면에서 살펴보면 해외에서 밸류체인이 잘 구축된 다국적 기업과 같은 '패스트 팔로워' R&D 구조를 갖고 있다. 정부가 새로운 그림을 많이 제시하는데, 달라지는 게 없는 건 실행하는 구조가 똑같기 때문이다. '퍼스트 무버'에 맞는 R&D를 기획하면 집행이나 관리도 달라져야 하는데, 그게 아니어서 아쉬운 점이 있다.
R&D 초점은 관리에 맞춰져 있다. 이제는 탈피를 해야 한다. 방향성만 좋은 게 아니라 R&D를 넘어 상업화로 가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는 기업이 주도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도 맞다고 본다.
△박청원=조금 다른 측면에서 말씀드리면 인력도 정말 중요한데, 이에 대한 액션 플랜(행동 계획)이 없는 것처럼 보여 아쉽다. 제도적으로 인센티브를 주는 방식으로 국가 차원에서 인재 양성을 해야 하는데, 이런 게 부족하다.
정부가 인재를 확보할 수 있는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기업을 지원하는 KEA 차원에서는 '테크 GPT'라는 기술 분야 AI 에이전트 플랫폼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연구자와 해외 인력, 잠재적인 시장 등을 GPT를 활용해 검색하고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고 있다. 내후년쯤 되면 실행이 가능할 걸로 예상한다. 중소·중견기업이 많이 활용하면 좋겠다.
△비달=AI 자체가 기회를 창출하지만, 인력이 기술을 향상할 수 있는 교육을 받아야 한다. 협업에 중점을 둬야 하고, 문제 해결을 위해선 정부를 포함한 산업계가 모두 협력하는 게 중요하다.
=라스베이거스
이호길 기자 eagles@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