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빅테크 기업이 독식하는 슈퍼컴퓨터 가속기를 국산화한 것은 기술 자체로도, 나아가 산업생태계 측면으로도 가치가 막대합니다. 이 명맥을 후속사업으로 키워나가면 효과는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최근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이 슈퍼컴퓨터 가속기 'K-AB21' 개발 쾌거를 전한 가운데, 연구개발(R&D) 책임자인 한우종 ETRI 슈퍼컴퓨팅시스템연구실 연구위원이 한 말이다.
이 성과는 슈퍼컴퓨터 개발 핵심 기술이다. 미국·중국·일본·프랑스의 뒤를 이어 세계 5번째 슈퍼컴퓨터 제조국에 이름을 올릴 기반이다. 외산에 의존해야 했던 슈퍼컴퓨터 인프라 국산화, 관련 산업생태계 활성화에 초석이 된다.
한 위원은 “기존 슈퍼컴 개발국이 주목하는 범용가속기와 달리 고정밀도 슈퍼컴퓨터 응용가속이 가능하다”며 “개발 소식을 접한 해외에서도 가속기 제품화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고 전했다.
시스템 차원 연구라는 점도 의미가 깊다고 했다. 그는 “인텔·엔비디아는 칩을 만들 때 플랫폼이나 구성부품, 소프트웨어(SW)도 함께 준비하는데 각각 요소기술이 따로 개발되면 연동이 잘 되지 않고, 시간도 오래 걸리기 때문”이라며 “이번 성과도 처음부터 시스템 차원으로 모두 함께 이뤘다”고 설명했다.
물론 현재 파편화된 연구환경에서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나 ETRI 이전 인텔에서 10여년 재직하며 시스템 차원 연구의 중요성을 체득한 한 위원은 어려움 속에서도 이를 끌고 갔다. 정부 배려도 힘이 됐다.
한 위원은 “내 일만 하는 것이 아니라 남의 것과 맞춰야 하니 엔지니어·중간관리자들의 어려움이 많았다”며 “그러나 향후 기술사업화, 산업 생태계를 고려하면 이런 사례가 더 늘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무엇보다 바라는 것은 후속 사업이다. 기반을 마련했으면 건물을 올려야 한다. 칩을 기반으로 슈퍼컴퓨터를 만드는 국가 사업이 이뤄져야 한다.
한 위원은 “슈퍼컴퓨터가 국가 경쟁력을 가늠하는 중요 지표라는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며 “이젠 우리도 국가 사업으로 실제 시스템을 구현해, 관련 생태계도 이루고 다방면 활용을 이어가야 한다”고 피력했다.
이어 “이번 사업 의의가 빛을 발하려면 곧바로 후속 연계 사업이 마련돼야 한다”며 “결국 할 수밖에 없는 일인데 만약 한 번 엎어졌다가 3년, 5년 뒤에 재차 기획한다면 그 손실은 이루 말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김영준 기자 kyj85@etnews.com