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우의 무지(無智) 무득(無得)]군자화이부동 소인동이불화(君子和而不同 小人同而不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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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우 동국대 AI융합대학장

관이유교 불보무도(寬柔以敎 不報無道). 상대방이 아무리 큰 잘못을 하더라도, 심지어 반역적인 사건을 일으키더라도, “허물이 있음을 기꺼이 용납하고 나아가 공손하고 부드러움으로 그가 부족한 점을 가르치는 것”을 말한다. 이는 공자(孔子)의 손자인 자사(子思)가 쓴 중용(中庸)에 나오는 말인데, 공자가 제자 자로(子路)의 강(强)함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가르침을 주면서 한 말이다. 거기에 더해, 화이불류 중립이불의(和而不流 中立而不倚), 즉 주변 사람들과 (다투거나 격노(激怒)하는 일이 없이) 조화(調和)를 이루면서도 한 군데로 휩쓸리지 않으며, 굳건하게 중용을 지키면서 어느 곳으로도 치우치지 않는 것이 진정한 강함임을 부연한다.

그러면, 남과 다투기 좋아하고 자주 격노하는 사람들은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는가? 그들은 자신이 대단히 지혜로우며 지신은 항상 그리고 유일하게 옳다는 몽상(夢想)에 빠져 있다. 대개 이런 사람들은 부(富, 재산), 귀(貴, 지위), 명(名, 명예) 등이 높은 사람이기 쉽다. 그런데, 이들에게 부, 귀, 명이란 단지 무기(武器)에 지나지 않는다. 자신이 가진 무기에 기대어 주변 사람들을 분별하고, 제압하며 나아가 격노라는 폭력 행사가 다반사(茶飯事)다. 그러하니, 과연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그와의 조화를 기대할까?

주변인들은 모두 부, 귀, 명이라는 보잘 것 없는 모닥불 옆에서 곁불을 쬘 수 있음을 그들만의 또 다른 부, 귀, 명으로 삼는다. 이러하니, 화이불류(和而不流)가 가당키나 한 말인가? 공자의 논어(論語) 자로편에 군자화이부동 소인동이불화(君子和而不同 小人同而不和)라는 말이 있다. 군자는 자기 집단에 조화되기는 하지만 그들과 똑같아지지 않는 반면에 소인은 집단과 같아지기는 잘하는데 조화를 이루지는 못한다는 말이다. 위에서 말한 사람들 중에는 군자(君子)가 하나도 없음을 증명하는 말이다. 첫째로, 그들은 결코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 오직 크고 작은 부, 귀, 명에 중독(中毒)되어 서로가 서로에게 무기를 겨누고 있을 뿐, 그 이상도 이 이하도 아니다. 둘째로는, 그들은 모두 집단을 이루어 외부 세상에는 똑같은 구성원으로 이루어진 집단으로 보이지만 결코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 겉으로는 집단의 주장을 하고 다른 집단에게는 일상에서는 들을 수 없는 수준의 막말을 서슴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들은 소인(小人)과 다름이 아니다. 니체(F.W.Nietzsche)가 시장의 모습을 보고 “신은 죽었다”고 외쳤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인간 사회를 건강하고 미래지향적인 방향으로 지탱해오던 모든 종류의 절대적인 권위, 즉 사회적 규범, 도덕적 가치, 전통적인 신념 등을 포괄하는 개념으로서의 '신(神)'이라는 존재의 권위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음을 선언한 것이다. 그러니, 그들은 군자도 소인도 아닌 그냥 그렇고 그런 1800년대 사람들의 수준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노자(老子) 도덕경(道德經)에 나오는 화기광 동기진(和其光 同其塵)은 자신의 빛의 밝기와 크기를 (내세우기보다는) 조화(調和)롭게 하여 세상에 있는 티끌(塵)을 포함한 모든 것들과 같이 하라는 말이다. 자기 자신이 스스로 부, 귀, 명을 얻으려고 했었던 과거의 시간들을 돌아보라. 얼마나 많은 피와 땀, 그리고 남다른 노력과 절제를 통하여 얻은 것들인가? 오늘 거울 속에 있는 당신들의 모습이 과연 그 시절에 그려 왔던 자화상인가? “티끌(塵)을 포함한 모든 것들과 같이 하라”. 그런데, 대한민국 국민들은 당신들의 모습과는 상관없이, 세계 최고의 위대한 사람들임을 잊지 말라. 감히 군림하려고도, 개나 돼지로 보려고도 하지 말라.

봉우리는 높을수록 풀, 나무, 짐승도 살 수 없지만, 계곡은 낮고 깊을수록 모든 것을 품어 물과 풀, 나무들과 뭇짐승들이 풍요롭게 살아간다. 국민들은 당신들이 노자(老子) 도덕경(道德經)에 나오는 죽지 않는 곡신(谷神)의 길을 따르기를 기원한다.

이강우 동국대 AI융합대학장 klee@dongguk.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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